▲영화 <면접교섭> 스틸 이미지
필름다빈
40대 중년 남자가 KTX 열차에 몸을 싣는다. 인천에서 포항까지 아무리 고속열차라지만 제법 먼 길을 이동하는 길을 그는 매달 두 번 주말마다 꼬박 감행한다. 직장에 다니는 처지로선 여유시간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오르는 여정이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장거리 이동을 감수하게 된 것일까?
김재훈씨는 이혼남이다. 그는 생모와 포항 인근에 사는 초등학교 2학년 딸과 면접교섭을 하기 위해 불평할 새도 없이 격주로 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생모의 이런저런 핑계로 법적으로 확보된 면접교섭 시간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제한된 면회만, 그것도 수시로 어그러지기 일쑤다. 8시간 보장된 면회는 교통편이 없다는 이유로 4시간도 이어지지 못한다. 왕복 열차 이동시간이 훨씬 더 긴 셈이다.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는 그의 인천 집엔 여전히 딸의 방이 마련돼 있고 가구와 기타 등속이 빠짐없이 갖춰져 있다. 아이만 오면 될 정도다. 동네 문방구를 지날 때마다 딸이 좋아할 학용품과 장난감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다. 한 달에 한두 번도 겨우 만나는 관계이지만 딸과 사이도 좋아 보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딸을 사랑하는 게 티가 나는데 왜 김재훈씨는 딸의 양육권을 이혼한 전처에게 넘긴 걸까? 듣기만 해도 먹먹한 사연이 당사자의 입을 빌려 펼쳐지기 시작한다. 경우는 제법 다르지만, 얼마 전 사회적 반향을 크게 일으킬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더 글로리> 속 악역 중 하나가 불륜으로 낳은 자신의 친자를 빼앗아오기 위해 고심하던 사연과 겹친 구석이 많다. 법이 미처 헤아리지 못한 구석 탓에 미치고 펄쩍 뛸 모순에 처한 형국이다.
이번엔 50대 건장한 중년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서울에서 청주로 역시 기차를 타고 이동한다. 한 쇼핑몰에서 그는 반대편을 보고 덩치에 맞지 않게 애정표현을 과할 정도로 펼치기 시작한다. 부끄러움을 감수하며 '사랑해!' 외치거나 손으로 하트를 표시하는 모습이 어색하지만, 너무나 절박해 보이는 표정과 음성을 보고 있자면 대체 무슨 사연일까 궁금해질 따름이다.
그런데 더 괴이쩍은 건 그런 애정 표시에 반응하는 상대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년은 그런 남자를 외면하며 얼굴 봤으니 얼른 가라며 곧바로 등을 돌린다. 남자가 아무리 다급하게 뒤를 따라도 끝내 외면하기만 한다. 엘리베이터를 급히 타고 문을 닫자, 축 처진 그는 허무한 표정을 짓는다.
배문상씨는 앞선 김재훈씨와는 또 다른 난항에 빠진 상태다. 전처와 함께 사는 아들은 한사코 아버지와 면회를 거부하며 대면하자마자 발걸음을 돌린다. 자조적으로 10초 면접을 2주마다 반복한다며 그는 인터뷰 중간에도 감정이 북받쳐 자주 눈물을 흘리곤 한다.
김재훈씨가 면접교섭에 불성실한 전처 때문에 속앓이를 겪는다면, 배문상씨는 생모의 '부모 따돌리기' 탓에 자신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주입받은 아이가 본인을 표면적으로 거부하는 형태다. 그나마 비협조적이라도 최소한의 소통은 가능한 전자에 비해, 만날 때마다 더 속이 상하는 셈이다.
두 사람의 사례는 상이하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양육비 지급 등 법정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것, 이혼의 귀책 사유가 (그들의 증언을 신용한다면) 본인들의 탓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법적으로 보장된 면접교섭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현행 제도의 치명적 허점, '부모 따돌리기'의 희생양이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가 될 테다.
법과 현실의 괴리가 가져온 부작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