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F(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에서 창작 뮤지컬상을 비롯해 3관왕을 달성한 <시지프스>가 서울에서 첫 선을 보인다. 팬데믹과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세계를 배경으로 배우라는 직업을 갖고 있던 네 명이 모여 자아내는 이야기다.

형벌을 받아 저승에서 큰 돌을 굴리며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하는 신화 속 '시지프스'와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소재로 활용한다. 폐허 속에 버려진 배우들은 두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말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자연스레 출구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귀결된다.

뮤지컬 <시지프스>에는 언노운, 포엣, 클라운, 아스트로, 이렇게 총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다만 이들은 극 중에서도 배우이며 '극 중 극'의 형식으로 작품 안에서도 <이방인>을 공연하기 때문에 다양한 역할을 오간다. 따라서 다른 작품만큼 캐릭터 간의 구별이 중요하진 않다.

공연은 내년 3월 2일까지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2관에서 진행된다. 이형훈·송유택·조환지(언노운 역), 정다희·박선영·윤지우(포엣 역), 정민·임강성·김대곤(클라운 역), 이후림·김태오·이선우(아스트로 역)가 번갈아가며 출연한다.

 뮤지컬 <시지프스> 공연사진
뮤지컬 <시지프스> 공연사진과수원뮤지컬컴퍼니

멸망을 앞둔 세계에서 배우들이 살아가는 법

한때 신전으로 쓰였고 또 어떤 때에는 극장으로 쓰인 건축물 앞에 희망을 잃은 사람이 서 있다. 그는 폐허가 된 세상을 바라보고, 한때 극장으로 쓰였던 이 건축물 앞으로 네 명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들은 세상이 참혹해지기 전까지 배우로 활동했으나, 이런 세상에선 연기는 배부른 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대사와 넘버를 통해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든 요인들을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감염병으로 세계적인 팬데믹이 찾아왔고, 가짜뉴스는 범람하며, 정치인들은 위선적이고, 기후 위기도 현재진행형이다. 이 모든 것이 닥친 무대 위 세계는 무너지고 부서져서 흙 먼지만 날린다.

그러다 문득 무대 위 세계와 오늘날 필자가 사는 세계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이미 팬데믹을 겪었고 우리는 일상을 빼앗겼다. 설 자리를 잃은 <시지프스> 속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현실의 배우들도 무대를 잃었다. 가짜뉴스가 사회 문제로 대두된 지는 꽤 오래됐고, 사실이든 아니든 정치인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더 역사가 깊다. 기후 위기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현재진행형이다.

그렇다면 <시지프스>의 세계관을 멸망을 앞둔 미래의 어느 때라고 이해해도 되지만,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로 이해해도 무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기어이 살아내는 이야기는 우리 삶에도 일정 부분 적용할 수 있을 터이다.

 뮤지컬 <시지프스> 공연사진
뮤지컬 <시지프스> 공연사진과수원뮤지컬컴퍼니

고립된 개인에 불과하던 각각의 배우 네 명이 모여 하나의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하고, 이들은 연극을 통해 세상을 직시한다. 카뮈의 소설 <이방인>은 이들이 세계를 인식하는 소재가 되어준다. 여느 연극이 그렇듯 이들이 연기하는 <이방인>도 카뮈의 소설을 차용하되 생략과 각색을 거친다.

소설에서 인생의 의미를 질문하는 주인공 뫼르소를 비롯한 각각의 인물들을 통해 배우들은 스스로를 돌아본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배우임과 동시에 연극을 지켜보며 변화하는 관객이기도 하다.

소설 속 뫼르소는 인생의 무의미함을 대변하는 인물이며, 시지프스 역시 의미없는 일을 반복하는 형벌을 받은 인물이다. 하지만 배우들은 뫼르소와 시지프스에게서 조금 다른 면을 발견한다. 사형을 선고 받고 처형장까지 걸어가는 뫼르소는 비로소 남은 생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힘겹게 언덕 위에 올려놓은 돌이 다시 굴러 떨어지는 걸 지켜봐야 하는 시지프스 역시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는 돌을 굴리는 자신의 행위에서 의미를 찾았다고 역설한다.

이제 배우들은 멸망하는 세상에서도 기꺼이 살아내기 위해 자신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무작정 뛰기 시작한다. 이때 배우들의 얼굴엔 웃음이 번지고, 이를 보는 관객들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인다.

 뮤지컬 <시지프스> 공연사진
뮤지컬 <시지프스> 공연사진과수원뮤지컬컴퍼니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도 각종 위협이 가득하다. 배우들이 거론한 위기는 오늘날 우리의 세계에도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극 초반의 고립된 배우처럼, 고립된 개인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David Riesman)은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소외된 개인의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현대 사회에서 심화된 개인화는 각 개인을 심리적이면서 사회적인 고독 상태에 머무르게 만들고, 이런 개인에게서 공동체의 위기나 정치적 문제를 숙고하려는 실천이 약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자율적인 참여는 줄어들고, 이때 개인은 그저 외부에 휩쓸리는 '고독한 군중'이 된다.

<시지프스> 초반의 고립된 배우는 바로 이런 처지일 테다. 하지만 이들이 모이고, 위기를 직시하며 자신의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이들은 더 이상 무력하고 파편화된 존재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주체가 된다. 이는 결국 우리도 위기에 부딪힐수록 주변을 돌아보고, 손을 맞잡아야 함을 시사한다. 관객이 이런 감상을 지닐 때, <시지프스>는 의미를 찾아가는 내면 성장의 드라마뿐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사회적 드라마로까지 그 성격이 확장된다.
공연 뮤지컬 시지프스 DIMF 예스24스테이지2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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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사회를 이야기하겠습니다. anjihoon_5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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