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2일, 서울 명화라이브홀에서 열린 포터 로빈슨(Porter Robinson)의 내한공연
본인 촬영
지난 12일, 서울 영등포구 명화 라이브 홀에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코스프레를 한 팬, EDM 팬, 록 페스티벌 티셔츠를 입은 관객이 집결했다. 서로 이질적인 집단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모두 한 사람을 보기 위해 모인 것이었다. 이날 이곳에서 내한공연을 펼친 미국의 전자음악가 포터 로빈슨(Porter Robinson)이 그 주인공이다.
1992년생인 포터 로빈슨은 2010년대 전자음악계에서 가장 독특한 뮤지션 중 하나다. 비디오게임과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자라난 그는 음악계에서 손꼽히는 '성공한 오타쿠'다. 첫 싱글 'Say My Name' 등 그의 초기 음악들은 전형적인 EDM에 가까웠으나, 감각적인 사운드 사이에 자신이 사랑하는 서브컬쳐의 흔적을 남겨놓는 방식을 택했다.
이와 같은 접근법은 그를 또래 전자음악가와 차별화시켰다. 최근 발표한 자전적인 노래 'Russian Roulette'의 가사가 말하듯, 그는 당시 평단과 음악 팬으로부터 '일렉트로니카의 새로운 대세'로 여겨지곤 했다.
1년 만에 한국 팬들을 만난 포터 로빈슨은 디제이가 아니라 락커에 가까워보였다. 그는 디제이들이 활용하는 CDJ가 아니라 기타와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기타를 잡고 자연스럽게 '어이, 어이, 어이' 등의 구호를 외치는 모습도 능숙했다. 포터 로빈슨은 전자 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하는 '라이브 셋(Live Set)이 훌륭하기로 정평이 나 있고, 여러차례 한국 공연도 펼쳤다. 그러나 이처럼 한국에서 본격적인 밴드 공연을 펼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연은 두 시간 동안 총 세 개의 파트로 나뉘어 진행ehoT다. 포터 로빈슨은 자신의 최신작 < Smile:D >의 강렬한 록 사운드로 시작해 < Nurture+ >에서 섬세한 감정선으로 전환했다. 마지막으로, 데뷔 앨범 < Worlds >의 신비로운 신스 사운드를 밴드 셋으로 재해석하며 관객을 매료시켰다. 역순으로 진행된 세트리스트는 그의 음악적 여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며, 다양한 감정과 에너지를 담아냈다.
두 시간 동안 완벽 몰입... '올해의 라이브' 그 자체
▲포터 로빈슨(Porter Robinson)의 내한공연라이브네이션코리아
포터 로빈슨은 공연 초반부터 자신의 몸상태가 좋지 않다며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컨디션 기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포터 로빈슨은 두 시간 동안 관객들을 완벽하게 자신의 공연에 몰입시켰다. 무엇보다 아티스트의 캐릭터, 취향을 설명하는 영상 예술이 빛났다. 거대한 고양이 모양의 인형, 새 앨범을 상징하는 공, 멜로디에 맞춰 점멸하는 LED는 포터 로빈슨의 라이브와 완벽한 시너지를 빚었다.
가열차게 공연을 이어 나가던 포터 로빈슨은 "다음 곡만큼은 촬영을 하지 말고, 우리끼리만 즐기자"며 신스팝 밴드 MGMT의 명곡 'Kids'를 연주하기도 했다. 관객들은 우렁찬 떼창으로 그에게 화답했다. 스마트폰과 카메라가 담아낼 수 없는, 현장만의 우정이 존재했다.
특히 'Divinity', 'Sad Machine' 등 포터 로빈슨의 데뷔 앨범 < Worlds >의 수록곡이 육중한 밴드 셋으로 연주되던 시간은 황홀함에 가까웠다. 잔향을 남기며 퍼지는 신사이저가 리얼 드럼과 어우러져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단연 '올해의 라이브'로 뽑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본 공연을 마친 후, 전광판에 소녀의 모습을 한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등장했다. 팬들은 이어지는 앵콜 곡이 무엇인지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바로 포터 로빈슨이 디제이 마데온(Madeon)과 합작한 'Shelter'의 뮤직비디오 속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밴드 멤버들과 함께 'Shelter'를 합주한 포터 로빈슨은 '락스타'의 새로운 시작을 알린 'Cheerleader'의 광란과 함께 공연을 마무리했다.
포터 로빈슨의 이번 공연은 최근 열린 여타 내한 공연과 달리 20대 남성 관객이 주를 이뤄 눈길을 끌었다. 이는 포터 로빈슨이 최근 리그 오브 레전드와의 협업곡 'Everything Goes On'을 부르는 등, 서브컬처와의 접점을 쭉 확보해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 화려한 비트 뒤에 숨어있는 취약한 감정, 그리고 서브컬처에 대한 사랑을 공유할 수 있는 관객들은 이 공연을 완성한 주체였다.
공연장 밖 세상이 혼란스러웠던 이날, 포터 로빈슨은 "자신의 인생 최고의 공연이었다"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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