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브스턴스> 스틸
(주)NEW
완벽한 수미상관 구조를 취하는 <서브스턴스>는 노화를 부정하고, 정확히는 죽음을 피하고 싶은 인류의 욕망을 직시한다. 필연적으로 늙어갈 수밖에 없는 슬픈 고통을 읽어낸 영리한 콘셉트다. 영원한 젊음을 원했던 클레오파트라, 영생을 바랐던 진시황은 결국 사라져 버렸다. 매일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 내는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죽어갈 운명을 거스를 수 없음을 비튼다.
영화는 시간을 되돌리거나 멈출 수 있는 순간을 제시하며 흥미를 이끌어낸다. 바디 호러라는 신체 변형 장르를 취해 치러야 할 혹독한 대가를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50대의 초라해진 몸과 20대의 반짝이는 몸을 그대로 노출해 극대화하는 방법이다.
새롭게 태어난 몸인 수로 에어로빅 쇼 진행자 면접을 본 엘리자베스는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다'는 말을 들으며 새로운 스타로 떠오른다.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기쁨을 얻었지만 그 시간 동안 찬 바닥에 누워만 있어야 하는 어두운 시간을 견뎌야 한다.
어제의 나를 갈아만든 오늘의 나를 질투하는 기막힌 상황이다. 규칙을 적당히 이용한다면 분신으로 즐기는 새 인생을 살아가게 되지만 문제는 기억이 없다는 거다. 적당한 타협을 모르는 인간이 자율성까지 갖추면 심각해질 문제점이다. 본체의 골수를 추출해 구매한 일주일 동안의 젊음은 사상누각임이 틀림없지만 그만두지 못한다. 그동안 쌓아 올린 명성까지 무너지는 수치를 반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끝이 보이는 선택이지만 복제품의 재능이라도 탐하고 싶어 갈등한다.
이후 카메라는 여성의 주요 부위를 부담스러울 정도로 클로즈업하며 한껏 과장된 신체를 탐닉하는 데 혈안 된다. 화려한 조명과 메이크업, 스타일링으로 치장된 겉모습은 카메라의 눈 즉, 편향된 시각에 담긴다. 세상의 축소판 방송국에서 수는 시선의 대상화가 되어 버린다. 화면에 이상한 게 담겼다며 슬로모션과 확대된 프레임으로 신체를 탐닉하는 공식화된 시선은 스튜디오의 스태프, 수를 채용한 프로듀서, 면접관, 회사 주주 등이 모두 남성이라는 데 있다. 노골적인 시선에도 수는 결코 자각하지 못하고 욕망을 드러낸다.
'나이 오십이면 끝났다', '예쁜 여자는 늘 웃어야 된다'는 마초 남성의 언행이 이어져도 마찬가지다. 타자화된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엘리자베스는 거울 속 노화된 모습을 혐오하는 반면, 수는 그 시선에 중독되고 거울 속 모습에 도취된다. 둘은 하나에서 나왔지만 거울을 보는 방식의 차이를 둬 독립된 인격체처럼 보이는 효과를 준다. 결국 완벽한 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착각은 허황된 꿈임을 깨닫지 못하고 예정된 파멸로 나아간다.
외모지상주의 빠진 자기혐오
엘리자베스를 보는 동안 20세기 아이콘이자 예술가였던 앤디 워홀이 떠올랐다. 그는 어린 시절 병약한 탓에 기형적으로 변한 외모를 부끄러워했다. 크고 빨간 코와 숱 없는 머리카락, 여드름 많은 피부 등을 감추기 위해 평생 노력했다.
자기혐오에 시달렸던 그는 공식 석상에 배우 앨런 미제트를 대타로 세워 작품처럼 복제품도 만들어 내기도 했다. 화려한 겉치장으로 만들어 낸 외형에 숨어 지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앤디 워홀의 스타일링은 '나는 나를 모아 붙였다'라고 평가할 만큼 외모 콤플렉스를 감추기 위한 퍼포먼스에 가까웠다.
이후 괴한의 총에 맞아 주요 장기에 손상을 입고 옆구리에 구멍이 생겨 탈장까지 되자 평생 코르셋을 벗지 못한 채 살았다. 생사가 오가는 수술을 받으며 철저히 몸이 부서진 후에야 겉포장을 벗겨냈다. 늘어지고 갈라진 신체를 오롯이 보여준 앨리스 닐의 초상화로 대중 앞에 날것으로 서게 된다.
엘리자베스는 별세계에 사는 또 다른 별 이상의 존재다. 언제나 반짝여야 존재감을 확인받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있는 스타. 쉽게 서브스턴스의 유혹에 빠지고 분신의 욕망에 잠식돼 간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온 세월 동안 내면을 읽을 눈은 퇴색돼 버렸다.
그래서일까. 데미 무어가 연기한 엘리자베스와 겹쳐진 잔상은 우연이 아니다. 전성기가 지나버린 배우 자체의 역사가 떠올라 극적 몰입을 유도한다. 시대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아름다운 외모와 완벽한 신체로 주목받던 스타는 전신 성형까지 불사하며 세월을 붙잡아 두려 했지만, 수많은 돈을 투자해 젊음을 소비하며 나이 들어갈 뿐이었다.
그저 결혼, 이혼, 성형 등 가십 기사로 소환될 뿐, 수많은 작품에 출연한 필모그래피가 무색하게도 수상이나 인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서브스턴스>로 인해 데미 무어는 첫 시상식과 인연을 맺으며 전환점을 맞았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저력을 과시했다.
프랑스 여성 감독의 영어 연출작
▲영화 <서브스턴스> 스틸컷(주)NEW
<서브스턴스>는 젊음과 아름다움을 최고의 꼽는 할리우드에서 퇴물이 되어버린 여성의 자존감을 수치와 색상으로 환산해 폭력적인 이미지로 보여준다. 충격적이고 불쾌한 이미지의 향연은 의도된 연출로 철저히 계산된 거다. 영화 속 상황은 점점 극단적으로 치닫는다. 후반 30분은 홍보문구 그대로 '미친 영화'다.
특히 새해 전야 쇼를 맡아 신데렐라 같은 파란 드레스를 입은 '몬스트로 엘리자수(세 번째 자아)'의 모습으로 상징된다. 살아 있는 유기체가 생존에 필요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과정을 파괴한 대가가 그대로 드러난다.
데뷔작 <리벤지> 이후 7년 만의 신작을 낸 코랄리 파르쟈 감독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존 카펜터의 뒤를 잇는 21세기 바디 호러 장르의 계보를 따른다. 단 두 편의 연출로 제77회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을 받았고 첫 영어 영화다. 감독은 "마흔이 넘어서면 자신이 쓸모없거나 흥미롭지 못하다는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린다"며 기획 의도를 밝혔다. 여자로 태어나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은 누구에게나 꽤 어려운 일처럼 느껴진다.
감독은 수많은 젊음으로 만들어진 상품인 쇼비즈니스 업계의 현실과 외모지상주의, 성 상품화를 꼬집는다. 초월적인 외형과 화려함으로 무장한 스타일링, 매력적인 관능미는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낸다. 영화가 끝나고 화장실에서 마주한 거울 속 외모를 통한 자성의 시간이 되기에 충분하다. 당신은 그 모습 그대로 아름답다는 말을 믿을 것인가?
*참고자료 : 이유리 <나는 그림을 보며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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