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정보를 독일 측에 팔아 넘겼다는 혐의로 총살 당한 스파이, 마타하리의 일생을 각색한 뮤지컬 <마타하리>가 네 번째 시즌으로 돌아왔다. 마타하리가 이중 스파이라는 의혹도 있었지만, 훗날 이를 입증할 근거가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마타하리는 의문의 존재로 여겨졌다.
한 인물을 명확히 설명할 사료들이 남아있지 않고, 또 마타하리라는 인물 자체가 아름다운 춤으로 당대 유럽을 매혹했던 여성이라는 점은 그녀의 이야기가 뮤지컬로 탄생하는 바탕이 되었다. 소수의 정보에 의존해 주변 인물과 이야기를 꾸며내며 마타하리라는 인물을 재구성함으로써 뮤지컬 <마타하리>는 탄생했다.
<지킬 앤 하이드>, <웃는 남자> 등을 작곡해 국내에 익히 알려진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Frank Wildhorn)이 작곡을 맡았고, 초연부터 쉬지 않고 '마타하리' 역을 연기해온 옥주현이 이번에도 같은 역을 연기한다. 옥주현과 더불어 솔라(마마무)가 타이틀 롤을 맡는다.
마타하리의 연인 '아르망' 역은 에녹·김성식·윤소호, 마타하리에게 집착하지만 동시에 권력욕을 지닌 대령 '라두' 역은 최민철·노윤이 맡는다. 마타하리를 보살피고 곁을 지키는 '안나'에는 최나래·윤사봉이 분하고,마타하리의 내면을 춤으로 표현하는 가상의 존재 '마가레타'는 안진영이 연기한다. 공연은 내년 3월 2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진행된다.
▲뮤지컬 <마타하리> 공연사진
EMK뮤지컬컴퍼니
진짜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
마타하리의 진짜 이름은 마가레타로,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서 새로운 삶을 위해 파리로 넘어온 여인이다. 폭력과 아픈 가정사, 생계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파리로 건너왔다. 각종 공연을 따라다니며 의상을 만드는 안나는 가진 것 없는 마가레타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넨다.
동양에서 건너온 여인의 이국적인 춤, 이것을 아이템 삼아 안나와 마가레타는 돈을 벌기로 한다. 그리고 마가레타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 무엇보다 유럽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이름을 '마타하리'로 바꾼다.
마타하리는 파리에서 얻은 유명세를 바탕으로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춤을 춘다. 전투기 조종사 아르망을 만나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아픈 과거는 잊고 마타하리라는 이름으로 맞이하는 새로운 삶은 행복해 보인다.
그러나 제국주의가 영향력을 떨치고,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당시에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 수 있다는 건 스파이 활동을 하기에 좋은 조건이었다. 이전부터 마타하리에게 관심을 보이던 라두 대령은 마타하리에게 스파이 임무를 제안하고, 마타하리와 아르망 사이에서 음모를 꾸미며 마타하리의 선택을 부추긴다.
무희, 스파이, 그리고 아픈 과거를 가진 마가레타. 이 모든 게 마타하리를 구성한다. 행복하기만 할 것 같았던 마타하리는 스파이 활동과 이후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또 다른 아픔을 마주한다. 내면의 자아를 춤으로 드러내는 가상의 존재는 마타하리 곁을 맴돌며 고뇌를 드러낸다.
마타하리의 숙제는 진짜 자신을 찾는 것이다. 그 과정은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권력자의 야욕 탓에 이중 스파이로 몰리고, 사랑하는 연인과는 타의에 의해 이별과 만남을 반복한다. 시련이 계속되는 와중에 마타하리는 아픔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진짜 자신을 찾아간다.
과거의 아픔도, 지금의 아픔도, 이중 스파이로 몰리며 앞으로 닥칠 아픔도 모두 받아들인다. 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주어진 것 이상의 책임을 다하며 진짜 자신을 마주한다. 그리하여 총살을 앞두고 진짜 자신을 찾은 마타하리가 부르는 넘버 '마지막 순간'은 가히 압권이다.
'마지막 순간' 장면에는 오직 마타하리 한 명만 무대 위에 존재하고, 그녀 곁을 맴돌던 가상의 존재는 사라진다. 마타하리가 진짜 자신을 찾았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뮤지컬 <마타하리> 공연사진
EMK뮤지컬컴퍼니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매력들
마타하리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주변 인물들 역시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초연부터 이번 사연에 이르기까지, 수정과 각색을 반복한 결과물로 보인다. 순수함이 돋보이는 마타하리의 연인 아르망은 마타하리가 자신의 아픈 과거와 지금의 고민을 고백해도 개의치 않아 한다. 그녀 자체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아르망은 마타하리가 그토록 찾고자 했던 것, 진짜 그녀를 이미 찾아 사랑하고 있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대령 라두는 한 여인을 향한 집착과 질투의 감정이 권력을 향한 야욕으로 변환되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권력을 쫓는 야심가 팽르베와 라두의 관계도 세밀하게 그려지고, 라두와 아르망의 관계 역시 설득력 있게 표현된다.
<마타하리>의 완성도는 무엇보다 안무에서 비롯된다. 마타하리는 '사원의 춤', '마지막 순간' 등의 넘버에서 인도네시아 자바 섬의 전통 춤을 소화한다. 파격적인 의상과 전통 음악이 어우러지고, 앙상블이 가세해 군무를 소화할 때는 그 매력이 배가 된다.
많은 군무 장면에 동원되는 출연진과 무대 효과를 고려했을 때, <마타하리>는 무대 위에서의 약속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한편 필자가 관람한 공연 회차에서 아르망 역을 소화한 배우 김성식은 이틀 전 부상을 당했음에도 무대에 올랐다. 무대에서의 약속뿐 아니라 관객과의 약속을 지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뮤지컬 <마타하리> 공연사진EMK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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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가 된 무희, 진짜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