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전국 응원봉 연대' 이름으로 국회 앞에 모여 '윤석열 탄핵'을 외친 케이팝 팬들.
지난 7일 '전국 응원봉 연대' 이름으로 국회 앞에 모여 '윤석열 탄핵'을 외친 케이팝 팬들.전국 응원봉 연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12·3 내란사태'에 시민들이 지난 주말 국회 앞에 모였다. 이날, 탄핵을 외치는 시민들 사이에 저마다 다른 모양과 색깔의 LED 조명이 달린 응원봉이 환하게 빛났다.

사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도 LED 촛불을 포함해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는 여러 시위 도구가 등장했다. 당시에도 케이팝 문화의 상징인 '응원봉'을 들고 나선 이들이 있었다.

다만, 올해는 보다 많은 수의 '응원봉'이 집회 현장에서 빛을 밝혔다. 7일 국회 앞 집회에는 주최 쪽 추산 100만 명(경찰 추산 10만 명)이 참여해 수만 개의 응원봉을 들었다. 원형, 사각형, 다각형, 별 모양의 응원봉은 기술 발전으로 발광력도 진화했다. 탄핵집회 야간 항공사진을 봐도, 응원봉 불빛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다.

여기에는 지난 6일 등장한 '전국 응원봉 연대'라는 트위터 계정도 한몫했다. 2D, 3D, 버추얼을 비롯해 '모든 응원봉이 가능'하다고 알린 '전국 응원봉 연대'의 계정주는 "저는 다른 시민 깃발과 같이 암담한 시국에 조금 더 능동적으로 연대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동료 시민 1"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016년 (박근혜 탄핵 당시) 응원봉 연대(원조) 계정을 오마주했다"고 했다.

보관 상자를 따로 구입해 모셔 둘 정도로 귀중한 존재였던 응원봉을 들고 나선 이유는 뭐였을까. '전국 응원봉 연대'의 계정을 만들고(김지연·27), 단체 채팅방을 운영하고(김민솔·17), 집회 현장에서 깃발을 든(김정현·가명·21) 세 명의 여성을 12일 늦은 밤 온라인으로 만났다.

언론사와 처음 인터뷰한다는 이들은 "덕질을 통해 단련된 총공(총공격)을 윤석열과 국민의힘을 향해 펼칠 줄을 몰랐다"면서 "꼭 응원봉이 아니어도 자기에게 소중한 것을 들고 14일 국회 앞에서 만나자"고 말했다.

다음은 이들과의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용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전국 응원봉 연대' 계정주는 "케이팝 팬들에게 응원봉은 가장 소중하고 귀한 물건"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7일 이들이 각자의 응원봉을 들고 국회 앞에 모였다.
'전국 응원봉 연대' 계정주는 "케이팝 팬들에게 응원봉은 가장 소중하고 귀한 물건"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7일 이들이 각자의 응원봉을 들고 국회 앞에 모였다.전국 응원봉 연대

- 마침 (12일) 오전에 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있었어요.

지연 : "(한숨을 내쉬며) 암담했어요. 기대한 적도 없었지만 시민들의 목소리를 못 알아듣고 있더라고요. 윤석열의 오늘 담화는 한 문장도 저를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매번 상상 이상의 말을 내뱉으며 일상을 뒤흔드니까 대통령의 담화에 트라우마가 생긴 거 같아요."

정현 : "딱 두 가지 의문이 들었어요. 저런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이 됐지? 국민은 왜 저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요. 일단 전 뽑지 않았습니다."

민솔 : "윤석열이 하는 말은 믿을 수 없어요. 어떤 이유로든 국민을 압박하고 공포를 조성하는 계엄은 선포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뭘 그걸 해명하고 억울해하는지 이해가 안 돼요. 국민의힘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예요. 선거 때만 되면 투표하라고 하면서 정작 본인들은 (탄핵) 투표 안 했잖아요. 국민을 대표한다는 사람들이라면 할 수 없는, 하면 안 되는 짓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해요."

- 지난 7일 집회에서 응원봉을 든 이들을 비롯해 '전국 응원봉 연대'가 많은 관심을 받았어요.

지연 : "갑자기 여기저기서 저희 계정(전국 응원봉 연대)이 언급되니까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제가 전국 응원봉 연대로 계정을 만든 게 6일 밤 11시에요.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글이 1만 개 이상 인용(알티·RT)되고 오픈채팅방에 1천 명 넘는 사람들이 들어왔거든요.

내가 이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싶어서 지난 9일(월)에는 계정을 없애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였다니까요. 그러다 집회에서 케이팝을 틀어주고 집회 사회를 본 박민주 시민활동가님 인터뷰를 봤어요. (민주님이) '전국 응원봉 연대'에 감사하다는 말 하시기에 '아, 좀 더 용기를 내야겠다' 싶었죠. 내가 받은 용기를 누군가와 나누고 싶기도 했고요."(관련기사: 97년생 촛불집회 사회자가 밝힌 선곡 비하인드 https://omn.kr/2bcmc)

- 팬들이 응원봉을 든다는 건 의미가 큰 행동 같아요.

지연 : "그럼요. 응원봉에 제 인생이 담겨있는 걸요. 내가 사랑한 시간과 마음이 이 작고 빛나는 응원봉에 담겨 있죠. 그렇게 집에 모셔두고 아끼고 쓰다듬다 콘서트나 팬미팅 등 현장에서 한 번씩 꺼내는 걸 지금 광장에서 꺼내는 거예요. 유행이라 쇼핑하듯 산 게 아니라 오랫동안 소중히 여긴 마음이 담긴 물건이죠. 정치인들이 이 의미를 제대로 알고 이해한다면, 응원봉 들고 뛰어나온 팬들의 무서움 알 텐데... 국민의힘 보면 아직 모르는 거 같아요."

민솔 : "사람이 살면서 무언가를 좋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돈과 시간과 마음을 다 써야 하는 거잖아요.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존재를 찾고 지켜나가는 게 결국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고요. 이 응원봉을 든 사람을 만나면 아 당신도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 소중한 사람이 있군요, 하고 속으로 생각해요. 그런 보이지 않는 마음들이 이 보이는 응원봉에 담겨 있어요."

"케이팝 팬 경험 쌓여 윤석열 거부 외쳐요"

 지난 7일 국회 앞에서 '전국 응원봉 연대'가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지난 7일 국회 앞에서 '전국 응원봉 연대'가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전국 응원봉 연대

- 세 분 모두 '소중한 내 가수'를 지켜본 경험이 있잖아요.

지연 : "맞아요. 사실 그 경험으로 소중한 오늘을 지키려고 여기까지 온 거죠. 제가 좋아하는 그룹과 관련해 소속사가 팬들을 배려하지 않은 곳을 행사장으로 정한 적이 있어요. 다 같이 티켓팅을 보이콧하면서 결국 장소가 바뀌었고요. 이런 식이에요. '아니다' 싶은 게 있으면 의견을 밝히고 변화하게 하려고 적극적으로 행동해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우리를 소비자로만 생각하고 함부로 할 때 참지 않죠. 그 경험이 쌓여 지금 '우리 이 대통령 받아들일 수 없어, 윤석열 거부할 거야'를 외치는 거예요."

정현 : "제 덕질의 경험은 딱 한 남자만을 향해 있어요.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한 가수를 잘 지키지 못한 것 같아 늘 마음에 담고 있어요. 다만, 그가 남겨준 신념과 내 가수가 생각하는 정의를 내가 계속 지켜야겠다 다짐했죠. 아이돌이 정치적인 의견을 밝히는 걸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기에도 꿋꿋하게 자기 소신을 밝히던 사람이거든요.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도 말했고, 투표가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방법이라며 투표 독려도 했고요. 세상의 어두운 면도 알아야 한다고도 했죠. 내가 사랑하는 가수라면, 지금 이 시국에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해요. 그래서 저도 한 손에는 응원봉을, 다른 손에는 전국 응원봉 연대 깃발을 들고 집회에 나가는 거예요."

민솔 : "저는 지금도 내 가수를 지키고 있어요. 팬을 돈으로만 바라보는 엔터업계에 불매로 저항하고 있거든요. 제 가수를 사랑하지만 그 회사가 팬을 존중하지 않고 내 가수를 함부로 대하는 것처럼 느껴지면 대항해야죠. 대통령이 국민을 우습게 보고 함부로 대하는 듯할 때 지금 저항하는 것처럼요. 저는요, 내 가수가 살기 좋은 나라 만들고 싶어요. 결국 그게 내가 살기 좋은 나라더라고요."

- 원래 연말이 각 팬덤에 바쁜 시기라고 들었어요.

지연 : "(웃으며) 맞아요. 평소라면 지금 우리 팬들이 정신없는 때예요. 시상식이 몰리는 연말이잖아요. 팬덤들의 전시 상황이죠. 상을 왜 너네팀이 받느냐, 앨범 사재기 한 거 아니냐. 아니면 증빙해봐라. 다 문제제기 하고... 정말 팬덤마다 시끄러운 시기인데, 이렇게 나라를 위해 뭉쳤어요. 하하."

민솔 : "좋은 나라 만들기로 대동단결한 거죠(웃음). 지금은 팬덤 모두 휴전 기간이에요.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다. 대통령과 국힘 향해 총공(총공격)을 펼치자."

- 한때 '빠순이'라 불리며 부정적으로 묘사된 케이팝 여성 팬들이 이제 정치 주체가 됐다고 하잖아요. 이런 평이 어떤가요?

지연 : "너무 반가운 관심입니다. 사실 사회에서는 우리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잘 전달되지 않잖아요. 무시하고 지워내고 축소시키죠.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은 여기저기서 우리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잖아요. 11일에도 국회 앞 집회에 나갔는데, 울컥하는 경험을 했어요. 행진하다 만난 동덕여대 학생들을 향해 파이팅을 외치고 함께 해산 장소에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는데... 우리(여성)의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많은 공간에서 일종의 해방감도 느꼈어요.

젊은 여성인 우리가 주체적이고 주도적이며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고 연대한다는 걸 느꼈어요. 지금까지 제가 경험하고 만난 (젊은 여성을) 위축시키고 두렵게 하는 세계를 깨고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있어요. 매일이 그래요. 그래서 더 많이 우리 목소리 전하고 싶어요."

정현 : "이 관심을 너무나 원했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2030 여성의 목소리를 듣고 우리를 정치적 주체로 바라보고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지금은 우리가 응원봉을 들자 여기저기서 우리에게 집중하잖아요. 새로운 현상처럼 조명하는 기사도 나오고요. 그런데요, 우리는 늘 목소리를 냈어요. 케이팝 엔터업계뿐 아니라 사회의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싸웠고, 행동했어요. 그걸 지금까지 '시끄러운 소리'로 취급하며 무시한 건 사회죠. 그래서 이런 변화와 집중이 반가워요."

민솔 : "우리를 빠순이라 칭하는 사람들이 '아이돌에 미친 애들'이라고 폄하했던 걸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요, 우리는 어떤 연예인을 앞뒤 안 보고 좋아하는 게 아니에요. 그 사람들이 지닌 반짝임을 알아보고 그 노력과 매력을 사랑하는 거죠. 그렇게 사랑해 본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의 일상과 우리의 정치에도 관심과 사랑을 표할 수 있다고 믿고요. 이제라도 제 응원봉에 담긴 여러 사랑의 의미를 새롭게 봐주는 듯해 다행이에요."

"탄핵 후, 광화문에 응원봉 데뷔시킬 거예요"

- 오는 14일 다 국회 앞에 모이잖아요. 어떤 노래를 함께 부르고 싶으세요.

지연 : "소녀시대의 '힘내!'(Way To Go) 원해요. '하지만 힘을 내 이만큼 왔잖아 이것쯤은 정말 별거 아냐 세상을 뒤집자 ha!' 이 부분 같이 외치고 싶어요."

정현 : "트리플에스의 '걸스 네버 다이'(Girls Never Die)요. '끝까지 가볼래 포기는 안 할래 난', '쓰러져도 일어나'라는 부분이 있어요. 지금 딱 제 마음을 표현한 노래예요."

민솔 : "지드래곤 '삐딱하게' 추천합니다. '영원한 건 절대 없어' 윤석열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에요."

-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통과된 이후 '전국 응원봉 연대'의 계획도 있나요.

지연 : "그럼요. 윤석열 탄핵은 시작일 뿐이에요. 이제 광화문으로 향해야죠. 제 응원봉 광화문에 데뷔시키고 싶어요. 왜 광화문이냐고요? 광화문에서 헌법재판소까지 행진해야죠. 제대로 된 판결 내리라고 외쳐야죠. 또 탄핵 후 국회에서 어떻게 하는지도 지켜봐야죠. 갈 길이 멉니다."

정현 : "당연히 광화문 갑니다. 탄핵이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잘 아니까요. 전국 응원봉 연대 깃발 들고 나서야 할 현장들이 많지 않을까요."

민솔 : "사실 제가 내년에 고3이라...(웃음) 부모님은 지금 '이럴 때'냐고 걱정하시는데, 사실 '이럴 때'는 맞는 거 같고요. 역사의 현장에 있어야 미래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을 거 같아요. 부모님에게 눈치는 좀 보이지만, 눈치 적당히 보면서 집회 나가려고요."

- 마지막으로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지연 :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인터뷰 요청을 수락한 건데요, 우리는 단체가 아닙니다, 여러분. 개개인이 모여서 하나가 된 거고 무언가를 좋아하고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일 뿐이에요. 그런 마음을 지닌 시민이 또 다른 시민에게 건네는 초대장이 '전국 응원봉 연대'였을 뿐이에요. 그러니 굳이 응원봉을 새로 사지 않아도 소중한 마음과 의미가 담긴 물건이 있다면, 들고 와서 함께 흔들었으면 좋겠어요."

정현 : "여러분이 응원하고 싶은 맘 아는데, 절대 기부금 보내시면 안 됩니다. 하나하나 확인해서 환불해드리고 있는데, 보내지 말아 주세요. 기부금도 내려면 단체를 설립해야 하고 관련 법률도 따라야 합니다(웃음). 저희를 응원해 주고 함께 해주는 마음으로 충분해요. 아 그리고 사실 전국 응원봉 연대 이름으로 언론사에 인터뷰하신 분들이 있는 거 알고 있어요. 개인의견을 담을 수 있지만, 저희를 대변해 말하지 말아 주세요. 확실하게 말씀드리는데 공식적인 인터뷰는 오늘이 처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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