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스틸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스틸그린나래미디어(주)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아일랜드의 대표 작가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원작으로 한다. 아일랜드 출신인 킬리언 머피는 소설을 읽고 반해 직접 제작과 주연을 맡았다. 여기에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과 운영 하는 제작사 'Artists Equity'도 참여했다.

성실한 가장의 행동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스틸컷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스틸컷그린나래미디어(주)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언뜻 보면 1985년 아일랜드의 소도시에 사는 빌 펄롱(킬리언 머피)이 겪는 갈등처럼 비친다. 사려 깊은 눈빛으로 주변을 살필 줄 아는 그는 소박하고 성실한 한 가정의 가장이다. 석탄을 팔며 아내와 다섯 딸과 소중한 일상을 보낸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수녀원에 석탄 배달을 하러 간 그는 어두운 실상을 엿본다. 이후 잔잔했던 그의 마음이 소리 없이 요동친다.

그날 이후 빌 펄롱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목격한 후 양심의 가책도 커진다. 영혼까지 말라 버린 듯한 아이들이 빨래와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수녀들의 태도가 위압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임신 중인 한 소녀는 석탄광에 갇혀 있었다. 추운 겨울날 얇고 짧은 옷을 입고 차갑게 식은 몸으로 겨우 숨만 쉬고 있었다.

펄롱은 이후 집에 어떻게 돌아왔는지 모를 정도로 혼란스러워한다. 불면의 밤이 지속되는 그에게 아내는 수녀원의 소녀들을 모른 척하라고 한다. 소녀가 사고를 쳐 그에 맞는 대우를 받는 거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그에게 우리 아이들은 다르다며 가족의 안위, 가진 것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수녀원은 마을의 모든 일에 관여하기 때문에 눈 밖에 난다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게 이유였다. 아일랜드 사회의 뼈대를 이루는 교회에 눈에 나면 가시밭길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장 수녀(에밀리 왓슨)는 펄롱을 따로 불러 은근한 협박을 했다. 딸 셋이 수녀원이 운영하는 학교에 다닐 예정이지 않냐면서 석탄값과 별개로 아내에게 돈봉투를 건네기도 했다.

펄롱은 어머니처럼 자신을 보살펴준 윌슨 부인을 떠올린다. 미혼모였던 펄롱의 어머니를 거두어 준 윌슨 부인은 이들 모자를 보살폈다. 그가 아니었다면 펄롱은 보호소에서 마주친 어느 소녀와 아기처럼 세상과 등지고 살아가야 했을지 모를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윌슨 부인의 덕분에 펄롱은 고급스러운 취향과 문학적 지식을 얻었고, 배곯지 않고 유년 시기를 보냈다.

결국 그는 앞으로 펼쳐질 고난보다 지금의 마음에 집중했다. 본 것을 못 본 척하면 평생 괴로운 늪에 빠져 살 것을 안 것이다. 이후 그는 그가 생각하는 옳은 일을 했다.

은폐된 보호소로 사라진 소녀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스틸컷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스틸컷그린나래미디어(주)

영화는 실화를 모티브로 한다. 실제 아일랜드에서는 1922년부터 1996년까지 타락하고 방탕하다고 여겨진 여성들을 갱생하는 교화소로 불렸던 '막달레나 수녀원 사건'이 있었다. 참회의 성녀인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을 딴 이곳은 18세기부터 운영됐다. 여기서 소녀들은 무급으로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정신적, 신체적 학대를 받았다. 직업여성, 미혼모, 미혼모의 딸 등 당시의 성 윤리에 어긋난 여성들을 대상으로 했는데, 노동으로 죄를 씻을 수 있다는 이유로 일을 시켰다.

이곳에서 태어난 신생아들의 75%가 돌이 되기 전 사망했으며, 수녀원은 강제 입양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챙겼다. 통제를 따르지 않으면, 독방에 감금하거나 강제 체벌하기도 했다. 국가는 이 시설을 구금 및 보호 시설로 이용했고 이곳에서 벌어지는 만행을 알면서도 묵과했다. 이곳에서 아이를 잃은 여성, 목숨을 잃은 여성은 최소 만 명으로 추산된다.

영화 속에서 매일 고된 일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일상이 버겁고 허무하게 느낀 펄롱은 처음으로 용기를 냈다. 평온과 안정이 보장된 마음이 불편함보다 고생스럽더라도 발 뻗고 잘 수 있는 행복에 가치를 둔 것이다.

그의 행동은 오랜 잔상을 남긴다. 받은 사랑을 나누어 주려는 마음, 사소함이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다면 얼마나 큰일인가. 혐오와 차별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작은 빛은 '용기'라는 두 글자다. 아프고 슬픈, 그래서 따뜻한 양가적인 감정이 벅차오르는 엔딩은 먹먹함이 크다. 12월과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영화다.
이처럼사소한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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