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변곡점인 1979~80년은 소설과 영화의 주요한 원천이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가능케 한 데에 역설적으로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있었다. <서울의 봄> 역시 우리의 비극을 다뤘다. 2023년 11월 22일 개봉한 이 작품은 윤석열의 12·3 내란 사태가 발발한 지금, 다시 언급되고 있다. <서울의 봄>의 배경은 1979년 10월 26일부터 12월 14일까지로 12·12군사반란에 초점을 맞췄다.
영화에서는 '서울의 봄'이란 영화 제목이 뜨기 전에 사전 정보를 고지하는, 콜드 오프닝 격의 상황 요약 스토리가 펼쳐진다. 1979년 10월 26일에 일어난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과 이후 12·12군사반란 전까지 상황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이태신(정우성), 전두광(황정민), 정상호(이성민), 노태건(박해준), 김준엽(김성균) 등 주요 등장인물이 모두 얼굴을 비추며 이후 사태를 예고한다.
영화와 현실 사이
▲'서울의 봄' 스틸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이후 전개는 현실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체포돼 서빙고 분실에서 신문을 받는 모습으로 김재규가 잠깐 등장한다. 계엄법에 따라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된 국군 보안사령관 전두광 소장이 김재규에게 "밖에 나가 보세요. 바뀐 거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은 그대로야"라고 말한다. 전두광의 개성과 영화의 방향을 암시하는 대사로 상대방인 김재규는 영화에서 별다른 극적 의미를 부여 받지 못한다.
실제 벌어진 일과 완전히 다른 장면은 영화의 클라이맥스 부분이다. 영화이다 보니 아무래도 극적인 요소를 강화하기 위해 이태신과 전두광이 직접 대치하는 장면을 만들었고 그 장면을 선악대결의 픽션으로 그렸다.
반란군에 맞선 진압군의 마지막 희망인 이태신 장군이 전두광 무리가 모여있는 30경비단으로 신속하게 이동한다. 광화문 앞 세종대로에 들어서며 이순신 장군 동상을 올려다보는 모습 또한 극적 장치다. 30경비단 방어선 앞에서 이태신은 겹겹이 쳐진 바리케이드를 전차를 앞세워 돌파하기 전 반란 주동자들에게 투항을 요구한다. 30경비단 군인들에겐 상관이 억지로 끌고 나왔음을 알고 있다며 무장해제를 권유한다. 반란군을 지원하러 아직 9사단이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두광은 마이크를 잡고 진압군에 비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반란군이 우세하다며 시간을 끈다.
그러나 이태신이 수경사 야전포병단에 30경비단을 조준하라고 지시하며, 5분 안에 투항하지 않으면 정밀타격을 하겠다고 최후통첩하자 반란군은 공포에 휩싸인다. 전두광이 협상을 시도하지만 이태신은 "대화는 사람끼리 하는 거야"라며 일축한다. 이태신은 포격이 시작되면 즉각 돌격하라고 진압군에게 지시하고 반란군 수뇌부는 혼란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모른다.
신군부의 반란이 실패할 것 같은 결정적 순간에 반전이 일어난다. 군의 야포 사격까지 단 15초 남은 상황에서 2공수에게 발각되어 30경비단으로 끌려온 국방장관(김의성)이 포병단에 사격 중지와 진압군 모든 부대원에게 복귀 명령을 내린다. 이태신은 마지막까지 국방장관에게 반란군 체포 명령을 전군에 내려달라고 간청하나, 장관은 반대로 마이크를 통해 이태신의 직위를 해제한다.
반란군 향한 이태신의 마지막 말
▲'서울의 봄' 포스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민간인 피해를 우려해 결국 교전을 포기한 이태신은 겹겹의 바리케이드를 넘어 전두광을 향한다. 이태신은 삼중 철조망 너머의 전두광에게 "넌 대한민국 군인으로도, 인간으로도 자격이 없어"라는 말을 남기고 연행된다. 5·16군사정변 18년 만의 두 번째 군사반란에서 다시 반란군이 승리한다.
이후 반란군과 진압군의 대조적 운명을 보여주는 것으로 영화는 대미 겸 에필로그를 쓴다. 노래 '방랑시인 김삿갓'을 부르는 전두광을 필두로 반란군의 축하 파티와 고문당하며 만신창이가 된 진압군 주요 인사의 모습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엔딩은 나중에 차례로 대통령이 되는 두 명이 포함된 1979년 12월 14일의 반란군 단체 기념 사진은 실제로 찍은 사진이다.
<서울의 봄>에서 결정적 역사 왜곡이 없었지만 클라이맥스는 실제 역사는 아니다. 그런 영화적 가공이 없었다면 1300만 명의 관객이 들기 어려웠을 것이고 당대의 역사에서 느끼는 안타까움을 공유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현실 역사를 소재로 영화적 형상화가 이루어지면서 관객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고 또 역사의식을 심어주는 데 성공한 좋은 사례이다.
현장 군인들의 높은 역사 의식은 12·3 내란 사태를 기획한 일당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복병이었다. 그들의 역사의식과 의기의 배후에 어떤 식으로든 <서울의 봄>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지 않을까.
"그게 될 거라고 믿었습니까. 뭐, 어디 가서 점이라도 봤어요?"
<서울의봄> 초반, 전두광이 김재규에게 한 대사다. 전두광이 한 말이란 걸 논외로 한다면 이 대사는 꼭 윤석열에게 한 말 같아 김 감독에게 신기라도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계량화하기는 힘들겠지만, 예술이 역사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사례로 <서울의 봄>은 기록될 것이다.
안치용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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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영화, 미술 등 예술을 평론하고, 다음 세상을 사유한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나이 들어 신학을 공부했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ESG연구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영화평론가협회/국제영화비평가연맹 회원.
"어디가서 점이라도 봤어요?" 전두광의 대사가 떠오른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