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뉴-월드 관광> 스틸컷
서울독립영화제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뉴-월드 관광>
한국 / 2024 / 애니메이션
감독 : 이문주
이 작품은 엔딩크레딧에 놓인 한 문장으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박 작가와 산 그리고 1978년의 여름에게'라는 감독의 개인적인 의미가 담긴 문장이다. 이 한 줄의 표현에서 '박 작가'와 '산'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해석하기는 어렵다. 그중에서도 '산'은 인물의 이름을 표기한 것인 것, 우리가 알고 있는 높이 솟아 있는 지형을 말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단, 1978년에 대해서만큼은 정확히 알 수 있다. 이 작품이 내내 보여주는 모든 장면이 70년대 말의 어떤 날에 고정되어 있어서다.
영화의 타이틀이기도 한 '뉴-월드 관광'은 극에 등장하는 여섯 가족이 동대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타게 되는 버스의 이름이다. 동대문의 고속버스터미널도, 버스의 이름도 모두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이제 가족은 이 버스를 타고 동해의 한 바닷가로 여름 바캉스를 떠난다. 특별한 사건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가 바라보는 것은 그저 그 시간을 즐기는 가족의 모습일 뿐이다. 그 과정에서 지금 존재하지 않거나 오래된 장면은 훨씬 더 많이 제시된다. 보름달 빵, 쥬시후레시 껌, 땅따먹기, 예스러운 민박집과 육각형의 커다란 성냥갑, 한자로 쓰인 삼양라면 봉지와 운전석에서 담배를 피우는 버스 운전사까지. 특별한 대사 하나 없이도 해당 작품은 자신이 존재하는 시간을 명확히 드러낸다.
이야기의 진행을 조용히 따르다 보면, 이 작품이 온전히 만들어진 종류가 아니라는 것쯤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이문주 감독은 실제로 기획 의도를 통해 '가장 아름다운 유년의 추억 속으로 어린 자신이 젊은 부모님을 만나러 여행을 떠난다'고 말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 가족의 모양은 달라졌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소중한 추억을 하나의 애니메이션으로 살아나게 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야기라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 오랫동안 잊히지 않고 마음속 깊이 남겨지는 것들 모두가 하나의 이야기에 속한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빠르게 성장해 왔는지도 모른다. 정상적이라면 100년이 넘는 시간을 필요했을지도 모르는 변화를 20-30년 사이에 모두 이뤄냈다. 그만큼 데려오지 못한 기억이 넘쳐나거나 서로 다른 세대 사이에 나눌 수 있는 교집합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도 된다. 이제 우리는 이 작품이 보여주는 모습대로 여행을 떠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바캉스라는 표현조차 어색하다. 그런데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몽글해진다. 수채화 같은 옅은 색채와 동글동글한 그림체도 그런 마음에 몫을 더한다. 설렘과 행복, 고단함과 아련함, 그리고 깊은 그리움. 이 영화 <뉴-월드 관광>에는 지나온 시절에 대한 향수가 있다.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그녀는 왜 사과를 따먹었을까> 스틸컷서울독립영화제
02.
<그녀는 왜 사과를 따먹었을까>
한국 / 2023 / 다큐멘터리
감독 : 김예랑
다큐멘터리 작품 가운데는 감독 본인이 프레임의 중심에 서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보통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중 한 가지는 감독 본인이 속해 있는 상황의 이야기를 스크린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함이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작품으로는 전찬영 감독의 <다섯 번째 방>(2024)이 있다. 이 작품에서 그는 공간과 엄마의 이야기를 가족을 중심으로 자신의 현재와 더불어 카메라 안에 담아내고자 했다. 또 다른 이유는 자신이 속해있는 어떤 집단이나 사회의 문제를 고발하거나 드러내고자 함이다.
김예랑 감독이 직접 출연하고 연출한 다큐멘터리 <그녀는 왜 사과를 따먹었을까>는 후자에 조금 더 가깝지만, 양쪽 모두의 이유를 충족하는 작품이다. 농협의 일반 계약직 직원으로 일하는 감독이 주어진 역할을 해내는 과정에서 경험한 부조리를 드러내고자 한다. 한두 가지 일이 아니다. 정규직 직원이 사용한 식기와 컵을 대신 설거지하거나 탁자와 의자를 도맡아 닦는 단순노동은 기본에 속한다. 정직원은 입지 않는 유니폼을 일반 계약직 여성에게만 의무처럼 강요되는 현실. (정규직은 물론 일반 계약직 중에서도 남성은 유니폼을 입지 않는다.) 심지어 직원들에게 지급되는 태블릿 PC 또한 일반 계약직 직원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법률 검토를 하거나 경리 업무를 보는 전문 계약직까지는 주어진다.)
자신에게 주어진 잡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나 명시된 업무와 실제적인 업무 사이의 괴리 정도는 참고 넘어갈 만하다. 하지만 정규직과 계약직의 경계를 나누고, 계약직 중에서도 전문과 일반 사이에 차등을 두고, 심지어는 성별로도 갈라치기를 하는 교묘하고도 집체적인 기업의 차별은 그럴 수 없다. 감독 본인이 직접 카메라를 들게 된 이유다. 그렇다고 해서 노조를 결성하거나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 등의 적극적인 형식의 투쟁을 벌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영화를 통해서나마 알리고자 했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은 르포 형식의 영상물에서 볼 법한 취재원과 인터뷰이의 정확한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 형식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일상의 업무 시간 내에 촬영이 계속되는 탓에 카메라의 앵글이 언제나 책상 밑이나 땅을 향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인물들의 목소리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감독과 가까이 지내는 주변 정직원들의 신변 보호(?)를 하기 위함의 목적도 있다. 회사의 부당한 규정에 대한 의견을 구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는 내용 중에는 정직원들 또한 현재의 사규에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 또한 포함되어 있어서다. 직접적으로 나서지 못할 뿐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기업의 가장 하위 계급으로 여겨지던 일반 계약직 여성 아래에 또 하나의 계급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청사 내부의 미화를 담당하는 청소 노동자다. 일반 승강기 대신 화물용 승강기 사용을 암암리에 강요당하고, 마땅히 쉴만한 공간 하나 주어지지 않는 그들. 기업 판촉용으로 만들어지는 달력을 개인적으로 부탁하는 장면을 통해서는 그 사소한 물품 하나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그조차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없는 '일반 계약직 여성' 감독은 어떤 마음이 되었을까.
영화의 처음에서같은 기업에 공채 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감독은 이제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이 된다. 회사 정문 앞에 심어진 사과나무에서 사과 하나를 따다 먹는 그의 행동에는 그런 의미가 있다. 어느 것 하나 제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눈치를 보게 만드는 이 공간에서 이 정도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의지의 발현. 혹은 이것조차 문제가 된다면 그때는 과감히 자신의 의지로 떠나고 말겠다는 소심한 반항의 표현. 겉으로는 강한 척을 하면서도 그 사과 한 알을 따기 위해 몇 번을 망설이는 모습으로부터 거대한 시스템의 압력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단순히 어느 기업이 가진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모습에만 있지 않다. 성적과 계급으로 줄을 세우고 이에 따라 차등적으로 취급하는 사회의 구별에 대한 경종이다. 말이 좋아 구별이지, 구별은 어느새 차별이 되어 누군가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된다. 그리고 차별이 되고 난 이후에는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차별이란 언제나 관련 상황에 처한 이들만의 문제일 뿐, 누구도 나서서 해결하고자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작품 <그녀는 왜 사과를 따먹었을까>의 가장 핵심적인 의의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일에 대한 정확한 문제 제기. 세상의 모든 변화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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