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민석 "케이팝이 새 시대 민중가요 역할, 내 노래는 충분히 제 몫 다했다"

[스팟인터뷰] '헌법 제1조' 만든 민중가요 작곡가... "집회 장면 보면서 내내 울컥"

 왼쪽은 민중가요 작곡가 윤민석씨, 오른쪽은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 현장.
왼쪽은 민중가요 작곡가 윤민석씨, 오른쪽은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 현장.연합뉴스/권우성

12.3 내란 사태의 주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가 열린 지난 주말, 민중가요 작곡가 윤민석씨는 케이팝이 울려 퍼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현장을 "벅찬 마음으로 지켜봤다"고 했다. 촛불문화제 등 각종 집회 때마다 빠지지 않던 민중가요가 거의 불리지 않았지만, 이를 비판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당시 집회에는 MZ세대(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대거 참여했고, 그들에게 친숙한 케이팝 문화가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광장에 모인 젊은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응원봉을 한 손에 들고 최신가요를 '떼창'하며 윤 대통령 퇴진을 촉구했다.

SNS 등에선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민중가요 선곡이 적어 아쉽다'는 반응도 나왔다. 그러나 윤씨는 10일 오후 <오마이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오히려 "2024년 윤석열 탄핵을 외친 광장을 보며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확신했다", "내가 만든 민중가요는 지난 시간 충분히 제 몫을 다했고, 지금은 낡았기에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케이팝이 이 시대의 새로운 민중가요"

그는 집회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학생운동 노래패 출신인 윤씨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가사로 유명한 노래 '헌법 제1조'(https://omn.kr/2be3n)를 만든 '스타 민중가요 작곡가'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 당시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그가 만든 이 노래를 한 목소리로 노래했고,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국면에서도 주제가처럼 불렸다. 세월호 진상규명 집회 때마다 울려 퍼진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도 그의 작품이다.

대학시절부터 '전대협 진군가' 등을 만들며 학생운동과 통일운동에 전념해온 윤씨는 1992년 '애국동맹' 사건으로 구속돼 3년을 복역했다. 출소 뒤에는 민중가요 레이블 '프로메테우스'를 만들고 전업 작곡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40여 년 민중가요를 만들어온 그는 자신이 만든 노래의 저작권료를 한 푼도 받지 않았다. 광장에 모인 모두가 함께 외치며 널리 불리기를 바란 마음이었다. 2001년엔 '송앤라이프'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 민중가요 MP3 파일을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도록 했다. 투쟁하는 이들을 위한 민중가요 보급에 힘써온 그는 2017년 제2회 민주주의자 김근태 상을, 같은 해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저는 1980년대 학생 운동을 했던 사람이잖아요. 그때 당시 민중가요도 지금 말로 하면 굉장히 '힙'한 거였어요. 군부독재를 타파하고 민주주의를 쟁취해야 하는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였죠. 지금은 아니죠.

저는 평소에 민중가요를 '일회용 밴드'라고 표현해요. 상처에 일시적으로 붙였다가 좋은 약이 나오면 뗀다는 뜻이에요. 제 노래가 그래요. 당시의 의도, 노래가 품어온 시간, 의미가 있었지만, 제 역할을 다했죠. 이 시대에는 낡은 노래가 되는 게 당연해요. 대신 국회 앞에서 여러 곡의 케이팝이 나왔잖아요. 지금은 대중성을 확보한 케이팝이 시민들에게 간택받아 저희 세대의 민중가요처럼 광장에서 활용되는 거죠."

그는 케이팝이 이 시대의 민중가요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봤다. 이디엠(EDM) 스타일의 에스파 '위플래시' 전주를 깔고 박자에 맞춰 외치는 "탄핵, 탄핵, 윤석열!" 구호와 로제의 '아파트' 간주마다 "탄핵해, 탄핵해, 윤석열 탄핵해 Oh oh oh oh"라며 부르는 노래가 2024년판 민중가요처럼 '힙'하게 울려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난 집회 못 나가지만, 누군가 대신 불러준다면..."

아이돌 노래 합창하며 탄핵투표 촉구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참석한 시민들이 아이돌 노래를 합창하며 탄핵투표에 참여하지 않고 본희의장을 떠난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투표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아이돌 노래 합창하며 탄핵투표 촉구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참석한 시민들이 아이돌 노래를 합창하며 탄핵투표에 참여하지 않고 본희의장을 떠난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투표참여를 요구하고 있다.이정민

케이팝과 더불어 집회 현장을 수놓은 색색의 응원봉도 언급했다. 윤씨는 "(집회 장면을) 보는 내내 계속 울컥했다"며 "저는 주위에 손에 잡히는 건 다 들고 던졌던 낡은 세대의 사람인데, MZ세대(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는 자기의 소중한 사람을 향해 흔들던 응원봉을 들고 나온 거다. 얼마나 감사한가"라고 강조했다.

"저희 세대는 밤 집회를 할 때 라이터로 '치지직' 불꽃을 만들었어요. 그것도 멀리서 보면 나름 장관이었어요(웃음). 그때는 버스나 식당에서도 담배를 필 수 있는 분위기였고 모두 라이터 하나쯤은 갖고 있으니까 그걸 사용한 거죠.

그런데 응원봉은 다르죠. 개인에게 정말 의미 있는 귀한 물건이라는 걸 이번에 배웠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장에 갈 때야 꺼내서 사용하고 혹시 망가질까 봐 평소에는 파우치에 보관한다면서요. 젊은 분들이 이렇게 귀하고 소중한 걸 꺼내들고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집회에 나왔다는 거잖아요. 여기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어요."

그의 말처럼 이번 집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케이팝 팬덤 문화다. 응원봉에 '탄핵' 스티커를 붙인 이들은 소속사의 불합리한 관행 등에 근조화환을 보내던 걸 차용해 국민의힘 의원들의 지역구 사무실에 근조화환을 보내기도 했다. '불의'를 향한 이들만의 대응인 것이다. 동시에 '내향인연합회', 'TK 장녀연합' 등 자신의 개성을 담은 깃발을 만들어 집회에 참석했다. 윤씨는 이 변화도 "마냥 반갑다"고 말했다.

"'강아지발냄새연구회'라는 깃발을 봤는데, 그 깃발 아래로 가고 싶더라고요. 무엇보다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이번 집회가 누구나 가볍게 참여할 수 있는 집회가 된 것 같아서 반가웠어요. 물론 단련된 조직, 지금까지 집회를 주도해 온 노동자나 단체의 힘을 무시할 수 없죠. 그런데 혼자 집회 가서 이들 조직의 깃발 아래 가서 함께 구호를 외치기는 어렵잖아요. 응원봉, 케이팝, 개인 취향이 담긴 깃발 아래에서는 조금 더 편하게 모일 수 있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동력이 되어주고 무서움을 덜어주고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MZ세대에게 연신 '고마움'을 전하던 그가 조심스레 '세월호'를 언급했다.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는 사회적 참사의 반복도 MZ세대의 적극적인 집회 참여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는 거였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에 따르면 비상계엄 선포 이틀 뒤인 지난 5일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다'고 답한 만 18∼29세의 비율은 86.8%로 전 세대 통틀어 가장 높았다.

윤씨는 "또래 희생자가 유독 많았던 2014년 세월호 참사와 2022년 이태원 참사 등을 목격한 세대에게 빚을 진 마음"이라며 "지금 광장을 채운 이들이 참사를 통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걸 배운 세대다. 그래서 더 미안하고 고맙다"라고 말했다.

윤씨는 말기암 투병 중인 아내를 간병하는 동시에 그 자신도 암 환자여서 국회 앞 집회에 직접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주말 집회도 유튜브 생중계로 봐야 했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그런 그에게 탄핵소추안 재발의가 예고된 오는 14일 광장에서 함께 부르고 싶은 노래를 물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3개월여 전 그의 유튜브 채널에 올려놓은 곡 '이래야, 나라다'를 언급하며 마지막 말을 전했다. '이래야, 나라다'(https://omn.kr/2be3l)는 "범죄자 김건희는 구속! 쓰레기 윤석열은 탄핵!"을 가사로 만든 2분정도 되는 곳이다.

"굳이 제 짧은 노래를 말한 건 노래가 불쌍해서요. 김건희, 윤석열 이렇게 이름을 박은 건 당신들이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걸 남기고 싶어서였거든요. 이때 말고는 더는 쓰일 일이 없고 또 쓰여서도 안 될 노래기도 하고요. 지금 이 사태를 만든 게 누구인지, 그 주범들을 콕 짚어 밝히고 싶었어요. 제가 직접 집회에 나가 부르지는 못하지만, 누군가 한 번이라도 불러주고 들어준다면 저도 노래에 덜 미안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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