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산의 뱃속> 스틸컷
서울독립영화제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도시의 사람들은 빠르고 화려한 변화 속에서 많은 것을 얻기도 하지만 또 잃기도 하며 살아간다. 이름 모를 골짜기, 멀리 떨어진 외딴곳이 간직하고 있을 오래된 기억과 사건의 흔적이다. 분명히 존재했지만 지금까지 이어지지는 못한, 모두가 배워 알고 있지만 직접 목격하지는 못한 순간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에, 현재의 우리가 품지 못하는 것을 오랫동안 머금고 있는 공간들. 영화 <산의 뱃속>은 넓은 평야로 둘러싸인 철원에 위치한, 해발 300m가 조금 넘는 야트막한 소이산을 배경으로 한다.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이기도 했고,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하에서 적극적인 수탈의 공간이기도 했던 곳이다.
이 작품이 과거의 품으로부터 시작되어 다시 과거의 장면으로 되돌아가는 이유는 윤재원 감독의 말에서부터 포착해 볼 수 있다. 어린 시절 할머니로부터 들었던 옛이야기, 그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피난길의 기억이다. 시작점은 전작인 <해, 호랑이 소녀, 꽃>(2013)에서 실제 할머니의 모습을 담아낸 감독의 자전적 성향이 반영된 결과, 그 연장선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연로한 까닭으로 물리적 활동반경은 한정적이었으나 그 안에 담을 수 없는 기억을 꺼내놓으시던 모습. 이번에는 그 프레임을 깨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전쟁의 기억이 소중한 것을 잃은 사람들을 따라다니는 불안과 닮아 있다고 말한다. 지금의 누군가에게는 문자나 영상으로만 마주한 오래된 과거의 이야기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지금까지 남아 있는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일 수 있다고 말이다. 이 이야기는 두 지점 사이를 관통한다. 지나온 역사이면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현실이다. 지나온 길 위에는 개인의 걸음과 역사의 발자국이 함께 새겨진다.
02.
"진짜 아름답지 않아요? 누군가에게 자리를 내주고 사라진다."
신입 생태 문화 해설사 미령(문혜인 분)은 일주일 뒤에 있을 탐방객들의 인솔을 위해 사전 답사를 하며 연습 중이다. 많은 것을 연습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직접 설명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기에 때마다 말문이 막힌다. 그의 곁에는 베테랑 선배 해설사 명희(유은숙 분)가 있다. 10년도 전에 이곳 철원으로 먼저 넘어와 이 지역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몸소 느끼고 전달하는 일을 해 왔다. 미령의 연습을 돕기로 한 명희와 함께 두 사람은 산을 오르며 지나온 역사 속의 이야기와 함께 각자가 가진 사적인 일들을 교환하기 시작한다. 현재나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걸어왔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자리의 일들이다.
다른 작품과 달리 이 이야기에서 두 인물 미령과 명희가 생태문화 해설사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철원이라는 지역과 소이산이라는 특정한 장소를 지리적, 역사적으로 설명하는 일이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중요해서다. 다시 말하면, 이 영화는 다른 작품들처럼 이야기를 창조해 내기 위해 배경과 시간을 가져오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반대로 이미 존재하는 배경과 시간 위에 가상의 이야기를 세우는 일에 가깝다.
유사한 맥락에서 두 사람이 연습 과정에서 나누는 이야기와 스크립트 내용은 단순히 또 다른 극 중 인물들, 우연히 만나게 되는 세 여행객과 훗날 마주하게 될 탐방객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지금 스크린 앞에 존재하는 관객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 지역이 제주를 제외한 한반도의 유일한 화산 지형이며 용암대지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나 민통선 내에 존재하는 아이스크림 고지(한국전쟁 당시 2만 7000여 발의 포탄이 쏟아지며 산봉우리가 마치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을 연상케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등에 대한 설명을 그들의 대사를 통해 알 수 있게 된다. 이는 다시, 해당 공간과 가깝지 않은 우리가 역사적 사실로부터 역시 얼마나 먼 곳에 있는지 깨닫게 만든다.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산의 뱃속>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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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두 사람이 함께 거닐고 있는 소이산의 안쪽, 산등성이 바닥 아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그래서 중요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단한 지면 같지만 실제로 그 속은 비어 있는 상태다. 과일의 껍질만 제외하고 그 속을 파낸 것처럼 말이다. 한국 전쟁 당시 전투기의 폭격에 대비해 숨을 곳을 만들었던 탓이다. 군인들이 지나다닐 통로를 만들고 입구마다 문을 매달고 했던 것이 지금에는 모두 전쟁이 남긴 상흔이 되었다. 멀리서 볼 때는 그저 야트막한 동산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직접 산을 오르는 동안에 그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산의 뱃속'에 대한 진짜 의미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한 가지가 더 있다. 상흔은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새겨지지 않는다. 지금 보이지는 않지만 당시의 영향을 받은 상태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것들이 존재한다. 지금 여전히 땅속에, 남북의 사이에 묻혀 있다는 수만 개나 되는 지뢰나 벙커와는 또 다른 흔적이다. 실제로 이 지역의 매미 울음소리는 일반적인 매미의 울음소리와 다르다. 이렇게 많은 것들이 여전히 현재에 그 증거처럼 산재해 있는데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이를 대신해 잘 간직하기 위해서 산이 자신의 뱃속에 오랜 세월 동안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이 영화 <산의 뱃속>이 포착해내는 것이고. 그 이야기와 시간을 경험하고 느끼기 위해서는 직접 찾아야만 하는데 대개는 그렇지 못하다.
04.
"한순간에 사라진 도시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미령은 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철원 평야를 바라보며 이렇게 묻는다. 과거 1만 명이 넘게 살았던, 백화점과 학교, 교회가 줄지어 서 있어 지금의 명동과도 같이 번화했던 곳이다. 그래서일까. 일본군 역시 이 지역을 수탈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고 한다. 기름진 평야에서 생산된 곡식뿐만 아니라 수도(水道)가 서울보다 먼저 설치된 이 공간의 번영을 빼앗기 위해서다. 그리 머지않은 시간의 이야기다. 이처럼 한 순간에 망가져 버리는 무엇에 대해 그는 깊이 생각한다. 지금 이곳에는 드넓은 대지와 푸르른 자연만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영화의 전반부에서 명희가 이야기했던 대사. '누군가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사라진 것의 아름다움'이 번뜩인다. 두 대사가 뜨겁게 부딪힌다. 나는 이 대사 사이의 거리가 명희와 미령이 현재를 받아들이는 차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넓게 보자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하나의 현상에 대한 서로 다른 반응. 영화의 바깥에서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관점과 입장 사이의 골짜기처럼 받아들여진다. 어떤 쪽이 옳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 또한 그런 입장을 조금도 내비치지 않는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두 사람이 진행하는 문화 해설의 결은 분명히 다를 것이라는 점이다.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산의 뱃속> 스틸컷서울독립영화제
05.
이 작품 <산의 뱃속>은 많은 대사량을 바탕으로 극을 이끌어간다. 어떤 지점의 이야기는 한 번에 모두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전문적이기도 하다. 앞서 이 이야기가 이미 존재하는 배경과 시간 위에서 완성된 것이라고 말한 것과도 상응한다. 그로 인해 영화는 스크린 앞의 관객들을 정확한 시간 위로 옮겨다 놓을 수 있게 된다. 그 자리에서 무엇을 떠올리고 각자의 뱃속에 담아 돌아올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이제 영화의 손을 떠났다. 여전히 이곳에 존재하지만 지나가 버린 어느 역사 속의 한 이야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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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사이에 묻혀있는 지뢰, 한순간에 사라진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