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헨젤 : 두 개의 교복치마> 스틸컷
서울독립영화제
02.
사실 영화 속 인물인 한슬에게 주어진 남들과 다른 환경은 청소년 요실금이라는 병증에만 있지 않다. 이 증상이 조금 더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청소년 시기의 부끄러움을 극대화할 수 있는 소재이기에 부각되고 있을 뿐이다. 가장 큰 차이는 가정 환경에 있다. 외국에서 일하는 엄마와 떨어져 외갓집에서 외할머니(정애화 분)와 함께 생활하는 한슬의 일상은 또래의 삶과 많은 부분이 다르다. 함께 생활하는 할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는 탓이다.
강요되는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할머니의 허리 디스크도 신경 써야 한다. 아직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구석이 많을 나이이지만 마음 편히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뜻이다. 문화적으로도 그렇다. 영화 속에서 한슬이 요즘 유행하는 음악을 듣거나 연예인을 좋아하는 장면은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할머니의 오래된 가요를 듣고 부른다. 좋은 집에 살고 있는 서울 외삼촌 집으로 가야 하는데 자신 때문에 가지 못하고 있다는 할머니의 혼잣말 또한 신경이 쓰인다. 정작 외삼촌 가족은 할머니를 반기는 것 같지도 않은데.
03.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긍정적이다. 나는 나를 믿는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언제나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한슬의 성격을 이제 짐작할 수 있다. 정해진 규칙에서 벗어나지 않고 크게 모나지 않는. 하지만 이제 결단이 필요하다. 죽기보다 싫은 음악 선생님의 장기 자랑을 피하기 위해서다. 다른 반 친구들은 입을 대야 하는 리코더를 빌려주려고 하지 않고, 건강을 이유로 조퇴를 허락해 줄 양호 선생님은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이제 남은 방법은 단 하나다. 몰래 학교 담을 넘어 집에 있는 리코더를 가지고 돌아오는 것. 문제는 그 순간 요의가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화장실도 참고 집으로 달려가던 한슬의 교복이 조금씩 젖어오기 시작한다. 소변이 새기 시작한 것이다. 어렵사리 집에 도착해 리코더를 챙겨보지만 교복 치마는 이미 모두 젖어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없다. 장기 자랑을 얼마나 하고 싶지 않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같은 학교를 졸업한 엄마의 오래된 치마를 찾아 입고 수업에 들어가 보지만 늦어버린 상황, 어쩔 수 없이 단상 앞에 서서 반 친구들을 마주하게 된다. 더 이상 이 장기 자랑을 피할 방법은 없다. 두 눈을 감고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인 채로 할머니가 자주 듣던 오래된 가요를 부르기 시작한다.
이 장면에 대한 긴 설명이 필요했던 이유는 작품의 타이틀인 '두 개의 교복치마'에 대한 의미를 뚜렷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다. 한슬은 두 가지 상황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화장실을 가는 대신 친구들 앞에 서거나, 화장실을 포기하고 집에 놓고 온 리코더를 챙겨 오는 일이다. 전자를 선택하면 자신의 교복 치마를 지킬 수 있지만 장기 자랑을 해야 하고, 후자를 선택하면 교복 치마를 버리는 대신 (엄마의 교복 치마를 입고) 장기 자랑을 피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치마도 버리고, 장기 자랑도 해야만 하는 최악의, 모두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어떤 중요한 행동을 스스로 결정하고 나아갔다는 사실이다.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헨젤 : 두 개의 교복치마> 스틸컷서울독립영화제
04.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장기 자랑이 끝나고 한슬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그의 노래를 들은 반 친구들이 다가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심지어 그동안 듣지 못했던 예쁘다는 말까지 건넨다. 어쩌면 그동안 상황을 어렵고 불편하게 만들어 왔던 것은 자신의 소극적이고 회피적인 태도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피하고 싶던 자리가 조금씩 편안해진다. 요실금이 치료된 것도 아니고,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환경이 달라진 것도 아닌데.
영화의 마지막에서 한슬은 청소년 질병 자가 진단을 통해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청소년 요실금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97%의 높은 확률이다. 치료 방법을 검색함과 동시에 인터넷 연결이 끊어지며 이 영화의 러닝타임 속에서는 해당 여부를 알 수 없게 되지만, 더 이상 중요한 것이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다. 친구들 앞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 일 역시 분명한 용기였을 테지만, 어떤 선택 앞에서 자신의 의지와 믿음을 갖고 나아가는 일을 배우는 일만큼 중요한 것은 또 없을 것이니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가장 평범한 순간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장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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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