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해피엔드> 스틸컷
서울독립영화제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영화 <해피엔드>는 가까운 미래의 일본 도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이제 곧 졸업을 앞둔 말썽꾸러기 절친 유타(하야토 쿠리하라 분)와 고우(유키토 히다카 분)는 어느 날 밤, 교장 선생님의 자동차에 큰 장난을 저지른다. 그의 고급 스포츠카를 교정 한가운데에 수직으로 박아버린 것. 평소에도 사회와 규범에 대한 저항 의식이 컸던 두 사람은 학생들 몰래 이루어지는 교장의 로비에 반항심을 느낀다. 다음 날 바로 학교는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모든 학생을 취조하기 시작하고, 이 일로 자동 감시 시스템을 설치하기에 이른다. 모든 학생을 카메라로 지켜보며 교칙에 어긋나는 행동이 발견될 시 바로 벌점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한편, 일본 사회적으로도 큰 혼란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대지진의 전조가 일상의 위협으로 자리 잡으며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총리 피습 사건이 발생하며 사회 전반에 재일 외국인을 배척하려는 움직임이 생긴다. 일부 시민은 이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사회 운동을 벌이지만 경시청은 이에 대해 단속을 강화하며 곳곳에서 격렬한 대립 또한 일어난다. 사회와 학교, 어느 곳에도 안전한 곳은 존재하지 않고 영화 속 학생들에게는 선택이 강요된다. 이 잘못된 세상과 시스템에 순응하며 살아갈 것인지, 어떤 방법으로든 문제를 해결하며 나아갈 것인지.
소라 네오 감독의 영화 <해피엔드>에는 오늘날 일본 사회가 가진 사회정치적 역학 관계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우익 정부와 민족주의적 외국인 혐오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이민자들이 정착하며 다양한 민족과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함께 성장하게 되는 상황. 유타와 고우를 포함한 극 중 10대 인물들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물론 두 인물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해 왔고, 그로 인해 갈등과 마찰을 경험하게 된다. 이 작품의 표피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가까운 사이였던 두 친구의 엇갈림이지만, 조금 더 깊숙한 곳에는 사회의 시스템이 우리의 삶과 관계를 무의식적으로 어떻게 형성하고 움직일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놓여있다.
02.
"훔쳐버리자. 감시 시스템이 쫄 거 없어."
유타와 고우가 속해있는 음악연구동아리의 친구들은 두 가지 환경으로부터 시스템적인 억압을 경험한다. 모두 앞서 언급했던 내용이다. 학교의 감시 시스템과 사회의 민족주의적 성향에 의한 배척과 압박. 이를 위해 영화는 이들의 동아리가 학교에 의해 폐쇄되고 기물을 모두 빼앗기는 상황으로, 유타와 아타(유타 하야시 분)를 제외한 고우, 밍(쉬나 펭 분), 톰(아라지 분)을 외국인으로 설정하고 있다. 물론 이들은 저항한다. 학교의 시스템과 학칙에는 빼앗긴 기물을 다시 탈취해 이탈하는 방식이 활용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모두가 학생이라는 동일한 위치와 상황에 놓여 있을 수 있어서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다르다. 이들 모두가 다른 자리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고우라는 인물을 유타와 달리 재일 교포 4세 한국인으로 그려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태생부터 일본인인 유타와는 사회적으로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 교내에서 친구로 지내는 것과는 다른 개념의 일이다. 이를 정확히 하기 위해 영화도 몇 번의 신을 통해 레이어를 쌓는다. 두 사람이 학교의 우퍼 스피커를 몰래 훔쳐 옮기는 장면에서도 고우만이 경찰에 끌려가고,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자위대의 특별 수업에서도 외국인 학생들만이 귀화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실에서 쫓겨난다. 고우의 엄마가 경험하는 식당 외벽의 혐한 낙서는 이런 시기엔 일상과도 같다.
고우가 유타와의 관계에서 벗어나 사회의 차별에 맞서 시위운동을 하는 후미(이노리 키라라 분)를 따르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교칙에는 어긋나는 일이지만, 애초에 교칙을 지키는 일에는 관심도 없었을뿐더러, 그가 놓인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하면 당연하게 느껴진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절친했던 친구 관계, 동아리 구성원들과의 연결고리가 약화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유타와는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해피엔드>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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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두 사람의 갈등은 극의 전개를 위한 스토리적인 장치로도 볼 수 있지만, 영화의 깊은 곳에 놓인 '사회의 시스템이 우리의 삶과 관계를 무의식적으로 어떻게 형성하고 움직일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과도 긴밀히 연결된다. 애초에 일본인으로 태어나 사회의 압박이나 차별, 배척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유타는 그저 지금 당장 죽더라도 즐기다 죽겠다는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고우는 그럴 수 없다. 외국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생기는 그에게 '즐긴다'는 건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타의로 인해 세상의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게 되는 그에게 함께 음악을 하며 꿈을 꾸던 과거는 이제 돌아갈 수 없는 순간이 된다.
이 영화에서 학교의 감시 시스템은 작은 사회적 압박과도 같다. 특히 모범생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유타와 고우에게는 더욱 그렇다. 다시 말하면, 유타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압박과 배척(시스템의 페널티)에서는 적극적으로 벗어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실제 사회로부터는 그렇지 않다. 결국 이 간극을 경험하는 자와 하지 못하는 자의 차이다. 어쩌면 영화의 중후반부를 지나며 유타가 처음의 음악동아리 멤버들 사이에서 혼자가 되는 과정은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작은 차이가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되는 큰 결과를 가져온다.
04.
"잘못된 사회를 따르는 게 비정상이죠."
학교의 야구부 주장과 유타가 보여주는 우스꽝스러운 신에는 현상적으로 즐거울지 몰라도 학교의 감시 시스템에 허점이 존재한다는, 사회의 전체 시스템 또한 완벽할 수 없다는 감독의 날카로운 시선이 담겨있다. 교내 건물 사이에 숨어 담배를 피던 유타를 나무라기 위해 꽁초를 집어 든 야구부 주장이 감시 시스템의 한계로 인해 벌점을 대신 받는 장면이다. 카메라의 앵글에 걸리지 않는 위치에 있는 행위자 대신 카메라 앵글 안에 있는 비행위자에게 주어지는 페널티는 시스템의 허점에 해당한다. 다시, 시스템의 허점은 공정하지 못한 피해자를 낳는다. 이는 사회라고 다르지 않다.
후미와 외국인 학생이 주축이 되어 교장실을 점거하고 감시 시스템의 존재에 항의하는 장면도 그래서 존재한다. 물론 그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학생들 사이에 이견은 존재한다. 이미 시스템에 적응하고 순응하게 된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영화는 감추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잘못된 일에 항거하고 정당한 권리를 얻는 경험을 획득한 세대가 만들어가는 내일의 사회는 분명 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침묵과 방관으로 지지가 되는 사회보다는 더 나은 모습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해피엔드> 스틸컷서울독립영화제
05.
한 번의 시도로 모든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다. 일련의 사태 이후 학생들의 의사와 자유를 존중하겠다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자동차를 망가뜨린 범인을 자수시키라고 거래를 제안하는 교장이 있다.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지만, 고우의 가족과 곁의 사람들, 또 다른 재일 외국인들이 감내해야 할 현실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학교의 감시 시스템 철회에 대한 논의가 이제 시작되었듯이, 사회도 그렇게 조금씩 바뀌어나갈 것이다. 언제까지 참고 가만히 기다려서가 아니라, 움직이고 행동함으로 인해서다.
사회의 시스템으로부터 우리의 삶과 관계를 어떻게 분리하고 주도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까. 혹은 그 시스템이 어떻게 제멋대로 그 영역을 침범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들을 이 영화 <해피엔드>의 끝에서 하게 된다. 그리고 잘못된 지난 시간을 조금이라도 바로 잡기 위해 스스로 매듭지으려는 유타의 모습으로부터 그 해법을 찾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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