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을 이겨내고 위대한 족적을 남긴 여성 천문학자 '헨리에타 레빗'을 이야기하는 연극 <사일런트 스카이>는 스타 배우 안은진이 출연하며 화제를 불러 모았다. 최근 영화나 드라마에서 활약하는 인기 배우들이 연극 무대에 복귀하거나 데뷔하는 흐름을 안은진이 이어간다.
올해만 해도 <벚꽃동산>에 전도연과 박해수가 출연하고, 유승호가 <엔젤스 인 아메리카>로 연극에 데뷔했다. 황정민은 <맥베스>로 2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왔고, 조승우도 최근 <햄릿>을 통해 데뷔 24년 만에 처음으로 연극 무대에 섰다. 안은진도 <사일런트 스카이>를 통해 7년 만에 연극에 복귀하며 이 대열에 합류한 셈이다.
국립극단이 선보이는 연극 <사일런트 스카이>는 안은진을 필두로 헨리에타의 동생 '마거릿 레빗' 역에 홍서영, 헨리아타의 동료 '윌러미나 플레밍' 역에 박지아, '애니 캐넌' 역에 조승연, 천문학자 '피터 쇼' 역에 정환을 캐스팅했다. 11월 29일 개막해 12월 28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열정의 상호보완
▲연극 <사일런트 스카이> 공연사진
국립극단
천문학을 향한 호기심이 가득한 헨리에타 레빗은 하버드 대학 천문대로부터 제안을 받고 들뜬 마음으로 천문대를 찾아간다. 하지만 헨리에타에게 부여된 역할은 대학의 연구원들이 촬영한 별의 좌표를 계산하고 기록하는 것이었다. 망원경을 통한 천체 관측은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았으며, 이는 헨리에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헨리에타는 하버드 대학의 피터(극중 유일한 남성)와의 첫 만남에서 '열정'을 이야기한다. 열정은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지만, 이런 열정을 대하는 헨리에타의 초반 태도는 다소 미성숙하다. 여성 차별을 직시한 헨리에타는 피터를 향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자신의 열정만을 중시한 채 다른 이들의 열정은 경시한다.
<사일런트 스카이>의 등장인물들은 각자만의 고유한 열정을 간직하고 있다. 피터도 천문학을 향한 열정을 간직하고 있고, 헨리에타의 동생 마거릿은 음악에 열정적이다. 동료 윌러미나, 애니도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을 지녔고, 나름의 업적도 있다. 또 애니는 여성 참정권 운동에 열렬히 참여하는 이중 생활을 한다.
그러나 초반의 헨리에타는 천문학을 대하는 피터의 열정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동생 마거릿의 열정에는 무관심하다. 연극은 헨리에타가 타인의 열정을 존중하고, 열정 간의 조화를 이루며 성장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그 과정에서 동료들과 동생은 헨리에타에게 나름의 깨달음을 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세페이드 변광성에서 일련의 패턴을 찾아낸 것은 실제 헨리에타가 남긴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된다. 연극에서 그 패턴의 발견은 헨리에타가 타인의 열정을 존중하고 자신의 열정과 타인의 열정을 더할 때 이루어졌다. 마거릿의 음악에서 영감을 얻고 별들을 바라본 후, 패턴을 발견한 것.
연극에는 "상호보완"이라는 대사가 많이 등장한다. 그 대사를 빌려 필자는 헨리에타의 발견에 '열정의 상호보완'이라는 이름이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사일런트 스카이>는 타인의 열정을 대하는 방식, 자신의 열정을 활용하는 성숙한 방법을 일깨운다.
차별을 꼬집고 연대를 이야기하다
▲연극 <사일런트 스카이> 공연사진
국립극단
동시에 <사일런트 스카이>는 열정만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꼬집는다. 당시 천문대에서 여성의 역할은 계산원에 불과했다. 대체로 남성으로 구성된 천문학자들의 연구를 보조하는 역할이었고, 아무리 업적이 뛰어나도 인정받지 못했다. 천체 망원경을 볼 수도 없었고, 당연히 독자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도 없었다.
이렇게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었음에도 등장인물들은 나름의 성과를 남겼다. 애니 캐넌은 항성 분류법을 고안했고, 윌러미나 플레밍은 측정과 분류에서 두드러지는 모습을 보였다. 헨리에타 레빗은 세페이드 변광성의 패턴을 발견하는 업적을 남기며 자신 앞에 놓인 벽을 뛰어넘는 듯했다.
그러나 벽을 넘어도 새로운 벽이 기다린다. 헨리에타는 후속 연구 참여를 거절당했는데, 학위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헨리에타는 스스로 천문학자이니 연구에 참여하겠다고 항변하지만, 피터는 학위가 없으니 천문학자가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학위라는 교육 제도의 벽은 단단했고, 제도에서 야기된 피터 등 개인의 태도 역시 강경했다. 제도와 개인의 일상적 실천은 서로 조응하며 차별과 배제의 벽을 더 강고하게 만들었다. 당시 여성이라 교육 기회가 제한되었고, 따라서 학위 소지자가 많지 않았다는 현실은 감춰졌다.
이런 현실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헨리에타와 여성 동료들은 연대해 벽을 부수려 한다. 강고한 벽에 자그마한 균열이 생기고, 피터도 현실을 되돌아본다. 제도와 개인의 일상적 실천에서 차별이 강화된다면, 이들의 연대는 개인적 실천을 성찰하게 함으로써 제도의 벽을 허무는 시도라고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연대의 성과는 더디지만 나타나고, 이들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하나씩 나타난다. 그 결과물을 이야기하는 연극의 마지막 장면은 엄혹한 현 시국과 맞물려, 더디더라도 분명한 시민의 발걸음을 연상케 하기도 했다.
▲연극 <사일런트 스카이> 공연사진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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