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에서는 지난 1987년부터 1993년까지 방송된 <TV손자병법>이라는 드라마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 고 오현경과 서인석, 장용, 김희라, 정종준, 고 김성찬 등 지금은 고인이 됐거나 노년이 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직장인들의 애환을 사실적이면서도 코믹하게 다뤄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TV손자병법>은 훗날 <신 손자병법>과 <싱싱 손자병법> 같은 스핀오프 작품들이 제작·방송되기도 했다.

<TV손자병법>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등장인물들의 이름이었다. <TV손자병법>은 대한민국의 기업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유비와 관우, 장비, 조조, 여포 등 <삼국지> 캐릭터들의 이름을 사용했다. 물론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새로 투입되는 캐릭터들 중에는 <삼국지>와 관련 없는 이름도 많이 있었고 손권,주유 같은 오나라 인물들과 원소, 동탁처럼 <삼국지> 초기 주요 인물들의 이름도 사용하지 않았다.

<TV손자병법>이 막을 내린 지 19년이 지난 2012년, SBS에서 직장인의 애환과 성공스토리를 담은 드라마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작품의 특징은 진나라 말기부터 전한 초기까지 중원의 정세를 풀어낸 소설 <초한지>에 나오는 캐릭터 이름을 대거 사용했다는 점이다. <자이언트>와 <기황후>,<배가본드> 등을 집필한 장영철, 정경순 작가가 각본을 쓰고 이범수와 정려원이 주연을 맡았던 <샐러리맨 초한지>였다.

 <샐러리맨 초한지>는고전소설의 이름을 따온 직장인 드라마로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샐러리맨 초한지>는고전소설의 이름을 따온 직장인 드라마로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샐러리맨 초한지> 홈페이지

SBS와 유독 궁합이 잘 맞는 배우

영화배우로 먼저 알려진 이범수는 유독 SBS와 궁합이 좋은 편이다. 2007년 <외과의사 봉달희>에서 안중근 역을 맡으면서 7년 만에 드라마에 복귀한 이범수는 이듬 해 김은숙 작가의 <온에어>에서 거물 연예 기획자 장기준을 연기하면서 두 편 연속 20%가 넘는 시청률을 견인했다. 그리고 이범수는 2010년 장영철,정경순 작가가 집필한 SBS 창사 20주년 드라마 <자이언트>에 출연했다.

<자이언트>에서 컨테이너부터 시작한 작은 회사를 대한민국 최고의 건설 회사로 키우는 주인공 이강모 역을 맡은 이범수는 <자이언트>를 40%의 높은 시청률로 이끌며 그 해 SBS 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SBS에서 세 편의 드라마를 연속으로 히트시킨 이범수는 2012년 <자이언트>를 집필했던 장영철, 정경순 작가와 다시 한 번 의기투합해 드라마 <샐러리맨 초한지>에 출연했다.

앞선 세 편의 드라마에서 주로 진지한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던 이범수는 <샐러리맨 초한지>에서 '전공'인 코믹 연기를 마음껏 선보이며 시청자들에게 시원한 웃음을 전달했다. 물론 이범수가 연기한 유방도 많은 시련을 경험하지만 유방은 결코 좌절하지 않고 언제나 긍정적이고 유쾌하게 시련을 이겨낸다. 유방은 뼛속까지 정의로웠던 <자이언트>의 이강모에 비해 좀 더 승리 지향적인 면이 강한 캐릭터다.

사실 연기 변신이라는 측면에서는 정려원이 더욱 파격적이었다. 시청자들에게는 여전히 <내 이름은 김삼순>의 청순한 김희진 이미지가 강했던 정려원은 <샐러리맨 초한지>에서 욕쟁이 캐릭터 백여치를 연기했다. 정려원의 전작이 연약한 캐릭터를 연기했던 영화 <통증>이었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정려원의 변신에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정려원은 백여치 역을 잘 소화하며 우려를 불식 시켰다.

시청자들의 사랑 받았던 에필로그

 이범수(왼쪽)와 정려원은 <샐러리맨 초한지>에서 발군의 코믹연기를 선보이며 많은 웃음을 선사했다.
이범수(왼쪽)와 정려원은 <샐러리맨 초한지>에서 발군의 코믹연기를 선보이며 많은 웃음을 선사했다.SBS 화면캡처

장영철, 정경순 작가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부부 작가다. 2002년 SBS의 <정>을 공동 집필한 장영철,정경순 작가는 2005년 결혼 후 <자이언트>,<돈의 화신>,<기황후>,<몬스터>,<배가본드> 등 여러 작품을 공동 집필했다. <샐러리맨 초한지>는 <자이언트>에 이어 유인식PD와 장영철, 정경순 작가가 호흡을 맞춘 두 번째 작품으로 장영철,정경순 작가가 쓴 작품들 중 코믹 요소가 가장 강한 드라마다.

유인식PD와 장영철, 정경순 작가를 비롯해 <자이언트>의 제작진이 대거 참여한 <샐러리맨 초한지>는 출연 배우들 역시 <자이언트>와 겹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일단 주인공이 이범수로 동일하고 이덕화, 김서형, 윤용현, 이기영, 송경철, 김성오 등 <자이언트>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샐러리맨 초한지>에도 대거 등장했다. <자이언트>의 빌런 조필연 역의 정보석도 6회에서 조필연 역할로 카메오 출연했다.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을 소설 <초한지>에서 따오긴 했지만 <샐러리맨 초한지>는 대한민국 기업들 간, 그리고 기업 내부의 경쟁을 다룬 드라마이기 때문에 내용이 전개될수록 원작과는 점점 멀어졌다. 다만 유방과 항우(정겨운 분)의 경쟁이라는 큰 대결 구도 속에서 <초한지>에 등장하는 여러 고사성어들이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소개되면서 드라마의 전개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줬다.

<샐러리맨 초한지>는 주요 인물이 사망하거나 회사가 망하는 등 심각하게 끝나는 회차도 있지만 매 회가 끝날 때마다 짧은 에필로그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안겨줬다. 바쁜 촬영으로 예고편조차 나가지 못한 회차에서도 에필로그는 항상 나왔다. 당시만 해도 드라마에 에필로그가 나오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기 때문에 <샐러리맨 초한지>의 에필로그는 시청자들에게 소소한 사랑을 받았다.

8.7%의 한 자리 수 시청률로 시작한 <샐러리맨 초한지>는 최종회 시청률 21.7%를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닐슨코리아 시청률 기준). 하지만 40%를 넘겼던 유인식PD-장영철,정경순 작가 콤비의 <자이언트>는 물론이고 이범수가 출연했던 SBS 드라마 네 편 중 가장 낮은 시청률에 머물렀다. 결국 이범수는 <샐러리맨 초한지>를 끝으로 10년 넘게 SBS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고 있다.

'악역 전문' 김서형의 전공 살린 연기

 김서형은 <샐러리맨 초한지>에서 진시황 회장을 죽이고 천하그룹을 집어 삼키는 악녀 모가비 역을 맡았다.
김서형은 <샐러리맨 초한지>에서 진시황 회장을 죽이고 천하그룹을 집어 삼키는 악녀 모가비 역을 맡았다.SBS 화면캡처

정려원의 파격적인 변신에 다소 가려지긴 했지만 천하그룹 생명공학 사업부 연구원 차우희를 연기했던 홍수현의 열연도 대단히 돋보였다. 홍수현은 <샐러리맨 초한지>에서 고상하고 지적인 이미지와 달리 옥탑방에 살며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생계형 캐릭터를 잘 소화하며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정겨운이 연기한 최항우는 스탠퍼드 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해 증권사의 펀드매니저로 일하다가 장초그룹 최단기간 이사에서 천하그룹 부사장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아버지를 비극적인 죽음으로 몬 진시황 회장(이덕화 분)에게 원한을 갖고 있고 사사건건 유방과 충돌하면서 악역으로 돌아서는 듯 했지만 차우희와 러브 라인이 생기면서 완전한 빌런이 되진 않았다.

항우가 하지 못한 드라마의 메인 빌런 역할은 <아내의 유혹>에서 신애리, <SKY 캐슬>에서 김주영을 연기하면서 악역 연기에 한 획을 그은 배우 김서형이 맡았다. 김서형이 연기한 모가비는 진시황 회장의 비서실장으로 진시황의 주사기를 바꿔치기해 진시황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고 자신이 직접 천하그룹의 회장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유방, 여치의 노력과 항우의 배신으로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다가 파멸했다.

<자이언트>에서 조필연의 오른팔로 온갖 악행을 저지른 고재춘을 연기했던 윤용현은 <샐러리맨 초한지>에서 유방의 수하 윤번쾌 역을 맡았다. 처음에는 유방의 까칠한 상사였지만 학창 시절 자신이 넘버3로 활동했던 서클을 유방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두 사람의 입장이 바뀌었다. 번쾌는 유방이 하는 일마다 불만을 가지다가도 유방이 학창 시절 이야기를 꺼내면 군말 없이 유방의 지시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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