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2월, 연말정산의 시기가 돌아왔다. 영화계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1년간 어떤 작품, 감독, 배우가 관객을 가장 웃고 울게 했는지 갑론을박이 또 한 번 벌어질 차례다.

그 갑론을박에 감히 뛰어들려 한다. 1년간 스크린을 수놓은 수많은 배우 중 유달리 뇌리에 각인된 신선한 배우 3인을 꼽아봤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 담겨있는, 이 신인배우들의 매력을 공유한다.

아이돌 출신 편견 지운 김민주

 영화 <청설> 스틸컷
영화 <청설> 스틸컷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과거에 비해 덜하지만, 한 배우를 평가할 때 '아이돌'은 여전히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물론 임시완, 배수지, 아이유, 이준호 등 배우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이들도 많지만, 처음부터 이들처럼 배우로 평가받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2024년 11월, 그룹 '아이즈원' 출신 배우 김민주는 아이돌이라는 수식을 떼기에 충분한 배우였다.

김민주는 동명의 대만 영화를 리메이크한 <청설>에서 청각장애인 수영 선수 '가을' 역을 맡았다. 사실 그녀의 배역과 이력을 고려했을 때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었다. 가을이라는 캐릭터는 언니 '여름'(노윤서)을 사랑하지만 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주체로 거듭나고 싶어 한다. 동시에 언니의 성장을 응원하는 복잡한 감정을 오로지 수화와 표정, 제스처만으로 표현한다.

대사가 단 한 마디도 없는 제한적인 환경은 결과적으로 도움이 된 것 같다. 화재 사고 후유증 때문에 훈련을 소화하지 못하던 가을이 여름에 부담감과 불안함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장면은 탁월한 감정 연기가 돋보였다. 아이돌로 활동하며 무대 위에서 몇 번이고 연습했을 표정 연기와 제스처가 빛났다.

물론 아직 배우로서 증명해야 할 게 많지만, <청설>을 본 79만 관객(12월 8일 기준)은 모두 앞으로의 김민주를 기대할 것이다.

대선배를 쥐락펴락한 홍예지

 영화 <보통의 가족> 스틸컷
영화 <보통의 가족> 스틸컷하이브디미어코프

설경구·장동건·김희애·수현까지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한 영화 <보통의 가족>. 허진호 감독은 고등학생 딸과 아들이 있는 두 형제 가족의 일상을 거울삼아 한국 사회의 문제를 보여주려 했다. 영화는 지금의 부모 세대, 특히 의사나 변호사 같은 엘리트가 어떻게 다음 세대를 길러내야 할지 되물었다. <보통의 가족>은 과연 미래 세대, 다음 세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지 고찰하는 우화나 다름없었다.

사실 각본만 놓고 보면 <보통의 가족>의 메시지는 한계가 분명했다. 철저히 기성세대의 시점에서 젊은 세대와 아이들의 문제를 바라본다는 인상이 짙었다. 입시 스트레스나 학교 폭력 문제 등은 중요성에 비해 그저 클리셰처럼 활용되고, 젊은 세대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묘사됐다. 그 결과 한국 사회가 겪는 세대 갈등을 입체적으로 풀어낼 기회도 놓치는 듯싶었다.

그러나 대선배들 사이에서도 기죽지 않은 홍예지의 당돌함은 <보통의 가족>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자칫 지나치게 작위적인, 평범한 소시오패스 캐릭터에 불과할 수도 있었던 '혜윤'에게 입체적인 생동감을 불어넣은 덕분이다.

아빠 앞에서는 한없이 어리고 나약한 딸. 삼촌이나 숙모와 있을 때는 언제나 웃고 예의 바른 조카, 새엄마와 같이 있을 때는 경계심 가득한 불안정한 청소년. 갓난아기 동생을 놀아줄 때는 이보다 착하고 귀여울 수 없는 언니. 사촌 동생과 일탈할 때는 소시오패스다운 서늘함과 냉정한 면모까지.

홍예지는 상대역에 따라 여러 가면을 자유롭게 갈아 끼우며 극의 긴장감을 불어 넣었다. 앞으로 또 어떤 가면을 바꾸며 매력을 선보이게 될지 기대되는 배우다.

시고니 위버와 다른 매력 뽐낸 케일리 스패니

 영화 <에이리언: 로물루스> 스틸컷
영화 <에이리언: 로물루스> 스틸컷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지난여름 <로물루스: 에이리언>은 예상외의 흥행을 기록했다. 국내에서는 200만 관객을 동원했고, 전 세계에서 3억 50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에이리언: 커버넌트> 이후 동력을 잃은 시리즈를 부활시켰다. 클래식으로의 회귀가 원동력이었다. <에이리언> 1편과 2편을 오마주한 액션 시퀀스는 갇힌 공간에서 에이리언을 피해 달아나는 서스펜스를 극대화했고, <에이리언> 시리즈다운 쾌감에 향수를 더해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더 나아가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새로운 캐릭터도 등장했다. 주인공 '레인'을 연기한 케일리 스패니다. 처음에는 패닉에 빠져 당황하다가도, 후반부에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강단 있게 에이리언의 습격을 피해 나가는 여전사로 성장하는 과정을 작은 체구에 집약해 보여줬다. 그녀는 <에이리언>을 새로 접한 관객이 세계관에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게 돕는 길잡이와도 같았다.

물론 케일리 스패니의 연기력은 <에이리언: 로물루스> 이전에도 인정받은 상태였다. 해외에서는 지난해 국내에서는 올해 6월에 개봉한 영화 <프리실라>를 통해 베니스 영화제 볼피컵 여우주연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엘비스 프래슬리의 아내인 프리실라 역을 맡은 그녀는 실존 인물이 14세부터 20대 후반까지 경험한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을 재현해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녀는 <에이리언: 로물루스>에서 또 다른 색으로 빛났다. <에이리언>의 상징과도 같은 '엘렌 리플리'를 연기한 시고니 위버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구축하며 <에이리언> 시리즈의 새 주인공으로 우뚝 섰고, 블록버스터 작품도 이끌어 갈 역량이 있음을 증명했다. 올해 마지막 날 개봉 예정인 <시빌 워: 분열의 시대>에서도 주연으로 등장할 예정인 그녀를 2024년의 신성이라도 칭해도 어색하지 않아 보인다.
김민주 홍예지 케일리스페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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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종교학 및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영화와 드라마를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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