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0일부터 방송된 <옥씨부인전>의 주인공인 옥태영(임지연 분)은 사실 노비 구덕이다. 구덕은 천재적 재능이 있는 능력자였지만, 주인집 가족들의 핍박과 학대로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았다. 그런 그가 하루아침에 사대부 가문의 여성으로 일약 신분 상승한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 개인에게는 두 건의 위험천만한 사변이 있었다. 주인집 사람들은 노비를 벌레만도 못한 존재로 취급한다. 이들의 신체적 핍박을 견디다 못한 구덕과 그의 병든 아버지 개죽(이상희 분)은 결국 도주해 외딴 주막집에 숨어든다. 그러나 개죽은 딸에게 부담이 되기 싫어 조용히 사라지고, 구덕은 이곳을 떠나면 아버지를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대로 눌러앉는다.
노비 구덕의 신분상승
▲<옥씨부인전> 중 한 장면
JTBC
이후 옥태영(손나은 분)과 그 아버지 옥필승(송영규 분)이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주막집을 방문한다. 먼 지방에 사는 옥태영의 할머니(김미숙 분)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이 부녀는 구덕에 호감을 느끼고, 옥필승은 양녀로 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산적 떼의 공격을 받아 옥씨 부녀와 수행원들은 목숨을 잃고 주막집은 불탄다.
그런 참변 속에서 기적적으로 생존한 구덕은 옥태영 할머니의 측근들에 의해 구조되고 자신을 옥태영으로 착각하는 사람들 속에서 살게 된다. 오랫동안 교류가 없었던 탓에 옥태영의 진짜 얼굴을 아는 이는 그 집에 없었다. 그 집 사람들은 구덕이의 손가락에 옥태영 집안의 반지가 끼어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구덕은 자신의 신원을 밝히고자 했지만 할머니는 만류했다. 그러면서 옥태영으로 살아달라고 요청했다.
드라마 제작진은 홈페이지의 '프로그램 정보'에서 "옥태영의 인생을 대신 살고 사람들을 속인 구덕이는 요망한 악녀였을까? 가짜 신분인 채로 살았지만 진짜에게 인정받는 삶이었다면, 그 삶을 보다 가치 있게 일궈냈다면 그들은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까?"라고 한 뒤 이항복(1556~1618)이 지은 실화집 등이 드라마의 모티브가 됐다고 알렸다. 그러면서 "백사 이항복이 사실을 바탕으로 한 소설 <유연전>을 재해석한다"고 밝혔다.
조선 선조 때 벌어진 실화인 가짜 남편 사건은 <유연전>뿐 아니라 <이생송원록>, <묵재일기> 같은 문헌에도 등장한다. 이 중에서 사건의 실체에 가장 근접했다는 평을 받는 것은 <유연전>이다. 이 사건은 국가적 관심의 대상이 되어 <선조실록>에도 수록됐다.
<유연전>의 전(傳)이란 표현 때문에 우리 시대 사람들에게는 문학작품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옛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은 실존 인물의 생애를 정리하는 문헌이었다. <선조실록>뿐 아니라 <유연전> 등도 실제 사실을 다룬 기록이다.
사건의 핵심 인물은 백씨와 그 남편인 유유(柳游) 그리고 가짜 남편 채응규다. 그런데도 <채응규전>이나 <유유전>이 아닌 <유연전>이 된 것은 그 사람들이 이 사건을 유유의 동생인 유연(柳淵)의 관점에서 이해했기 때문이다. 가짜 남편 사건이므로 유유가 최대 피해자여야 하지만 엉뚱하게도 그 동생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된 결과다. 제3자들의 눈에는 유유보다 유연이 보다 더 동정의 대상이 됐다.
대구의 양반들인 유유와 유연은 현감 유예원의 아들들이다. 위 기록들 속에는 이 가문의 노비들이 등장한다. 노비를 다수 보유한 가문들은 거의 다 상당량의 토지를 갖고 있었다.
사라진 가문의 후계자
▲'옥씨부인전' 한 장면JTBC
기업이나 다름없는 이런 가문의 후계자이자 백씨의 남편인 유유는 과거시험을 준비하던 30대 초반에 갑자기 사라진다. 실학자 이익의 <성호사설>에 실린 <유연전>에 따르면, 아버지 유예원과 아내 백씨는 유유가 미쳐서 도주했다고 주위에 말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1562년, 유연의 자형인 한양 사람 이제(李禔)가 유유를 찾았다는 기별을 보냈다. 유유가 역술가 채응규의 이름으로 해주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채응규를 만나본 유연과 유연의 노비, 백씨 부인의 몸종은 하나같이 채응규가 가짜라고 말했다. 유연은 '우리 형은 몸이 왜소한데 저 자는 장대하지 않으냐, 우리 형은 목소리가 여자 같은데, 저 자는 우렁차지 않으냐' 등의 이유로 채응규를 거부했다.
하지만 이제는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부인 백씨는 채응규를 마다하지 않았다. 채응규는 백씨의 월경 시점과 허벅지의 검은 점까지 알고 있었다. 미궁에 빠진 사건은 결국 법정으로 간다.
소송 중에 채응규는 도주한다. 그러자 백씨는 시동생 유연이 재산을 노리고 형을 살해했다고 고소한다. 유연은 혐의를 벗어나지 못해 능지처참형을 당한다. 이 사건이 실록에까지 기록된 것은 이 때문이다. 사형 사건은 군주의 관할인 데다가 이 사건이 양반 가문의 비극이라 사대부들의 관심을 끌 만했다. 이때가 1564년이다.
그렇게 종결되는 듯했던 이 사건은 1579년에 유유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유연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 이로써 증명된다. 당시 사람들이 가짜 남편 사건인 이 사안을 백씨나 채응규의 관점이 아닌 유연의 관점으로 이해한 건 이 때문이다.
체포된 채응규는 스스로 칼을 찔러 생을 마감했고, 채응규의 첩인 춘수의 입에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이제 등이 유씨 가문의 재산을 노리고 채응규와 공모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제는 곤장을 맞아 죽고, 춘수는 스스로 목을 맸다. 한편, 유유는 아버지 상을 치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귀양을 간다. 남편 유유와 달리 몸도 우람하고 목소리도 우렁찬 채응규를 가짜 남편으로 고소하지 않은 백씨 부인은 별 탈이 없었다.
아버지 유예원과 아내 백씨는 유유가 미쳐서 가출했다고 했지만, 미쳤다는 말의 의미는 좀 달랐던 듯하다. 유유는 결혼한 지 3년이 되도록 자녀를 얻지 못해 아버지의 구박을 받았다. 노비와 토지를 경영하는 지주 겸 사대부 가문에서는 왕실과 마찬가지로 후계 구도가 중요했으므로, 유유가 자녀를 얻지 못하는 것은 이 가문의 중대사였다.
당시에도 일반적으로 아들이 아이를 얻지 못하면 며느리를 탓했다. 그런데 아버지 유예원은 며느리 백씨가 아닌 아들 유유를 나무랐다. 아이가 생기지 않는 원인이 유유에게 있다고 봤던 것이다.
원인이 아들에게 있다며 아들을 책망하는 장면도 음미해 볼 대목이 있다. 불임의 원인이 아들의 몸에 있다고 해서 부모들이 반드시 아들을 꾸짖지는 않는다. 또 장남이 불임이면 차남에게 가문을 넘길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장남을 책망했고, 장남은 종적을 감췄다. '이놈이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아버지에게 있었을 수도 있다. 가짜 남편을 굳이 마다하지 않은 백씨의 모습도 아버지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구체적 이유를 알려주는 기록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 <옥씨부인전>의 모티브가 된 실화 사건은 조선시대 사람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구덕이가 옥태영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도 2개의 비상한 사건이 있었지만, 조선시대 사람들에게는 이 사건 자체가 매우 비상했다. 당대의 재산 및 상속 문제, 가족 윤리, 부부 윤리, 사기 사건 등과 더불어 성스캔들과 성윤리 등이 복합적으로 내재된 대형 미스터리 사건이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
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옥씨부인전'이 참고한 조선의 가짜 남편 사건 전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