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망> 스틸
영화사 진진
서로 다른 세 한자어 '미망'을 주제로 세 이야기를 엮은 한 편의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다'(迷妄), '잊고 싶지만 잊을 수가 없다'(未忘), '멀리 넓게 바라보다'(彌望)의 소 제목으로 구성된 영화 <미망>을 관통하는 건 결국 그리움의 감정이다.
첫 에피소드에서는 구 연인 관계로 보이는 이들의 재회다. 전화로 바쁘게 상대방과 약속 장소를 찾는 남자는 우연히 그 모습을 보고 택시에서 내린 여자를 보고 당황한다. 전화를 끊고 과거를 회상하며 길을 걷는 그 짧은 시간에서 묘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남자는 전화 속 상대 여성에게 미술을 배우고 있고, 현 연인 관계로 보인다. 전 연인에게도 현 연인에게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던 남자는 줄곧 혼란스러운 감정에 휩싸인다.
두 번째 에피스도에선 그렇게 말을 걸던 과거의 여자가 종로에 위치한 서울극장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한다. 폐관을 앞두고 진행된 마지막 행사에서 상영된 작품은 고 박남옥 감독의 <미망인>(1955)이다. 한국 최초 여성 감독으로 알려진 박남옥 감독의 작품 제목과도 묘하게 연결되는 여자의 심리는 소제목대로 잊을 수 없는 상념에 갇혀 있다. 행사를 마치고 뒷풀이 파티마저 참석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집으로 귀가하려는 여자를 한 극장 관계자가 급히 따라온다.
호감을 표하는 극장 관계자를 두고 여자는 복잡해진다. 애써 그를 먼저 귀가시키고 그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던 여자는 세 번째 에피소드에 다시 등장한다. 초여름에서 한겨울로 시간은 흘렀고, 광화문의 한 선술집에 세 남녀가 모인다. 여자는 극장 관계자와 연인이 된 상태다. 친한 친구 관계인 세 남녀는 각자의 사정으로 만나지 못했던 사실을 털어놓다가 아이가 아프다는 이유로 선술집을 나서는 여자 때문에 급히 모임을 파하게 된다.
등장 인물의 이름을 특정하지 않은 이유
▲영화 <미망> 스틸 이미지
㈜영화사 진진
이처럼 <미망>은 어떻게 보면 한없이 아무 일 아닌 것 같은 일상의 단편을 분절해서 제시한다. 옴니버스 구성으로 여러 인물이 각 에피소드에 등장하면서 동시에 서로의 현재와 과거와 연결된 흐름이다. 이처럼 사람은 독립적이지만 결코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는 극명한 사실이 담겨있다.
주 공간이 되는 종로 일대, 특히 광화문은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가는 곳이다. 주거 공간보단 사무 공간이며 대도시 서울의 한복판을 상징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일과 시간엔 사람들로 꽉 차지만 한밤중엔 쓸쓸해지는 그 공간에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생기고 사라졌을까. 영화 <미망>은 그런 이유로 등장 인물의 이름을 특정하지 않는다. 보는 이들마다 자신의 상황과 감정을 이입하길 바라는 감독의 의도다.
이 영화로 데뷔하게 된 김태양 감독은 2020년 연출한 단편 <달팽이>와 <서울극장>에 이어 새롭게 찍은 <소우>를 덧붙인 뒤 지금의 <미망>을 완성해냈다. 주연 배우로 등장하는 하성국이 홍상수 감독의 연출부 출신이기도 하다. 홍상수 감독의 전성기 작품처럼 김태양 감독 영화의 인물들은 일상 어디에, 우리 주변에 존재할 법한 현실적 캐릭터들이다.
다른 게 있다면 같은 서울 골목 구석구석을 다룸에도 판타지성이 다분했던 홍상수와 달리 김태양 감독의 인물들은 지극히 현실에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거기서 피어나는 아련함에 관객들은 자신들만이 아는 작은 선술집으로 달려갈 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 <미망> 관련 정보 |
감독 : 김태양
출연 : 이명하, 하성국, 박봉준, 백승진, 정수지
투자 및 제작 : 제이콥 홀딩스
제작 : 영화사 은하수
투자 및 배급 : ㈜영화사 진진
장르 : 광화문 로맨스
러닝타임 : 92분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일 : 2024년 1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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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