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아다댄스> 스틸컷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아다댄스> 스틸컷서울독립영화제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아다댄스>
한국 / 2024 / 극영화
감독 : 이소현

"난 마음을 열고 너그러운 자세로 이 영화를 볼 거야."

영화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이 한 줄의 대사가 이야기 안팎으로 두 가지 의미를 낳는다. 성인 영상물 앞에 놓인 중심인물 이지(김세영 분)가 해당 영상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 그리고 이 작품 <아다댄스>를 함께하게 될 관객들에게 마음을 열고 너그러운 자세로 해당 소재를 바라봐 달라는 감독의 은근한 부탁이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직접적으로 성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어서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기피되어 왔던 여성의 자위행위와 성 경험에 대한 지점이다.

타이틀에 놓인 '아다'라는 단어부터가 그렇다. 성관계 경험이 전무한 사람을 일컫는 일본어 '아다라시(あたらしい)'로부터 비롯되었다. 이제 막 서른이 되었지만 아직 이성과의 성관계가 없는 이지의 상태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에게는 섹스에 대한 강박이 있다. 모였다 하면 섹스 이야기로 시작되는 친구들의 대화에 좀처럼 끼지 못하고, 경험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 사회적으로도 마치 부끄러운 일처럼 여겨져서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자위행위를 했던 경험이지만, 친구들조차 비웃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영화의 시작에서 여성의 성기와 자위행위를 의미하는 여러 이미지가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지에게도 첫 섹스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던 회사 동료 우영(윤신영 분)과의 원나잇이다. 두 사람의 첫 관계는 경험이 아닌 지식을 통해 이루어지고 사족이 길어지면서 제대로 된 관계는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끝나버린다. 이지는 누군가와 사랑을 나눴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여전히 자신이 처녀라는 사실에 대한 압박감을 느끼고, 영화는 이를 마치 사회적 물의가 되는 것처럼 극 중에서 표현해 나간다.

영화 <아다댄스>는 여러 지점에서 의의가 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여성의 성적 행위를 직접적인 소재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가 터부시해왔던 여성의 성은 이제 건강하고 긍정적인 방법으로 양지에서 다루어질 필요가 있고, 이소현 감독이 이 작품을 통해 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처음에 등장하는 이지의 대사는 그 벽을 깨고 넘기 위해 감독에게 필요했던 용기의 일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관계를 맺지 못한 이들에 대한 사회의 불편한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풍자하고 있는 점 또한 깊이 생각해 볼 지점이다. 이 작품 속 이지라는 인물은 단순히 성 경험이 없는, 영화 속 표현을 빌리자면 '아다'로만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시선이나 집단의 요구에 미치지 못해 도태되는 일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있는 인물로 표현된다. '우영'과의 첫 경험에서 자신 나름의 만족감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압박감을 느끼게 되는 건 외부에서 요구하는 '성관계'라는 행위의 요건 때문이다. 삽입이 동반된 관계만이 섹스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건강한 성인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영화는 이 지점을 명확히 비틀어낸다.

목적과 결과가 도치될 때 우리는 혼란과 어려움을 겪게 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그래서 이 영화 <아다댄스>가 풍자하고 있는 상황 또한 마찬가지다. 행위를 하기 위한 사랑이 아닌, 사랑이라는 감정을 표현하고 공유하기 위한 행위임을 모두가 다시 한번 떠올려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음어오아> 스틸컷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음어오아> 스틸컷서울독립영화제

02.
<음어오아>
한국 / 2024 / 극영화
감독 : 최나혜

"음, 어, 오, 아. 이 네 글자가 여러분들을 헛된 소리로부터 구원하고 성공으로 이끌어줄 것입니다."

'음어오아'는 이 시대 최고의 언어학자이자 인류학자인 보키리(김금순 분)가 창시한 대화법이다. 현대인을 위해 만들어진 이 대화법은 유수의 기업과 정치인, 연예인과 예술가들에게 사랑받으며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대화 방식이 되었다. 반응하고 이해하고 납득하는 등의 네 단계를 거치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소통을 추구하는 이 대화법이 만들어진 지도 벌써 13년. 영화 <음어오아>는 이 대화법의 창시 13주년 행사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담는다.

그가 이 대화법을 창시한 이유는 세상에 듣지 않아도 되는 말들이 너무 많다는 데 있다. 인간은 1분 동안 225개의 단어를 말할 수 있는데 뇌가 처리할 수 있는 단어는 500개가 넘는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동안 우리가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되려 너무 열심히 들으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실제로 행사에 참석한 추종자들은 창시자인 보키리의 연설 마디마디마다 음, 어, 오, 아를 내뱉으며 공감한다. 아니, 공감하는 척한다.

모두가 이 기괴한 대화법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강연에 참석한 고등학교 교감 공창식(이천희 분) 씨는 음, 어, 오, 아 때문에 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할 수 없다고 말한다. 진정한 소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소통하는 일을 단 네 글자로 해내겠다는 발상 자체가 말이 되지 않으며,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경험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순간에도 보키리의 대화법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음, 어, 오, 아를 외친다.

마치 하나의 사이비 종교 집회를 지켜보는 듯한 구조로 완성된 이 영화를 통해 최나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가능하다면 최대한 말을 줄이는 방식으로 소통하고자 하고, 대면 대화가 아닌 비대면 형식으로 나아가고 있는 시대의 교류에 대한 비판이다. 대화는 발화하는 순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기억해야 한다. 즉각적인 반응이 아닌 제대로 된 수용을 위해 필요한 것을 이 영화가 반어적으로 강하게 주장한다.
영화 서울독립영화제 음어오아 아다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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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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