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이 꼭 작품성과 비례하지 않는단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때로 형편없는 작품이 소위 천만영화의 반열에 올라 제작자를 돈방석에 앉도록 하기도 하고, 시간을 건너 살아남을 만한 작품이 조명받지 못한 채 파묻히기도 한다. 어느 작품이 담고 있는 메시지와 담론이 시대 가운데 유의미함에도 누구도 그를 돌아보지 않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하여 지나간 영화를 다시 돌아보며 그것이 가진 가치를 살피는 건 의미 있는 작업이 된다. 5년 전 영화 <양자물리학>은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한 상업적 실패작 가운데 재평가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각종 OTT서비스에서 공개가 된 뒤 꾸준한 조회수를 올리는 이 영화는 꽤나 잘 만들어진 범죄물이란 점에서 흥행에 참패했단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는 작품이기도 하다.

관객수 55만 명, 손익분기점의 3할 정도에 그친 흥행참패를 두고 많은 이들이 영화의 제목이 아쉽단 지적을 내놓곤 했다. 당시 한국사회에 은근히 회자되던 '양자물리학'에 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그와 큰 관련성이 없단 점에서 조롱을 받았던 것이다. 깊고 진지하게 양자물리학을 파고들지 않고 그저 말장난 수준으로 소재를 활용한 이 작품이 예민한 관객들의 심기를 거슬렀던 것일까. 조롱은 마케팅에 치명적 타격을 입혔고, 영화는 그대로 침몰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양자물리학>을 재평가하게 되는 건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이야기의 시의성 있는 묘사 덕분이다. 특히 <양자물리학>을 본 이들이 하나같이 격찬하는 검찰에 대한 묘사가 바로 그러하다.

양자물리학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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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밖 현실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는 서울시내에 클럽을 짓고 운영하려던 이들이 한국사회를 뒤흔들 만한 스캔들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담았다. 유흥업소 생활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제 가게를, 그것도 대단한 투자금을 끌어 모아 차리게 된 이찬우(박해수 분)다. 그에겐 꼭 함께 일을 하고 싶은 이가 있는데, 그건 바로 유흥바닥에서 인맥관리 하난 최고란 평을 듣는 성은영(서예지 분)이다. 이찬우는 마침내 성은영을 설득해 함께 클럽 일을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찬우는 가게에서 당대 최고라는 유명 래퍼 프랙탈(박광선 분)이 마약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와 갈등을 빚게 된 찬우는 그 사실을 오래 알고 지낸 경찰청 범죄정보과 박기헌 계장(김상호 분)에게 귀띔해 준다. 박 계장은 이 사건을 수사하던 중 프랙탈이 함께 마약을 하던 이들 가운데 거물급 인사의 아들이 있단 사실을 파악한다. 한국사회를 주무르는 청와대 비서실장과 그 스폰서까지 얽힌 문제로 비화될 여지가 충분한 것이다.

영화는 그로부터 이들을 치려고 작전을 꾸미는 박기헌과 그 조력자들, 이 사실이 알려지며 되려 위기에 처하는 찬우와 은영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엎치락뒤치락 실시간 뒤바뀌는 상황이 제법 짜임새 있는 구성과 맞물려 보는 이를 빨아들이는 꽤 잘 만든 범죄오락물이다. 이만한 작품이 한 해 채 몇 편이 되지 않는단 점을 고려하면 <양자물리학>의 흥행참패, 그것도 대부분의 평가가 고작 제목에 얽힌 것이란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양자물리학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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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회자되는 남다른 검찰 묘사

특별히 이 영화에서 눈길을 끄는 건 사건을 제 영달을 위해 활용하려 안달하는 양윤식 검사(이창훈 분)의 캐릭터다. 그는 한국사회를 뒤에서 주무르는 실세의 아들이 마약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를 활용해 출세를 하고자 사건을 맡는다. 그 첩보조차 유흥주점에서 진탕 술을 마시다 접한단 건 민망할 따름이다.

아들의 범죄를 무마하는 조건으로 어마어마한 현금을 굴린다는 이른바 백 영감(변희봉 분)과 연락을 시도하는 양 검사, 그러나 애가 타게도 연락이 좀처럼 닿지 않는다. 그리고 잠시 방심한 사이, 마약에 취한 백 영감의 아들이 사건을 밀고한 프랙탈을 살해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사건이 망가질까 구급차를 부르지 못하게 한 양 검사는 프랙탈의 죽음 또한 덮어야 할 상황에 처한다.

대신 죄를 뒤집어 쓸 이를 구하기 위해 조폭 정갑택(김응수 분)까지 섭외해 그와 또 다시 수사거래를 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네가 수고를 해 준다면 수사 중인 네 사건을 덮어줄 거라고 윽박지르는 양 검사의 모습이 앞서 백 영감과 쩔쩔매며 통화하던 모습과 다르지만 또 닮아 있기도 하다.

양자물리학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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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의 사건 거래, 영화보다 더한 현실

대가로 무엇을 원하냐는 백 영감의 물음에 청와대 어느 자리를 이야기하는 양 검사, 그에게 법이 부여한 책무와 수사 및 기소를 할 수 있는 권한은 제 영달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아직 얼마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배우 이창훈의 열연 가운데 출세를 위하여 범죄자와 적극 거래를 하고 그를 덮기 위해 사건을 조작하며 무고한 이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법 기술자의 진면목이 실감나게 연출된다.

이를테면 과거 <뉴스타파>가 단행본까지 낸 바 있는 취재 <죄수와 검사>, 그 안에 담긴 믿기 힘든 이야기가 단박에 떠오른다. 이 취재는 검사와 전관 변호사의 유착관계로부터 시작해 한명숙 전 총리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에서 핵심 증인에 대해 검사들이 위증을 교사한 의혹을 제기하고, 특수부 검사들과 죄수들이 사건과 돈, 편의를 거래해왔다고 주장한다.

양자물리학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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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 부조리 짚어낸 솜씨

경찰 본청을 압수수색하며 박 계장이 구속까지 되는 상황을 만든 양 검사가 박 계장과 대면해 그를 협박하는 장면 또한 의미심장하다. 그는 "함바 비리 때처럼 경찰 윗대가리들부터 줄줄이 옷벗겨줄까?"하고 이야기한다.

또한 대규모 단지 재개발을 매만지는 실세들이며 방송국을 끼고 있는 건설사의 이권경쟁 등도 인상 깊게 내보인다.

여러모로 <양자물리학>은 실제 한국사회 가운데 자리한 부조리를 영화 곳곳에 반영한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한때나마 언론지상에 등장하고 관심을 받았어도 맥락 없이 개별적 사건처럼 여겨지고 마침내 잊혀진 이야기들을 엮어 제게 주어진 권한을 저들의 이익을 위해 쓰는 검찰의 추잡한 일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그 구체적 재료가 상상이 아닌 실제 있었던 사건들을 비틀어낸 작업이란 점이 특별하다. 한국의 흔한 범죄오락물이 좀처럼 손대지 못한 수준까지 이 영화는 건드려보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실재했던 사건을 실명 그대로 쓰고 있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여전히 <양자물리학>을 어설프게 '양자물리학'이란 명칭을 빌려 쓴 내실 없는 작품이라 폄훼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 영화를 차근히 뜯어보다보면 재평가 받아 마땅한 고심을 거친 작품임을 이해하게 된다. 그저 영화적 재미만으로도 준수한 수준이지만, 영화 속에 반영된 실제 사건과 그 맥락 아래 검찰을 묘사한 모습이 오늘날 검찰정권 아래 시름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과도 무관치 않다고 여긴다. 그렇다면 왜 보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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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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