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콘 사토시 감독은 <퍼펙트 블루> <천년여우> <도쿄 갓파더즈> <망상 대리인> <파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주옥같은 작품만 남기고 떠났다. 그는 일찍이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로 일본 애니메이션계에서 주목받았는데 이른 나이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작품들은 애니메이션이 아닌 영화에 가깝고 일상에 환상이 막무가내로 끼어든다. 하여 상당히 어둡고 난해한 편이다.

와중에 <도쿄 갓파더즈>는 어둡지 않고 난해하지 않으며 대중적이다. 제목을 직역하면 '도쿄의 대부들' 정도가 될텐데 한국에서 개봉하면서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이라는 기가 막힌 제목으로 번역됐다. 이 제목에 배경, 사건, 캐릭터, 메시지, 분위기 등이 두루두루 담겨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추운 겨울을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해 줄 거라 확신한다.

작품은 존 포드의 1948년작 <3인의 대부>를 오마주했다고 알려졌다. 그<3인의 대부>는 '아기 예수와 3인의 동방박사'에서 모티브를 따온 영화인데 베를레헴의 별을 보고 메시아의 탄생을 직감하곤 예루살렘으로 온 동방박사들. 헤로데 왕은 그들로 하여금 아기 예수를 찾게 하지만 동방박사들은 다시 떠오른 베를레헴의 별을 보고 마리아를 찾는다.

이후 헤로데를 만나지 않고 고국으로 돌아간다. 동방박사들에게 속았다는 걸 안 헤로데는 예루살렘의 사내 아이들을 모조리 죽이지만 마리아와 아기 예수, 요셉은 이미 이집트로 피신한 후였다.

버려진 아기를 발견한 홈리스들의 여정

 영화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스틸 이미지.
영화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스틸 이미지. (주)팝엔터테인먼트

일본 도쿄의 신주쿠 공원 근처, 홈리스 긴과 하나와 미유키는 함께 노숙하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재활용 쓰레기장을 뒤지던 중 버려진 갓난 여자아이를 발견한다. 하나가 키요코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아기 옆에는 '아기를 잘 부탁한다'는 쪽지와 알 수 없는 열쇠, 그리고 사진과 명함이 전부다.

긴과 미유키는 당연한 듯 경찰서에 데려가자고 했지만 하나가 아이에게 크리스마스에 버려지는 불행을 줄 수 없다며 그들이 함께 기거하는 움막으로 데려온다. 다음 날, 그들은 아기의 부모를 직접 찾고자 길을 나선다. 자신의 앞가림 하기도 힘들기에 무작정 데리고 있을 수도 없다. 길을 나선 후 우연히 아쿠자 보스의 목숨을 구하고 그의 딸 결혼식에 참석한다.

알고 보니 보스의 사위가 될 사람이 명함의 가게 사장이었다. 그를 통해서 키요코 엄마의 정체도 알게 된다. 일이 잘 풀릴 거라는 임시일까. 그런데 난데없이 한 웨이트리스가 총을 쏘는 바람에 그 사위가 다치고 결혼식장은 난장판이 된다. 미유키가 키요코와 함께 암살범에 납치되는데.

과연 세 홈리스는 키요코를 부모한테 잘 데려다줄 수 있을까?

크리스마스에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듯

 영화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스틸 이미지.
영화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스틸 이미지.(주)팝엔터테인먼트

'우연히' 아기를 발견한 셋은 이후 아기의 부모를 찾아주는 여정 속에서 수많은 우연과 마주한다. 우연이 계속되면 필연이라고 했던가. 키요코의 부모를 찾는 과정에서 긴과 하나와 미유키는 따로 또 같이 각자의 묻어둔 사연과 조우한다. 크리스마스에 도쿄 뒷골목의 재활용 쓰레기장에서 키요코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조우할 수 없었을 사연이다.

그런가 하면 '크리스마스'가 건네는 함의가 절대적이다. 나아가 버려진 아이 키요코가 불행이 아닌 행운을 그리고 축복과 기적을 가져다준다고 믿게 된다. 예수를 떠오르게 하는 한편 크리스마스가 뿜어내는 기대감이 모두를 들뜨게 한다.

그렇다고 작품을 밑도 끝도 없이 계속되는 우연으로만 얼버무리진 않았다. 실사에 가까운 질감의 배경과 애니메이션 속 같지 않은 인격화된 캐릭터들이 만화적 표현을 뒷받침한다.

무력한 이들이 아기를 돌본다는 것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의 한 장면.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의 한 장면.팝엔터테인먼트

현실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한데 우선, 세계적인 대도시 도쿄는 당연히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어딜 가나 네온사인이 번쩍거려 눈을 어디에 둬야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중심부의 바로 옆에는 홈리스들의 움막이 있다.

한편 세 홈리스는 각자의 지난한 사연으로 남을 돌볼기는커녕 스스로를 돌아볼 처지가 아니지만 버려진 아기만은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홈리스들이 아기를 보살피는 모양새가 웃기면서도 서글프다.

계속 이어졌던 긍정적인 우연들이 그들을 또다시 찾아갈지 알 수 없다. 아기를 버려둘 순 없다는 순수한 의도에 세상을 관장하는 무엇인가가 반응했을 테다. 그 또한 우연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부디 그들이 기적적인 우연들을 인지하지 않았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크리스마스에기적을만날확률 홈리스 우연필연 대도시이면 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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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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