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서는 '최고' 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tvN
영서는 저명한 소프라노 한기주(장혜진)의 딸이다. 언니 영인(민경아)을 세계적인 성악가로 키워낸 기주는 영서 역시 최고가 되기를 바란다. 기주는 국극 배우가 되겠다며 매란 국극단에 들어가 '연구생'으로 오랜 시간을 보내는 영서가 영 못마땅하다. 기주는 2회 자신의 공연을 보러 와 달라는 영서에게 이렇게 말한다.
"연구생 공연까지 내가 가 봐야 되니? 난 너 오페라 배우다 말고 국극으로 가버린 거 아직도 맘에 안 들어. 그치만, 이왕 그걸 하기로 했으면 그 분야에서 1등이 돼야 하는 거야."
이에 영서는 이렇게 답한다.
"알아요, 최고가 될 자신이 없었으면 시작도 안 했어요."
드라마 초반, 영서는 이렇게 엄마의 시선 그대로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 그래서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면서도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한다. 늘 무표정하게 지내고, '최고'가 아닌 것들은 '가치 없다' 여기는 기주처럼 자신보다 실력 없어 보이는 동료들을 무시하듯 대한다. 이는 영서가 엄마의 마음을 그대로 투사 받았음을 보여주는 면면들이었다.
이렇게 삶의 시선이 '엄마'에 있을 땐 목표 역시 엄마를 향할 수밖에 없다. 영서에게 '최고'는 스스로 만족하고, 관객들에게 의미 있는 공연을 선사하는 것이 아니다. 엄마에게 인정받는 것이 '최고'의 기준이다. 그래서 영서는 실력만큼 공연을 즐기지 못하고 늘 긴장하며 스스로를 증명하지 못할까 초조해한다.
매란국극단에서의 경험
하지만 매란 국극단에서의 경험은 영서를 서서히 변화시킨다. 매란 국극단의 단원들은 규율있는 단체 생활을 하지만 기본적으로 평등한 관계를 맺는다. 구성원들 사이에 질서는 있지만, 위계적이지 않다. 치열하게 경쟁도 하지만, 서로의 꿈을 존중한다.
영서에게도 국극단의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같은 꿈을 꾸는 동료들 사이에서 영서는 존중받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극이 진행되면서 영서가 동료들을 대하는 태도도 조금씩 부드러워지는데 이는 자신을 존중해주는 동료들에게 더 이상 방어적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가운데 타고난 재능으로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정년(김태리)의 등장은 큰 자극이 됐을 것이다. 정년은 재능과 열정뿐 아니라 한때 유명한 소리꾼이었던 엄마를 두었다는 점에서 영서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정년이 자기 자신을 대하는 태도는 영서와 큰 차이가 있다. 정년은 영서가 "내가 한기주 딸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압박감에 힘들어할 때 이렇게 말해준다.
"엄니 그늘에 가려지는 게 무섭다고 그만둘 거 아니면 난 앞만 보고 내 길을 갈 수밖에 없어야. 그러니까 너도 앞만 보고 가. 네가 지금껏 피땀 흘려 쌓아 올린 모든 것은 오롯이 다 네 것이여." (7회)
영서의 말에 따르면 "자극시키고 성장시키면서, 마음을 알아주는(12회)" 정년과의 대화들, 그리고 다양한 국극단의 동료들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영서는 조금씩 깨달아간다. 자신이 허영서가 아닌 '한기주의 딸'로 살아왔다는 것을 말이다. 이를 알아차린 영서는 자신에게 투영된 엄마의 마음을 벗겨내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주변을 대하기 시작한다. 8회 정년이 무리한 연습으로 스스로를 망칠 때 정년을 찾아가 도우려 한 것은 영서가 기주와 다른 길을 걷기로 결심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편법을 써서라도 정년을 깎아내리려는 기주와 달리 영서는 정년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네가 최고의 상태일 때 싸워서 이길 거라고." (8회)
그리고 9회 마침내 영서는 엄마의 마음을 모두 걷어내면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그동안 전 한 번도 허영서로 살아본 적이 없어요. 아세요? 한기주 딸로만 살아왔다고요. (...) 나는 나예요. 앞으로는 한기주 딸로 안 살 거예요."
한계를 수용하고, 통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