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까지 악플 읽어, 이젠 사랑해줘" 로제의 징그럽게 솔직한 고백

[리뷰] <로지>의 선공개곡 <넘버원 걸>

지난 11월 22일, 로제는 첫 정규 앨범 <로지>의 수록곡 < 넘버원 걸(number one girl) >을 발표했다. 앞서 공개한 '아파트(APT)'가 한국 술 게임을 녹여내 마냥 밝고 경쾌했다면, '넘버원 걸'은 여러 종류의 슬픔과 외로움을 경계 없이 문질렀다.

악성 댓글로 힘들었던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풀어낸 이 곡은 "당신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맞냐"고 재차 묻고, "나를 사랑하는 이유를 말해 달라"고 재촉한다. 이에 유튜브 댓글에는 "로제가 나와 같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아이돌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니", "단순히 팬과 스타의 관계가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해당하는 노래"라며 공감하는 반응이 이어졌다. 블랙핑크라는 화려한 조명을 끄고, 로제라는 손전등을 켰다.

너도 징그럽게 외로운 적 있니

 <넘버원 걸> 콘셉트 포토
<넘버원 걸> 콘셉트 포토THEBLACKLABEL

지난 11월 29일 방송된 KBS2 <더 시즌즈-이영지의 레인보우>에 출연한 로제는 '넘버원 걸'의 제작 계기를 밝혔다. 그는 "나는 건강한 사람이다, 집에 가서 책을 읽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새벽 5시까지 악플을 읽으며 스스로 힘들게 만들었던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이어 "징그럽도록 솔직한 노래를 쓰고 싶었다. 누가 듣고 불편해도 상관없으니 적나라하게 써보자고 해서 만들어진 곡"이라 고백했다.

로제의 말처럼 '넘버원 걸'은 징그럽도록 솔직하고, 외로운 곡이다. 시작은 요구다. "내가 특별하다고 말해줘", "예쁘다고 말해줘",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해줘"라며 자신이 얼마나 의미 있는 사람인지를 증명해 달라고 누군가에게 요청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런 말이 필요하다며 로제라는 화자는 청자에게 "너는 가치 있는 사람이고, 제대로 향하고 있어"라는 말을 해 달라고 한다.

그러다 "이런 늦은 밤에는 외롭지 않냐"며 "네가 나를 원하게 만들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황급히 말을 던진다. "네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포기할 수 있고, 너의 눈에 최고의 여자가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포기할 수 있다"고 속마음을 내비친다. 로제의 입에서 "사랑해 달라"는 말이 발화되는 순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외로움을 확인하게 된다.

대중은 로제의 경험에 공감하며 "어렸을 때 부모님께 듣고 싶었던 말이 가사로 옮겨진 기분이다", "노래를 들으면서 난생처음으로 울었다", "모두가 힘들 때 듣고 싶은 말"이라 반응했고 그에게 응원을 보냈다. 특히 "블랙핑크의 '로제'였을 때 보지 못했던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반응도 컸다.

사실 '자신감이 장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블랙핑크의 노래는 당당하다. 로제 또한 두 번째 정규 앨범 수록곡 < 타이파 걸(Typa Girl) >에서 스스로를 "네가 꿈이라는 걸 꾸고 싶게 하는 여자"라고 지칭했다. 하지만 홀로 선 로제는 다르다. 백일몽처럼 빛나던 그가 악성 댓글과 외로움에 시달렸던 악몽 같은 나날을 털어놨고, 이젠 청취자와 함께 서로의 악몽을 위로하고 있다.

모두를 위한, 로제의 일기장

 2020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에서 처음으로 작곡하는 모습을 공개했던 로제
2020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에서 처음으로 작곡하는 모습을 공개했던 로제NETFLIX

<넘버원 걸>, <아파트>를 수록한 앨범 <로지>를 이해하려면 로제의 첫 번째 싱글 앨범 < R >로 되돌아가야 한다. < R >의 타이틀 곡 < 온더 그라운드(On The Ground) >는 절대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애썼고, 마침내 정상에 오른 화자가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은 이미 내 안에 있었다"고 깨닫는 노래다. 또한 "올라간 것은 내려가길 마련"이라며 자신의 운명을 담담하게 수용하는 곡이기도 하다.

이처럼 로제의 솔로 앨범은 자전적인 내용을 담아 누구나 일기장에 적었을 법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는 6일 발매될 그의 첫 번째 정규 앨범 <로지>에 대해서 그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를 통해 "이번 앨범을 준비하는 과정은 숨을 쉬는 것과 같았다"며 "나의 이런 면을 보여줘도 될까,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까 싶은 두려움이 있기도 했다. 그래서 이 앨범은 내게 많은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로제의 솔로 앨범은 늘 단출하고, 간단하다. 인간으로서 느끼는 고단함, 외로움, 그럼에도 한 발 더 내딛는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노래를 통해 화려한 스타를 가여워하며, 너와 내가 같은 인간임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특히 로제가 자전적인 이야기를 꺼낼수록 나는 2020년 개봉한 넷플릭스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가 겹쳐 보인다.

매일 밤새도록 노래를 불러놓고 정작 아버지가 YG 오디션을 권유하자 "나 음악 좋아하는 거 같아?"라고 물었다던 16살의 로제, 자신이 한 모든 것이 '틀렸다'고 느끼던 연습생의 로제, 머릿속에 든 가사가 너무 개인적이라서 부끄러워하는 블랙핑크의 로제까지. 스튜디오에서 약해지는 법을 배우겠다던 그가 발표한 '넘버원 걸'이다.

무엇이든 화려하고 강해야 하는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곳에 있는 스타가 기꺼이 취약해지길 선택했다. 이상하게 누군가 약한 면을 보이면 자연스레 마주한 이 또한 물러지기 마련이다. 너무나 용감한 방식으로 약해진 여성 아티스트를 향해 만질만질한 박수를 보내고 싶다.
로제 ROSE BLACKPINK 블랙핑크 RO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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