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도 유행은 존재한다. 특히 지난 2022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큰 사랑을 받은 후에는 <블라인드> <굿파트너>, <지옥에서 온 판사> 같은 법정 드라마의 유행이 이어졌다.

그리고 2000년대 후반 이후엔 의사들의 삶을 다룬 의학 드라마들이 유행한 적이 있는데 의학 드라마 유행의 포문을 열었던 작품은 바로 2007년에 방송된 김명민, 고 이선균 주연의 드라마 <하얀 거탑>이었다.

 <하얀 거탑>은 방영 11년이 지난 2018년 리마스터링 버전이 재방영되기도 했다.
<하얀 거탑>은 방영 11년이 지난 2018년 리마스터링 버전이 재방영되기도 했다.<하얀 거탑> 홈페이지

외과의사로 완벽하게 빙의한 김명민

1996년 SBS 6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김명민은 2000년 <뜨거운 것이 좋아>를 통해 처음 주연을 맡았지만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무명 생활이 길어진 김명민은 연기자 은퇴와 해외 이민까지 고려했지만 <불멸의 이순신>을 통해 반전을 만들었다. 김명민은 <불멸의 이순신>에서 엄청난 열연을 펼치며 2005년 KBS 연기대상에서 <해신>의 최수종, <장밋빛 인생>의 고 최진실을 제치고 대상을 수상했다.

2006년 <불량가족>을 통해 가벼운 캐릭터를 소화하며 숨을 고른 김명민은 2007년의 시작과 함께 의학 드라마 <하얀 거탑>에 출연했다. <하얀 거탑>에서 명인대학병원의 간판의사이자 간담췌 외과의 권위자 장준혁을 연기한 김명민은 그를 잘 모르는 시청자들이 보면 진짜 의사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완벽한 의사 연기를 선보였다.

하지만 2007년 연초부터 완벽한 의사 연기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김명민은 연말 MBC 연기대상에서 <태왕사신기>의 배용준에게 대상을 내주고 <이산>의 이서진과 최우수상을 공동 수상했다(당시 김명민은 영화 <무방비도시> 촬영 때문에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으로 아쉬움(?)을 달랜 김명민은 2008년 <베토벤 바이러스>를 통해 MBC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김명민은 <하얀 거탑> 이전에도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대표작이 있었지만 고 이선균에게 <하얀 거탑>은 데뷔 첫 주연작이나 다름없었다. <태릉선수촌>, <도망자 이두용> 같은 단막극 또는 단기 드라마로 얼굴을 알렸던 이선균은 <하얀 거탑>으로 20부작 주말 드라마에서 첫 주연을 맡았다. 이선균은 <하얀 거탑>에서 장준혁의 친구인 명인대학교 소화기내과 부교수 최도영 역을 맡았다.

장준혁을 비롯해 <하얀 거탑>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의사들이 출세 지향적이고 야망이 높은 것과 달리 최도영은 의사로서 올바른 직업 윤리를 갖춘 정의로운 인물이다. 또한 장준혁의 오진으로 환자가 죽고 소송에 들어간 후에도 친구, 그리고 자신의 안위가 걸려 있는 직장 대신 의사의 양심에 따라 환자의 편에서 증언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나온 병원 측의 회유와 협박에도 최도영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의학드라마 유행의 포문을 연 작품

 김명민은 <하얀 거탑>에서 장준혁에 빙의한 듯한 완벽한 메소드 연기를 선보였다.
김명민은 <하얀 거탑>에서 장준혁에 빙의한 듯한 완벽한 메소드 연기를 선보였다.MBC 화면 캡처

드라마 <하얀 거탑>은 1969년에 발표됐던 고 야마사키 도요코 작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하얀 거탑>은 의사들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의료 행위에 중점을 둔 전문 의학 드라마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전반부는 명인대학교 외과과장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정치 드라마에 가깝고 중반 이후에는 장준혁의 오진을 둘러싼 법정 드라마로 전개된다. 그리고 장준혁이 담관암에 걸린 후엔 자신의 시신을 의료연구에 써 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죽음을 거두며 묵직한 여운으로 드라마가 마무리 된다.

의료 행위보다는 병원에서 벌어지는 의사들의 관계를 조명한 드라마지만 5회에 등장한 장준혁과 노민국(차인표 분)의 '수술배틀'은 <하얀 거탑> 최고의 명장면으로 손색이 없다. 감담췌 최고 권위자 장준혁과 존스홉킨스 대학 출신 해외파 의사 노민국이 벌이는 세계 최초 간, 췌장, 신장 동시이식 수술은 수술 과정에서 두 사람의 공수가 바뀌는 듯한 긴장감 넘치는 연출로 시청자들을 빠져들게 만들었다.

결정적인 비밀이 드러나거나 이야기의 긴장감이 고조될 때마다 흘러 나오는 OST 역시 큰 몫을 담당했다. 특히 2012년 tvN에서 방송된 군대 배경의 시트콤 <푸른 거탑>은 제목도 <하얀 거탑>을 패러디 했을 뿐 아니라 OST도 적절하게 사용하면서 톡톡히 재미를 봤다.

<하얀 거탑>은 최근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의학 드라마의 유행을 선도한 작품이다. <하얀 거탑>이 첫 방송을 시작한 지 열흘이 지난 후 SBS에서는 <외과의사 봉달희>가 방송됐고 2008년 MBC의 <뉴하트>와 2010년 SBS의 <산부인과> 같은 의학 드라마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다만 2008년에 높은 기대 속에 돌아온 <종합병원2>는 예상만큼 높은 시청률을 올리지 못했다.

카리스마 보여준 배우 김창완

 푸근한 아저씨 같은 인상의 김창완 배우는 트레이드마크였던 안경을 벗고 냉철한 대학병원 부원장으로 변신했다.
푸근한 아저씨 같은 인상의 김창완 배우는 트레이드마크였던 안경을 벗고 냉철한 대학병원 부원장으로 변신했다.MBC 화면캡처

이정길 배우는 명인대학병원 외과과장으로 등장해 장준혁에게 과장 자리를 넘겨주고 일선에서 물러난 이주완 교수를 연기했다. 겉으로는 온화한 신사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병원에 자기 사람을 심어 두려는 생각에 후배인 노민국을 과장 후보로 추천해 장준혁과 경합 시켰다.

<하얀 거탑>에서 시청자들에게 가장 큰 충격을 안긴 배우는 명인대학병원 부원장 우용길을 연기한 김창완 배우였다. 특히 장준혁을 지방 분원으로 보낸다고 협박하는 장면에서 보여준 카리스마는 단연 압권이었다.

<더 글로리>에서 주여정(이도현 분)의 아버지를 살해한 연쇄살인범 강영천 역을 맡아 짧은 등장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이무생 배우도 신예 시절 <하얀 거탑>에 출연했다. 의료사고로 사망한 환자 권순일(최범호 분)의 아들 권형진 역으로 군 복무 도중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듣고 전역 후 소송에 참여했다. 이무생은 남겨진 피해자 가족을 대변하는 인물로 나왔지만 비중이 적어 큰 존재감을 남기진 못했다.
드라마보는아재 하얀거탑 안판석감독 김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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