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애시드 레인: 죽음의 비> 스틸 이미지
영화 <애시드 레인: 죽음의 비> 스틸 이미지(주)엔케이컨텐츠

'미셸'은 동료의 산업재해 문제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자 경영자에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점거 농성을 벌인다. 그는 진압 경찰과 격투를 벌이는 영상이 미디어에 퍼지면서 논란의 대상이 된다. 전자발찌를 찬 채 직장에선 해고되고 물류센터 일용직으로 보호관찰 대상이 된 상태다. 그 와중에도 그가 회사와 다투게 된 원인인 동료 '카린' 상태가 호전되면 함께 지낼 약속이 유일한 희망이다.

그런 미셸에겐 전처 '앨리스'와 딸 '셀마'가 있다. 이혼했지만 딸을 향한 애정은 지극하다. 앨리스는 전남편보다는 사업가 오빠에게 더 의지한다. 셀마의 학비도 외삼촌이 내줄 정도로 경제적 격차도 크다. 좋은 교육을 위해 셀마를 기숙학교에 입학시켰지만, 미셸의 경찰 폭행 영상이 세상에 퍼지면서 셀마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다. 체육활동으로 가르치는 승마에 애착을 갖는 게 유일한 낙이다.

그들을 둘러싼 세상에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산성비가 북상하는 중이다. 흔히 알던 것과 차원이 다른 재앙 수준이지만, 세상은 아직 반신반의 중이다. 들려오는 전조는 공포 자체다. 이 산성비는 통상 농도의 1천 배에 육박하는, 사람이 맞으면 옷과 피부가 녹아내릴 정도의 독성을 지녔다고 한다. 염산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격이다.

앨리스는 딸과 함께 안전지대로 대피하려 하지만, 의지하던 오빠는 사업 정리에 바빠 짬을 내지 못한다. 마지못해 전남편 미셸을 호출한다. 병원에 입원한 카린 쪽으로 급히 가려던 미셸은 딸을 일단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로 한다. 근무용 화물차 끌고 함께 학교로 출발하지만, 서먹한 관계 탓에 대화엔 날이 가득 서 있다.

일단 아이만 대피시키고 각자 갈 길 갈 모양새였지만, 교외 기숙학교로 가는 시골 도로는 이미 학부모들로 교통체증을 빚는 중이다. 게다가 급우들과 관계가 별로인 셀마는 애지중지하는 말과 함께 우울함을 달래고자 홀로 산속에 머물던 참이다. 연락은 되지 않고, 차로 올라갈 수 없는 산 중턱을 수소문할 수밖에 없다. 마침내 사신처럼 멀리서 먹구름이 휘몰아치며 산성비가 시작된다. 과연 가족은 무사히 대피할 수 있을까?

가족 모험 드라마의 이색적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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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애시드 레인: 죽음의 비> 스틸 이미지(주)엔케이컨텐츠

영화의 대략 얼개는 할리우드 재난 가족물과 별반 다르지 않다. 천재지변이 발생하고, 사이가 좋지 않던 가족이 재난을 계기로 죽을 고생을 치르며 희생도 겪지만, 결국 위기를 극복하고 관계가 회복된다는 설정은 재해의 종류만 바뀔 뿐, 오랜 세월 반복된 레퍼토리다. 본 작품의 구조 역시 그 전형을 따를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대서양 건너 프랑스가 해당 장르를 변주하는 방식은 좀 다르다. 산성비가 쏟아지기 전, 주인공들이 갖고 있던 갈등과 분쟁요소는 지나가는 흥밋거리나 양념으로 그치지 않는다.

영화는 시작부터 관객이 당연히 기다릴 자연 재앙 대신, 인간 사회에 뿌리내린 갈등과 가족 해체 상황을 전면에 부각한다. 산성비는 가공할 공포이지만, 오히려 보고 있자면 극한상황에서 옆 사람 믿지 못하고 이기적 판단을 거듭하는 인간이 가장 위태로움을 극대화하는 핵심이다. 그게 할리우드 영화는 도달할 수 없는 참담한 현실 투영으로 고스란히 연결된다.

일단 영화 속 두려움의 근원인 산성비 위력은 가공할 만하다. 큰 예산 영화가 아닌데도 웬만한 공포영화 뺨치게 산성비가 쏟아지는 전후 과정이 관객의 뇌리에 오싹하게 닥친다. 4dx 상영환경에서 물기라도 분사된다면, 순간 흠칫할 이가 꽤 나올 만큼 빗줄기가 두려움을 극대화한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하게 비가 내리는 장면이라 직접 맞아보기 전에는 위협 정도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는 게 더 무섭다.

그저 비를 피한다고 끝나는 상황이 아니다. 당장 비를 실내에서 피한다 해도, 비는 토양으로 스며들고 하천에 더해진다. 아스팔트가 녹아내리고 진흙탕은 신발을 녹이고 옷을 태운다. 강물에 빠지면 순식간에 피부가 용해되는 지경이다.

수돗물도 안전하지 않다. 변기가 역류하면 독극물이 분출하는 셈이다. 물도 생수 외에 마실 수 없고, 정돈된 대피소가 아니면 집에 머물러도 지붕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다. 그동안 우리가 공공서비스에 워낙 익숙해진 터라, 영화 속에서 빗물부터 시작되는 물의 순환 과정을 망각해온 게 한순간에 들어온다.

죽음의 비 앞에서 무너지는 공동체

 영화 <애시드 레인: 죽음의 비> 스틸 이미지
영화 <애시드 레인: 죽음의 비> 스틸 이미지(주)엔케이컨텐츠

전대미문의 비상상황이지만, 할리우드 유사 장르와 달리, 정부 역할과 기능은 위태롭긴 해도 여전히 가동되는 중이다. 군대와 경찰은 지역을 통제하고, 민간인 대피 시설과 구호소를 꾸려간다. 할리우드 영화라면 대개 믿을 건 우리 식구밖에 없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공공서비스는 무기력할 만큼 순식간에 초토화되지만, 유럽의 시스템은 그 정도로 허술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듯하다. 사회적 참사 때마다 반복되는 상상 이하 대처에 절망하던 한국 관객에겐 제법 신선한 풍경일 정도다.

그러나 미셸이 보호관찰에 이르게 된 과정으로만 보였던 노사분쟁은 복선으로 기능하기 시작한다. 미셸은 공권력과 사회 체제에 대한 불신이 가득하다. 동료의 억울한 사정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지만, 경찰과 법원은 사용자 편만 들어 사회적으로 매장당했다고 여긴다.

그는 노동계급 정체성을 자랑스러워하지만, 투쟁의 대가로 이혼당하고 직장을 잃은 것에 대한 분노만 남았다. 그러니 매사에 공격적이고 유사시에 준수해야 할 공공규범 어기는데 거리낌이 없다. 영화 속에서 그 울분이 이해되는 측면도 있지만, 감정에 치우치고 극단적 이분법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미셸의 편향은 자신이 지키려는 이들과 관계를 불편하게 만드는 건 물론, 편견에 기초한 판단으로 일행을 위험에 빠지게 만든다.

전처와 딸은 미셸에게 의지하지만, 한편 이게 최선일까, 과연 제대로 보호할 수 있나 줄곧 의구심을 품는다. 세상 물정 잘 알고 유력한 지인들이 많은 오빠(외삼촌)에게 의지하는 게 더 낫겠다는 기대감은 곧 남편(아빠)에 대한 푸념으로 전환된다. 그에 대한 미셸의 대응은 자격지심과 피해의식이다. 마음을 모아도 시원찮을 판에 비아냥대거나 적대감을 표명하며 사람들을 난처하게 만든다.

미셸이 계속 감정적 판단을 내리는 바람에 불신은 한층 심각해진다. 물론 그의 가족을 수호하려는 의지는 진정성을 의심할 게 없는데도, 정작 본인이 지키려는 이들은 그의 진심을 온전히 믿지 않는다. 미셸의 독선과 아집, 가부장적 권위주의가 이를 조장한 셈이다.

그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보이는 이기적 태도는 가족들에게 신뢰 대신에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그로선 가족을 위해 필요한 자원을 획득하고, 외부의 위험요소를 배제하기 위한 지극히 현실적인 결단이지만, 문명사회에 익숙한 다른 가족에게 미셸의 난폭한 태도는 공포와 의혹으로 비칠 따름이다. 가족을 먹일 식료품을 남의 집에서 약탈하거나 타인의 차량을 무단으로 절취하는 건 미셸에겐 부자의 것을 돌려받는 셈이지만, 타인에겐 약탈자로만 비칠 뿐이다.

아내와 처남에 대한 계급적 갈등에 이어,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던 딸 셀마와 세대갈등도 만만찮다. 부녀관계는 기본적으로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아버지와 딸은 가족으로서 유대관계를 기본적으로 형성하면서도 서로 너무 오래 떨어져 지냈다. 이혼한 전처와 유복한 처가에 대한 억하심정이 있다 보니, 아빠는 딸에게 엄마와 외삼촌 비난에 여념이 없고, 청소년 세대가 자신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긍정적으로 참여하는 기후위기 대응을 부정한다. 노동자-자본가 대립을 희석하려는 '부르주아의 음모' 정도로 인식하는 것이다. 반대로 딸은 아빠의 무조건 강요하며 윽박지르는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다.

상당수 관객에게 셀마는 흔히 재난영화에서 반드시 등장하게 마련인 '민폐' 캐릭터 정도를 가뿐히 초월해 '발암'의 근원으로 보일 판이다. 그만큼 셀마는 그래도 어떻게든 자식을 지키려는 마음에 협력하는 아빠와 엄마는 물론, 자신까지 굳이 안 겪어도 될 위기에 수시로 빠지게 만든다.

그렇게 자기 입장을 발악하듯 토해내지만, 아직 어린 그로선 막상 난국에 처하면 그저 부모에게 구해달라 소리치는 것 이외엔 아직 방도를 모른다. 그런 상황이 사실 현실이라면 너무나 당연할 테지만, 자식을 지키려는 부모 입장에 공명한 관객들이라면 화면 속으로 뛰어들어 딸의 멱살을 쥐고 싶어질 지경이다.

위기의 징후는 사회적 불신에서 출발한다

 영화 <애시드 레인: 죽음의 비> 스틸 이미지
영화 <애시드 레인: 죽음의 비> 스틸 이미지(주)엔케이컨텐츠

산성비의 위력이 지나치게 과장되긴 했지만, 영화는 소행성 충돌이나 좀비 창궐 같은 현실 가능성이 희박한 위기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환경 파괴가 가져올 재앙을 소환하고, 자업자득으로 닥친 재난 앞에서 상호불신과 사회적 합의의 붕괴로 순식간에 무너지는 세계의 초상을 화면 가득 재연한다. 거기에 기성세대와 미래세대 사이 기후위기 시각 차이를 가미해 현실과 접속한다. 문제 환기를 넘어 사회적 해법 마련의 경각심을 높일 시도다.

물론 국가의 기본 역할과 기능은 붕괴하지 않았지만, 사회 전체에 깊어진 갈등과 적대로 인해 혼선이 대거 초래된다. 미셸 가족이 영화 내내 겪는 (보는 이들 속이 타고 짜증을 유발하는) 집안싸움은 그런 위태로운 사회의 축소판으로 그려진다. 한편, 필수 공공서비스가 제대로 유지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가공할 재앙이 된다는 점 역시 작품 속에 실감 가득 구현된다. 우리가 당연한 혜택처럼 사고하는 수도나 전기, 교통편이 끊어지는 순간 어떤 위험이 닥치는지, 재난 상황에서 상대적 약자 – 환자와 노약자 - 들이 가장 먼저 생명의 위협을 겪는다는 특징이 제대로 그려진다.

소통의 부재와 사회적 적대가 재난 피해를 기하급수적으로 확산하는 핵심으로 작용한다. 얼핏 위기 상황을 헤쳐나가는 미셸의 독재가 해법으로 보일 수 있지만, 표면적으론 사태를 악화시키는 것처럼 그려지던 셀마의 박애와 연민이 결과적으론 근본 해법이라는 게 증명되는 아이러니는, 재난영화를 통해 지금 프랑스 사회, 나아가 유럽과 세계 전체가 처한 난국에 대한 이 영화의 입장일 테다. 관객이 바라는 해피엔딩 대신에 결말이 선보이는 음울한 초상은 프랑스 국민배우 기욤 까네를 비롯한 출연진의 열연과 가공할 공포로 구현된 산성비에 힘입어 묵시록적 경고를 전한다.

 영화 <애시드 레인: 죽음의 비> 포스터 이미지
영화 <애시드 레인: 죽음의 비> 포스터 이미지(주)엔케이컨텐츠

[작품정보]

애시드 레인: 죽음의 비
Acid (Acide)
2024|프랑스|현실 재난 스릴러
2024.11.27. 개봉|100분|15세 관람가
감독/각본 쥐스트 필리포
출연 기욤 까네, 라에티샤 도슈, 파스장스 문헨바흐
수입 ㈜엔케이컨텐츠
배급 ㈜디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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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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