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딜리버리> 스틸컷
영화 <딜리버리> 스틸컷마노엔터테인먼트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아빠 의심 많아. 속이려면 확실하게 속여야지."

산부인과 의사 귀남(김영민 분)과 인플루언서 아내 우희(권소현 분) 부부는 누구보다 아이를 갖고 싶어 한다. 우희의 아버지 태식(동방우 분)의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서다. 자식을 낳는 일만이 어른이 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 인물이다. 문제는 귀남이 무정자증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자신이 가진 불임 문제를 아내의 탓으로 돌린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희는 죄책감과 미안함 속에서 어떻게든 아이를 가질 방법을 구한다. 직접 아이를 낳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한편, 게임을 달고 사는 달수(강태우 분)와 중고 거래로 생활비를 마련하는 미자(권소현 분)는 현실적인 문제로 임신을 포기하려고 한다. 가진 거라고는 겨우 코딱지만 한 집의 보증금이 전부인 데다 마땅한 직업 하나 없는 남자를 믿고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여자의 뜻이다. 당장 자신들이 먹고 살 것도 없는데 돌봄이 필요한 존재를 더해서는 그렇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미래가 더 어둡기만 하다. 각자의 문제를 안고 있는 두 커플이 병원에서 마주하게 된다. 미자의 중절 수술을 귀남이 담당하게 되면서다. 하지만 귀남의 실수로 수술은 실패하게 되고 이들은 위험한 거래를 시작하게 된다.

영화 <딜리버리>를 연출한 장민준 감독은 영아 유기 사건이 기록된 신문 기사를 접하고 이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밝힌다. 아내와 함께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겪으며 직접 느꼈던 바를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커플의 상황과 입장을 통해 풀어내고자 한 것이다. 그는 이 작품에 '생명과 관련한 감정적 딜리버리, 즉 소통이 더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말한다.

 영화 <딜리버리> 스틸컷
영화 <딜리버리> 스틸컷마노엔터테인먼트

02.
두 커플이 공모하는 거래는 비교적 명확하다. 귀남과 우희 부부가 1억에 가까운 보수와 임신 기간 중 머물 집을 마련해주는 대신 달수와 미자가 출산할 아이를 넘기는 것. 교환에 달린 도덕성이나 법적 문제는 차치하고, 각각의 제시가 두 커플이 원하는 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요건에 해당된다는 뜻이다. 사실 이대로라면 서사가 가진 볼륨감을 말하기 이전에 상식적으로 관객을 설득하기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문제가 있는 거래가 너무 쉽게 성사되는 측면이 있고, 그 과정에서 죄책감이 결여되고 있어서다.

"한 번 살아남은 아이예요. 다시 죽일 순 없지 않겠어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영화가 보여주는 건 두 갈래다. 거래가 성립되기 이전의 인물 모두가 얼마나 불완전한 성인으로 존재하고 있었는지와 또한 임신과 출산을 포함한 생명을 갖는 일련의 모든 과정을 대하는 두 커플의 태도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다. 먼저 달수와 미자 커플은 애초에 자신들이 아이를 낳아 기를 환경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명백히 인지하고 있다. 정확하고 분명한 방법의 피임이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결과적으로 임신을 하고 만다. (여기에는 달수의 무책임한 태도에 더 큰 책임이 놓인다.) 처음의 낙태 시술이 실패한 뒤에도 마찬가지다. 거액이 걸린 제안 앞에서 이들은 잘못된 선택을 한다. 귀남과 우희는 애초에 아이를 가지고자 하는 목적부터가 잘못된 커플이다. 새 생명 그 자체가 아닌 유산의 상속을 위해 필요한 출산이다.

불완전한 성인으로서의 인물을 그리는 일 역시 꽤 공을 들여 진행된다. 애를 둘 셋 더 나아 레벨업하자는, 자신들의 일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날 아이에게는 기회를 주고 아이가 없는 부부에게는 아이를 주는 일이라는 달수는 말할 것도 없고, 불임의 원인을 거짓말까지 해가며 아내의 탓으로 돌리는 귀남의 태도에도 책임감은 찾아볼 수 없다. 그 곁의 우희와 미자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정의와 절차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물질적이고 비도덕적인 방식을 통해 내일의 모습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그 태도는 제대로 된 성인이 가져야 할 모습이라고 볼 수 없다.

03.
거래와 교환이 낳는 가장 큰 문제는 앞서 이야기했던 문제들을 더 증폭시킨다는 데 있다. 이제 다른 부부의 아이를 뱃속에 품고 키우게 된 미자는 생명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닌, 그에 대한 대가, 더 많은 금액을 받는 것에 몰두하게 된다. 우희는 실제로 자신이 임신한 것도 아닌데, 사회적 동의를 얻고 경험적 가치를 획득하기 위해 마치 진짜 임산부가 된 것처럼 행세하고 다니기 시작한다. 아이의 건강한 출산이라는 미명 하에 홈캠을 통한 감시도 계속된다. 책임감의 결여와 거짓의 반복 속에서 한 생명이 잉태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셈이다.

이 문제는 뱃속의 아이가 기형의 가능성을 가지게 되며 더 커지게 된다. 기형일 경우, 여러 차례의 수술이 필요하고 그 수술을 무사히 받더라도 일반적인 삶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사의 말 앞에서 귀남, 우희 부부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정상인 경우에만 데려가겠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미자의 남편 달수는 그 아이를 자신이 키우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임신의 당사자인 미자를 그동안 외면해 왔던 차갑고 냉정한 현실 속으로 다시 밀어 넣는 순간이다. 그리고 아이의 태동, 생명의 경이로움과 그 증거를 확인할 순간은 이 철없는 엄마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온다.

 영화 <딜리버리> 스틸컷
영화 <딜리버리> 스틸컷마노엔터테인먼트

04.
"너나 나나 처음부터 부모 될 자격 없었어."

물질적 풍요 속에서 역대 최저 수준에 다다른 출산율. 저출생과 경제적 양극화 문제. 우리 사회가 가진 아이러니를 담고자 한 이 작품에서 두 커플이 다다르게 되는 자리는 더 이상 웃음 지을 수 없는 곳이다. 서로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거래는 지금까지 지연해 왔던 현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단번에 무너지고 만다. 그 과정에서 남는 단 하나의 아쉬움이 있다면, 영화 내내 도모하지 못했던 달수라는 인물의 성장을 너무 쉽게 도모한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기회처럼 보이던 몇 번의 장면 속에서도 어른이 되지 못했던 인물이 보여주는 한순간의 성장은 이 영화가 여태 쌓아왔던 진중하고 무거운 걸음을 다소 가볍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다만 생명의 태동으로부터 가장 가까이에 놓여 있는,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미자의 마지막 모습에는 분명한 울림이 있다. 그는 임신의 과정을 통해, 지금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어떤 변화를 체득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어떤 현상을 직접 경험한다는 것은 개인에게 커다란 변곡점이 된다. 물론 이 변화를 설득력 있게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은 배우 권소현이 보여주는 현실적이고도 단단한 연기다. 이 영화가 단순한 코미디를 넘어 영화가 가진 사회 현실적인 측면들까지 잘 안을 수 있는 것에도 같은 이유가 작용한다.

05.
영화 <딜리버리>는 불편할 수 있는 사회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문제 자체에 대한 판단보다는 이를 둘러싼 상황과 인물에 초점을 맞춰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현 세태를 풍자하고 비판하고 있으면서도 극의 서사가 완전히 그런 문제에만 매몰되는 일 또한 잘 피해냈다. 몇몇 소재가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 있지만, 우리 사회의 소외된 자리와 외면되어 왔던 이야기가 더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갖는 의의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출산과 분만, 배달 등을 뜻하는 의미를 가진 '딜리버리.' 우리 사회가 무엇을 낳고, 또 주고받고 있는지 다시 한번 떠올려보게 된다.
영화 딜리버리 김영민 권소현 강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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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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