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딜리버리> 스틸컷
마노엔터테인먼트
02.
두 커플이 공모하는 거래는 비교적 명확하다. 귀남과 우희 부부가 1억에 가까운 보수와 임신 기간 중 머물 집을 마련해주는 대신 달수와 미자가 출산할 아이를 넘기는 것. 교환에 달린 도덕성이나 법적 문제는 차치하고, 각각의 제시가 두 커플이 원하는 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요건에 해당된다는 뜻이다. 사실 이대로라면 서사가 가진 볼륨감을 말하기 이전에 상식적으로 관객을 설득하기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문제가 있는 거래가 너무 쉽게 성사되는 측면이 있고, 그 과정에서 죄책감이 결여되고 있어서다.
"한 번 살아남은 아이예요. 다시 죽일 순 없지 않겠어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영화가 보여주는 건 두 갈래다. 거래가 성립되기 이전의 인물 모두가 얼마나 불완전한 성인으로 존재하고 있었는지와 또한 임신과 출산을 포함한 생명을 갖는 일련의 모든 과정을 대하는 두 커플의 태도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다. 먼저 달수와 미자 커플은 애초에 자신들이 아이를 낳아 기를 환경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명백히 인지하고 있다. 정확하고 분명한 방법의 피임이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결과적으로 임신을 하고 만다. (여기에는 달수의 무책임한 태도에 더 큰 책임이 놓인다.) 처음의 낙태 시술이 실패한 뒤에도 마찬가지다. 거액이 걸린 제안 앞에서 이들은 잘못된 선택을 한다. 귀남과 우희는 애초에 아이를 가지고자 하는 목적부터가 잘못된 커플이다. 새 생명 그 자체가 아닌 유산의 상속을 위해 필요한 출산이다.
불완전한 성인으로서의 인물을 그리는 일 역시 꽤 공을 들여 진행된다. 애를 둘 셋 더 나아 레벨업하자는, 자신들의 일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날 아이에게는 기회를 주고 아이가 없는 부부에게는 아이를 주는 일이라는 달수는 말할 것도 없고, 불임의 원인을 거짓말까지 해가며 아내의 탓으로 돌리는 귀남의 태도에도 책임감은 찾아볼 수 없다. 그 곁의 우희와 미자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정의와 절차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물질적이고 비도덕적인 방식을 통해 내일의 모습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그 태도는 제대로 된 성인이 가져야 할 모습이라고 볼 수 없다.
03.
거래와 교환이 낳는 가장 큰 문제는 앞서 이야기했던 문제들을 더 증폭시킨다는 데 있다. 이제 다른 부부의 아이를 뱃속에 품고 키우게 된 미자는 생명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닌, 그에 대한 대가, 더 많은 금액을 받는 것에 몰두하게 된다. 우희는 실제로 자신이 임신한 것도 아닌데, 사회적 동의를 얻고 경험적 가치를 획득하기 위해 마치 진짜 임산부가 된 것처럼 행세하고 다니기 시작한다. 아이의 건강한 출산이라는 미명 하에 홈캠을 통한 감시도 계속된다. 책임감의 결여와 거짓의 반복 속에서 한 생명이 잉태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셈이다.
이 문제는 뱃속의 아이가 기형의 가능성을 가지게 되며 더 커지게 된다. 기형일 경우, 여러 차례의 수술이 필요하고 그 수술을 무사히 받더라도 일반적인 삶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사의 말 앞에서 귀남, 우희 부부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정상인 경우에만 데려가겠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미자의 남편 달수는 그 아이를 자신이 키우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임신의 당사자인 미자를 그동안 외면해 왔던 차갑고 냉정한 현실 속으로 다시 밀어 넣는 순간이다. 그리고 아이의 태동, 생명의 경이로움과 그 증거를 확인할 순간은 이 철없는 엄마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