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JTBC 드라마 <조립식 가족>이 종영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본방'이 무슨 큰 의미가 있으랴. 아니 누군가는 종영을 기다려 이제부터 정주행을 시작할 지도 모른다.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는 드라마 <조립식 가족>이 인기다. 미국, 브라질, 프랑스, 영국,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인도 등 88개국에서는 무려 6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글로벌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특히 글로벌 OTT 라쿠텐 비키에서는 평점 9.7점을 기록하며 인기는 물론 작품성도 인정받고 있는 중이다.

무엇이 전세계 시청자들로 하여금 이 드라마를 애정하게 만들었을까? 근래에 보기 드문 착하고 따뜻한 드라마였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는 드라마에서 살인과 폭력이 여사인 세상. 자극적 설정이 아니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힘든 세상에서 <조립식 가족>은 별종 중에 별종인 드라마다.

어쩌면 이 드라마의 인기를 통해 우리는 진지하게 질문을 던져봐야 할 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정말 보고 싶은 드라마가 무엇인가에 대해.

따뜻한 밥 한 끼의 인연

 조립식 가족
조립식 가족넷플릭스

16회, 주인공 산하(황인엽 분)는 아버지에게 말한다.

"거기 계셔주셔서 고마워요. 아버지가 늘 그곳에 계셔서 저는 돌아올 곳이 있다고 생각해서 떠날 수도 있었어요."

드라마는 바다가 보이는 자그마한 지방 도시 해동에서 아내를 잃고 어린 딸과 함께 칼국수 집을 하며 살아가는 정재씨로부터 시작된다. 엄마는 없지만 티 없이 밝게 자란 딸 주원은 오빠를 소망했고, 소망대로 두 명의 오빠가 생겼다. 하지만 그 오빠들이 주원의 오빠가 되기까지 사연은 곡진하다.

위층에 새로운 가족이 이사를 왔다. 하지만 이사온 날부터 시끄러웠다. 알고 보니 슬픈 사연, 엄마 아빠가 집을 비운 사이 동생이 목숨을 잃었다. 그 자리에 있던 건 어린 오빠 산하였다. 자신이 없는 사이 딸을 잃은 엄마는 그 비극을 감당하지 못한 채 자식의 죽음을 산하의 탓으로 돌렸다. 덕분에 산하는 따뜻한 밥 한 끼는 커녕 엄마의 슬픔을 넘어선 히스테리까지 감당하느라 힘들다.

그런 산하에게 밥 한 끼를 차려주는 것으로 정재씨네와의 인연은 시작됐다. 산하를 탓하는 것으로도 견딜 수 없었던 엄마는 어린 주원에게 "너 가져"라며 산하를 버려둔 채 홀로 떠난다. 마치 조립식 레고를 맞추듯 그렇게 엄마가 없어진 두 가족은 아빠가 둘이나 되는 새로운 가족으로 재탄생했다.

산하만이 아니다. 동네 터줏대감 여사님의 중신으로 주원이네 집에 온 해준이와 엄마. 정재씨는 처음부터 해준이 엄마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정재씨네 집에 남게 된 건 해준이 엄마가 아니라 해준이였다. 돈까지 꾸고 사라져버린 해준이 엄마. 그럼에도 자기 집에 와서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좋아했던 해준이 마음에 걸린 정재씨는 채준을 찾아 데리고 온다. 역시나 정재씨의 따뜻한 밥 한 끼로 부터 시작된 인연이다. 그렇게 또 하나의 조각이 맞춰지며 가족이 늘어났다.

질곡의 늪이 된 '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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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립식 가족넷플릭스

해준의 생일 날, 정재씨네 집에 초대받은 해준의 이모는 말한다. 졸업해서 이 은혜를 잘 갚아야 한다고. 그러자 정재씨는 화를 낸다. 왜 내 아들인데 뭘 자꾸 갚으라 갚으라 하냐고. 자신의 싹싹한 아들로 함께 해준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길러준 것이 아니라 기른 거라고, 그래서 갚아야 할 게 있는 게 아니라고 말이다.

그러기에 해준의 친아빠가 찾아오자 이렇게 말한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만이라도 함께 하면 안되겠냐고. 아직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 교복도 빨아주고, 밥도 더 해 먹이고 싶다고.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에서 '모성'은 아이들에게 질곡의 늪이 된다. 스스로 어른이 되지 못한 산하의 엄마는 자신의 불행이 남탓인 것만 같다. 특히 어린 산하에게 그렇다. 산하를 두고 떠나 재혼을 했지만 거기서는 또 남편을 잃는다. 산하 엄마는 산하에게 자신이 낳은 딸을 맡기다 시피 한다. 그리고 매일 밤 술을 마시며 산하를 탓하는 세월을 이어간다. 그녀는 엄마이지만, 산하를 보호할 만한 어른이 되지 못한 것이다.

의존적인 산하의 모친과 달리, 해준의 엄마는 외려 자식에게 해가 될까 자식을 멀리 한다. 뜻하지 않는 사건에 휘말려 감옥에까지 다녀 온 엄마는 정재씨의 따스한 보살핌을 받고 있는 해준을 보며 자신과 함께 하기보다는 차라리 정재씨네 있는 편이 낫겠다며 해준의 곁을 떠났다. 자식을 위한 선택이었다지만, 정말 자식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회피하는 이기적인 엄마였다.

그런 엄마들과 달리 정재씨는 엄마들 대신 자신의 딸 주원을 비롯하여 산하와 해준을 거둬 먹였다.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신은 바로 이 '조립식 가족'들이 한 자리에서 끼니를 나누는 장면이다. 덕분에 외톨이였던 주원은 '무슨 일이 생기면 어디선가 나타나는' 오빠들 둘과 함께 성장할 수 있었다.

한 해가 저무는 즈음, 아마도 많은 이들의 마음이 스산할 테다. 열심히 산 것 같은 데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모래알 같은 시간들을 보내며 헛헛함이 크다. 이럴 때 <조립식 가족>의 온기로 마음을 달래보면 어떨까. 아이들을 키워내는 그 시간 자체로 행복이었다는 정재씨의 한마디처럼, 우리의 지나온 시간이 가진 충만함을 복기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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