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황가람이 유튜브 '동네청년' 채널에 올린 <나는 반딧불> 뮤직비디오
가수 황가람이 유튜브 '동네청년' 채널에 올린 <나는 반딧불> 뮤직비디오황가람

취업을 위해 온갖 스펙을 쌓느라 사망할 것 같다는 대학교 '사망년(3학년)' 때, 그날은 종강을 축하한다는 핑계로 술자리가 펼쳐졌다. 나는 하필 교수님 옆자리였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일갈에 시달렸다. 너는 공부 좀 해라, 휴학하고 차라리 워킹 홀리데이를 가라... 한 명씩 지목하며 일침을 쏟던 교수님께서는 내게 아리송한 임무를 주셨다.

"너는 초라할 필요가 있어. 화려하고 반짝거리는 너의 모습만이 전부가 아니야."

교수님은 항상 나의 '반짝임'을 꼬집던 분이셨다. 스펙이나 칭찬에 매몰되지 말고, '초라한' 너를 만나라고 독촉하셨다. 그때마다 겉으로는 웃었고, 속으로는 갈증이 났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초라했기 때문이다. 바닥에 달라붙을 만큼 쭈글쭈글한데, 여기서 뭘 더 초라하라는 건가.

교수님의 눈에는 별 같은 학생이었는지 몰라도, 나는 내 정체를 알았다. 나는 별이 아닌 개똥벌레였다. 간간이 반짝이는, 벌레.

교수님께서 내리신 임무는 마치 델포이 신탁처럼 애매모호해서 대학 시절 내내 풀리지 않았다. 그리고 2024년, 이 노래를 만나고 힌트를 얻었다. 초라함을 짊어져도 빛의 속도는 느려지지 않는다고, 우리는 개똥 '벌레'이면서 동시에 반딧불이라고 말하는 노래. 초라한 당신의 창가에 이 노래를 띄우고 싶다.

빛은 아무리 초라해도 빛난다

 황가람 <나는 반딧불> 관련 이미지
황가람 <나는 반딧불> 관련 이미지KKumu Music

당신께 보낼 반딧불은 가수 황가람의 <나는 반딧불>이다. 2020년 인디밴드 '중식이'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노래로 입소문을 타며 '수능 위로곡'으로 떠올랐다. 수능 당일인 14일 TJ노래방 인기 순위 68위에서 지난 20일 25위까지 오르며 일주일 만에 43계단 상승했다. 수험생에게 유명하지만, 유튜브 영상에는 나이를 불문하고 "큰 위로를 받았다"는 사람들의 고백이 가득하다.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하늘에서 떨어진 별인 줄 알았어요
소원을 들어주는 작은 별
몰랐어요 난 내가 개똥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나는 빛날 테니까
- 황가람 <나는 반딧불> 가사

노래 속 화자는 자신이 '별'이라 믿는다. 혼자서는 반짝이고, 함께 있을 때는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그런 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화자의 믿음은 깨지고 만다. 사실 그는 별도, 달도 아닌 '개똥벌레'다.

하늘에서 떨어진 별인 줄 알았던 자신이 알고 보니 개똥벌레로 태어났다는 사실에 실망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한 명제를 깨닫게 된다. 내가 별인지, 개똥벌레인지 중요치 않다. 정체가 무엇이든 나는 여전히 이곳에서 빛나고 있다.

가사에서 화자는 고집스럽게 자신을 '벌레'라고 칭한다. 정작 노래 제목은 <나는
반딧불>인데 말이다. 개똥벌레와 반딧불이, 같은 곤충을 표현하는 두 가지 단어인데 어감이 다르다. 어쩌다 그는 마음을 바꿔 스스로 '반딧불'이라 불렀을까. 벌레에서 벗어나 '반딧불'로 빛나게 됐거나, 그게 아니면 무엇이든 변함없이 빛나는 자신을 맞이한 걸지 모른다.

어떠한 존재이든 그 자체로 빛난다는 가사에 많은 이들이 위로 받았다. "내가 '개똥벌레' 같은 존재라는 걸 인정하기 싫었는데 이 노래를 듣고 울었다", "별이든 개똥벌레이든 상관없다. 살아있으면 다 빛난다", "시험에 떨어졌을 때 내가 '벌레'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별'처럼 느껴진다" 등 초라함을 끌어안은 이들이 감상평을 남겼다.

반딧불은 유일하게 자유로운 별

 가수 황가람 <나는 반딧불> 라이브 영상 화면 갈무리
가수 황가람 <나는 반딧불> 라이브 영상 화면 갈무리xxentertainment

이 노래가 내게 부딪힌 건 '별'이 되기 위해 애썼던 시간 탓이다. 교수님께서 "그만 반짝이라"고 꾸짖으시던 때, 나는 반짝이기 위해 나를 불태웠다. 시뻘건 눈으로 책상 앞에 앉아 공부했고, 덜덜 떠는 손을 숨겨가며 공모전에서 발표했다. 공부만 하느라 놀지 못했다는 후회따위 하지 않고자 회식 자리에서 소주병에 숟가락 꽂고 야무지게 노래도 했다.

그런데 그때의 나는 너무 반짝여서, 사라지고 싶었다. 내 겉모습은 점점 혜성처럼 부풀어가는데 속마음은 초라했기 때문이다. 스펙이 채워지면 내 결핍이 해결되는 줄 알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면 나를 사랑할 줄 알았다. 그러나 하나도 그러지 못했다. 면접관 앞에서 나를 뽑지 않으면 후회할 거라 배짱 부려도, 거울 앞에서 주근깨를 세어볼 자신은 없는 사람. 그게 바로 대학교 3학년의 나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는 점점 초라함과 마주했다. 실수투성이인 나, 사소한 것에 눈물을 흘리는 나, 뭘 해도 안 되는 나. 그때마다 나를 미워하고 질책도 했지만, 언젠가부터 손을 내밀게 됐다. 초라한 나와 악수하다가 함께 대화도 나누고, 이제는 가끔씩 안아줄 수 있는 사이가 됐다. 그런 시점에 <나는 반딧불>을 만났다.

눈부신 별인 줄 알았던 내가 개똥벌레라도 괜찮다는 노랫말처럼, 나도 이제 '개똥벌레'인 내가 괜찮다. 그래도 푸르게 빛나기 때문이다. 사실 빛나지 않아도 좋다. 까만 하늘에 박혀,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바쁜 별이 될 바에는 차라리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반딧불이 되고 싶다. 별보다는 덜 빛날지 몰라도, 더 자유로우니까 됐다.

3학년보다 훨씬 분주한 20대 중반, 이상하게 마음은 그때보다 태평하다. 1등 못 하면 죽는 줄 알았는데, 요즘은 점수 확인도 안 한다.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오락가락했는데, 지금은 칭찬이든 욕이든 적당히 걸러 듣는다. 그럼에도 나는 나이고, 발광하는 빛은 숨길 수 없으니까.

당신도 나처럼, <나는 반딧불>처럼 가장 초라한 별이 돼 자유로이 비행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안쓰럽게 눈부시니까.














황가람 나는반딧불 중식이 수능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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