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한국단편영화상 관객상 수상작 <빼고>
제2회 한국단편영화상 관객상 수상작 <빼고>포스트핀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나는 엄마 하나면 돼."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에는 몇 가지가 있을까. 적어도 한 가지는 아닐 것 같다. 몇 편의 영화만 떠올려봐도 그렇다. 처음부터 감정을 터뜨리며 침잠하는 방식으로 이끌어가는 이야기가 있고, 서서히 쌓여가는 서사 위에서 촉발점을 찾아내는 작품도 있다. 감정의 집합을 뜻하는 의미로 단어 하나를 택해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결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영화 <빼고>를 연출한 심이안 감독은 프레임 위에 감정을 인위적으로 축적하지 않는다. 그저 화면 곳곳에 당위를 가진 장면을 흩어놓을 뿐이다. 그리고 관객의 경험을 빌려온다. 여기에서 경험을 빌린다는 뜻은 의존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보편적 상황과 감정을 이용한다는 뜻이다. 이 작품에서는 소중한 존재의 상실이다.

영화의 시작에 등장하는 보라(조아영 분)에게는 엄마 진실(오지후 분)은 소중한 대상이다. 엄마가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적어도 영화에서 보이는 것으로는 보라에게 가족의 유일한 존재인 진실은 더욱 그렇다. 오롯한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래서 더 불편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격의 없고 편한 사이라서 되려 감정을 쌓아두게 되는 사이.

상의도 없이 오래된 짐을 마음대로 자신의 방에 가져다 놓은 엄마의 행동이나, 말도 없이 가져다 쓰는 화장품에 화가 나는 것도 그래서다. 시시때때로 들려오는 시끄러운 노랫소리에는 이제 진절머리가 난다.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그녀를 매일 밤 품에 안고 온기를 채워주는 엄마를 오래 싫어할 수는 없다.

02.
영화의 타이틀이 떠오른 다음 장면에서 보라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된다. 오랫동안 환기도 하지 않은 듯한 어두컴컴한 집. 오래 전의 장면으로부터 거의 달라지지 않은, 먼지만 겨우 내려앉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대로인 공간 안에서 무기력한 모습이다.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는다. 엄마와의 사소한 트말썽으로 짜증을 내기는 했지만 이전에 보였던 활기도 모두 잃은 듯한 느낌이다. 사촌 언니 혜린(이승윤 분)이 갑갑한 현관문을 열고 찾아와 말동무가 되어주고, 오랜 단골처럼 보이는 슈퍼마켓 주인아주머니(안민영 분)의 걱정이 그 자리를 겨우 채운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겉모습으로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그녀의 몸무게가 105kg으로 측정된다는 사실이다. 그녀 역시 그럴 리가 없다는 듯, 몇 번이고 다시 재보지만 숫자는 달라지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비현실적으로 표현되는 장면이다. 진짜 몸무게는 중요하지 않다. 어릴 때부터 장난처럼 반복해 왔던 엄마와의 몸무게 재기. 이 지점에는 상실한 존재와의 비물리적 경험과 기억, 감정 모두가 놓인다. 지금 보라는 엄마를 잃은 직후의 상태로 집안을 유영하고 있다.

잃어버리고 난 후에 알게 되는 것이 있다.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던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느껴지지 않던 것이 피부 깊숙이 파고들기 시작한다.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던 엄마의 상자, 자신이 알지 못했던 엄마의 지난 여러 모습을 보라가 알게 되는 것 역시 그때가 된다. 쓸모없는 짐처럼 밀어내려고만 했던 상자 속에서 엄마의 흔적이 쏟아져 나온다.

 제2회 한국단편영화상 관객상 수상작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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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엄마는 요리를 잘 못하는데, 떡볶이만큼은 세계 최고로 잘합니다."

중요하게 다뤄지는 문구 하나가 있다. 한국어 선생님이 되기 위해 필요한 면접 준비 과정에서 보라가 내뱉던 용어. '~하던'과 관련한 내용이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상태를 뜻하고, 말하고 있는 사람이 자각하고 있을 때 사용된다는 이 말은 지금 보라가 안고 있는 엄마의 기억과 연결된다. 표면적으로는 이 영화에서 엄마의 떡볶이가 과거와 관계를 떠올리는 장치로 활용되고 있지만,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자각하지 못했던 엄마의 존재와 그 빈 자리를 배회하는 보라의 모습을 생각하면 '~하던'에는 꽤 무거운 마음이 놓이게 된다.

공간과 음식, 유품과 기억의 장면을 거쳐 촘촘히 연결되던 그리움의 형상은 차오르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리고 마는 보라의 모습을 통해 한번 표현된다. 자신의 미래가 달린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감정을 헤집고 나오는 이 슬픔을 그는 어쩔 도리 없이 쏟아내고 만다. 그동안 어떤 동요도 없던 인물의 감정적 표현. 소중한 존재를 상실한 인물의 무력한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한 지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동일한 경험을 가진 관객이라면, 어떤 누구도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신이다.

 제2회 한국단편영화상 관객상 수상작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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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이 영화의 원제는 'Have I told you lately'다. 굳이 번역하자면, '최근에 내가 말했던 적이 있나요?' 정도가 될 것 같다. 영화의 타이틀에 눈길이 머물게 된 이유다. 지금 관객에게 보이는 타이틀은 <빼고>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하나의 작품을 두고 두 제목의 거리가 조금은 멀어 보이기도 해서. 글쎄, 연출자인 심이안 감독의 마음까지는 알 수 없지만, 내게는 이 거리가 중심인물인 보라를 두고 안팎으로 설명하는 두 개의 시선이 아닐까 여겨진다. 이제 곁에 없는 엄마에게 보내는 보라 내면의 목소리를 원제에, 지금을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고 소중한 이를 대했던 그녀의 모습을 현재의 제목에 담는 식으로 말이다. 어느 쪽으로나 결국 두 타이틀 모두가 말하는 바는 하나, '사랑한다'는 말이다.

이제 보라는 다시 나아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엄마의 자리를 정리하고 잊어버려서가 아니라 다시 기억하고 보듬는 과정을 통해서다. 곁에 머무는 또 다른 소중한 이들의 돌봄 속에서 그는 분명 자신의 자리를 다시 매만져 갈 것이다. 보라의 몸무게가 다시 원래의 숫자를 되찾게 되는 것도 그즈음이 되지 않을까. 영화에 해당 장면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이야기의 끝에 분명히 그런 장면이 놓이게 될 것이라 믿는다.
영화 빼고 심이안 조아영 오지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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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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