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내 집 마련, 그건 한국인 일반의 가장 보편적 욕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국민이 빚더미에 올랐단 자조, 가계부채가 폭발 직전이란 우려에도 불구하고, 아직 제 집을 갖지 못한 이들은 빚을 내서라도 집을 갖고 싶다는 욕망을 좀처럼 내려놓지 못한다.

집을 가진 이들이라 해서 다른 것도 아니다. 좀 더 넓은 집, 방이 하나라도 많은 집, 더 발전된 지역에 있는 집과 더 인기가 높은 주거 형태의 집으로 사는 곳을 옮겨가겠다는 욕망에 흔히 마주하게 된다. 내 집 마련, 또 집을 넓혀가려는 욕망의 수레바퀴 가운데 역주행은 좀처럼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남들 다 있는 집 한 채가 없다면, 또 전보다 못한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면 삶 전체가 망가진 것처럼 느끼기 십상이다.

집 향한 집착

내 방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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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대한 집착이 그저 남과 비교하는 세태 때문이라 할 수는 없다. 그 근본은 어디까지나 인간에게 필요한 주거를 안정적으로 하고 싶은 본능에 기인한 것일 테다. 주거가 불안정한 이는 불안에 놓일 수밖에 없고, 주거가 쾌적하지 않은 이는 불만과 맞닥뜨리기 십상이다. 기본적인 욕구가 해소된 뒤에야 더 상위의 욕구를 욕망할 수 있음을 현대 심리학은 일찌감치 지적하지 않았나.

부동산에 대한 욕망이 본능이라 해도 좋을 필요로부터 출발한다면, 그건 결코 어른 만의 것일 수는 없다. 아동에게도 부동산, 즉 내 공간에 대한 욕구와 갈망,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세상의 흔한 어른들, 심지어 부모라 할지라도 아이의 사정을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공감하는 경우가 얼마나 적은가. 우리는 한때 간절했던 어린 시절의 마음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만 것이 아닌가.

제10회 아동권리영화제 단편영화 경쟁 섹션에 출품된 <내 방>은 우리가 잊어버린 그 시절 평범한 욕망에 대한 이야기다. 한세하 감독의 23분짜리 단편은 동생 지유(이지현 분)와 방을 함께 써야 하는 언니 지안(김지원 분)을 비춘다. 지안은 한창 교우관계에 예민한 중학생 소녀다. 친구들 사이에서 공부하는 영상을 촬영해 단톡방(단체채팅방)에 공유하는 게 인기를 끈다. 서로가 집중해 공부하는 모습에 자극을 받는다는 게 이러한 행동의 이유다. 지안도 공부하는 장면을 찍어 함께 올리기로 한다.

똑같은 나이, 똑같은 성별, 학교는 물론 반까지 같고 같은 동네에 사는 아이들이다. 그러나 각각이 처한 환경은 전혀 다르다. 어떤 아이는 부모가 학교를 오가며 자가용으로 통학을 시키고 학원도 여러 개를 다닌다. 또 어떤 아이는 버스를 타고 다니며 집에 오면 이런저런 잡일을 나눠 해야 한다. 그런 상황이 적어도 학업에 있어선 차이를 발생케 하는 것이다.

친구들처럼 공부를 잘하고 싶은 지안이 자기 상황을 돌아보게 되는 건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것, 그러나 남이 가진 것에 민감하지 않던가.

<내 방>은 지안이 갖지 못한 것 중 가장 중한 것처럼 보이는 '방'에 주목한다. 친구들이 찍어 올린 영상에는 정돈된 방에서 집중해 공부하는 모습이 찍혀 있지만, 지안의 영상은 지저분하고 비좁은 방이 보이지 않도록 제한된 영상으로 찍곤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초등학생인 지유와 함께 쓰는 방이 늘 어질러져 있기 때문이다. '네가 왜 내 방을 어지르느냐' 하는 말이 안 먹힐 수밖에 없는 건, 지안의 방이 지유의 방이기도 한 탓이다. 중학생이 되고도 제 방을 갖지 못한 지안이 불만이 있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K-장녀'의 피곤한 삶

내 방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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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차근히 지안이 놓인 삶을 조명한다. 지안, 지유, 막내아들 지호(김예성 분)까지 삼남매가 자라는 집이다. 요즘처럼 애 안 낳는 세상에선 찾기 힘든 가정이 아닌가. 부모의 삶 또한 버거울 수밖에 없다. 집안일만으로도 힘에 부치는 엄마는 지안과 지유에게 자주 도움을 청한다.

빨래를 걷고 또 개는 기본적인 일거리부터 간단한 심부름도 아이들의 손을 빌린다. 그러다 보면 공부할 시간이 방해를 받게 되기 십상이다. 가만히 방 안에 있어도 아직 어린 동생들이 귀찮게 할 때가 많다. 공부 하나에만 전념할 수 있는 외동딸과는 경쟁이 될 리가 없지 않은가, 하고 지안은 생각한다.

지안이 갖지 못한 것을 영화는 하나씩 드러낸다. 친구들이 다들 다닌다는 학원을 지안은 가지 못한다. 아마도 넉넉지 않은 주머니 사정일 것을 알아서 지안은 그를 보내달라 떼를 쓰지 못한다. 학교도 직접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한다. 방도 자기 몫을 갖지 못했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향한 부모의 관심 또한 동생들과, 또 부모의 바쁨에 나눠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교하자면 끝이 없지만

내 방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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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상황에서 영상을 찍어 올리는 작업은 지안에게 스트레스가 된다. 제게 부족한 것을 남에게 보이기 싫은 마음이 자연히 들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모임에서 빠지는 것은 더욱 싫다 보니 동생을 어르고 달래 함께 청소까지 한다. 깨끗이 치우고 나면 그래도 조금은 봐줄 만한 꼴이 되지 않는가. 그렇게 깔끔한 방에서 공부하는 영상을 찍어 올리는 것, 그게 지안의 욕망이다. 요새 아이들치곤 그리 대단한 갈망도 아니지 않은가.

어른의 시선에선 당장 배가 불렀다는 이야기가 나올 법도 하다. 당장 쪽방에서 가족들이 뒤엉켜 살고, 화장실 하나를 몇 가구가 나누어 썼던 시절을 산 이들이 우리 가운데 수두룩하지 않은가. 형제자매와 같은 방을 쓰는 일은 흔하디흔한 것이었고, 부모가 아이를 학교에 데려가고 데리고 오는 일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시간은 빠르게 변해서 한때는 당연했던 것이 이제는 억척스러운 것이 되고, 한때는 유난스러운 것이 지금은 평범해지기도 한다. 그리하여 지안이 바라는 것이 그 또래의 자연스러운 요구란 것을 무시하게 되기도 한다.

반면 세 아이를 낳아 기르며 아이 각자에게 방 하나씩을 내주지 못하는 부모의 사정이야 누구나 이해하는 바다. 요즘 집값이며 아이를 기르는 데 드는 온갖 비용을 생각하면 학원을 보내지 못하는 일도 충분히 있을 수는 있는 일이다. 사교육은 언제나 필요보다 번성하게 마련이고, 부모의 불안이며 관심이 헛된 길로 가도록 인도할 때가 잦지 않던가. 학원을 가지 않고 동생들과 부대끼며 자라는 지안의 삶이 다른 아이들보다 못한 환경이라고 쉽게 말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아동권리영화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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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경제력이 중학생의 삶에 미치는 영향

분명한 것은 이미 갈망이 피어났고, 그것이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친구들과 자기 상황을 비교하며 동생들에게 짜증을 부리기 시작한 지안의 모습은 그 시절의 비좁음과 민감함을 떠올리면 충분히 사실적인 모습이다. 부모는 아이의 시선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제 삶을 추스르기 바쁘다. 이런 상황에서 막냇동생에게만 과외를 시키는 선택이 지안의 마음에 불을 지른다.

<내 방>은 아동의 혼자 있고 싶은 욕망을, 그러한 권리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인식을 한 번쯤 돌아보도록 한다. 모든 욕망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욕망이 좌절되는 과정에서도 꺾이고 타협하며 배우는 것이 욕망이 이뤄지는 것만큼이나 가치 있다는 걸 안다. 그러나 잘 꺾이고 잘 타협할 기회가 아동들에게 주어지고 있는지는 돌아볼 일이다.

주순민 세이브더칠드런 선임 매니저는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해 내 집 마련을 포기한 어른 세대와 취업, 결혼, 아이를 포기하는 청년 세대, 그리고 그들을 보며 자라난 아동들은 앞으로 또 무엇을 포기해야 할까"라며 "K장녀 지안이 끝내 내 방을 포기하고 동생과 함께 잠드는 마지막 장면이 마치 그 방에 갇히는 모습처럼 보이는 건 과한 해석은 아닐 것"이라고 감상을 전했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동권리영화제 CRFF 내방 한세하 김성호의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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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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