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tick), 틱, 틱. '존'의 귓가에 시곗바늘 소리가 맴돈다. 뮤지컬 작곡가 존은 30번째 생일을 앞두고 있지만, 그 순간이 오지 않길 바란다. 30살 어른이 되기 일보 직전인데 자신은 아직 이뤄낸 성과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론 '틱', 때론 '붐' 하는 소리는 시간이 흐름을 알려줌과 동시에 존의 불안을 증폭시킨다.
뮤지컬 <틱틱붐>은 어른이 되길 두려워하는 존의 불안에서부터 시작된다. 남자 주인공 존은 다름 아닌 이 뮤지컬의 이야기를 쓰고 음악을 만든 조나단 라슨(Jonathan Larson)이다. 서른을 앞두고 온갖 두려움을 마주한 조나단 라슨의 실제 이야기가 자전적 뮤지컬로 탄생한 것이다(라슨은 뮤지컬 <렌트>의 작곡가로 익히 알려져 있다).
<틱틱붐>은 앤드류 가필드가 주연을 맡아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됐을 만큼 흥행했는데, 국내에서도 어느덧 일곱 번째 공연이 진행 중이다. 기존에는 존과 수잔(존의 연인), 마이클(존의 친구)이 펼치는 3인극이었으나, 이번 시즌에는 5명의 앙상블을 추가한 8인극으로 변화를 꾀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지난 16일 개막한 뮤지컬 <틱틱붐>이 내년 2월 2일까지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존 역에 배두훈·장지후·이해준, 수잔 역에 김수하·방민아, 마이클 역에 김대웅·양희준이 함께 한다.
▲뮤지컬 <틱틱붐> 공연사진
신시컴퍼니
내면의 성찰
전통적으로 성인이라는 지위를 누리기 위해 달성해야 하는 사회적 지표들이 있다.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는 것 등이다. <틱틱붐>의 주인공 존은 이런 조건들을 갖추지 못했다. 그래서 어른이 되길 거부한다.
"말해주렴 피터팬, 네버랜드가 어딘지" (넘버 '30/90')
이에 반해 친구인 마이클은 어른으로서의 조건을 갖춘 인물이다. 존의 입을 빌려 소개되는 마이클은 마케팅 회사의 임원이고, 고급 외제 승용차를 탄다. 번듯한 직업, 안정된 재정 상태를 갖춘 마이클의 앞날은 밝아 보인다. 그런 마이클을 바라보며 존은 더 자책한다.
사회가 으레 정해놓은, 성인기로 이행하기 위한 조건을 달성하지 못한 존에게는 30번째 생일만큼이나 골칫거리인 이벤트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자신이 만든 뮤지컬 < Superbia >를 공개하는 워크숍이다. 에이전트가 신경이나 쓰고 있을지, 업계 관계자들이 관심을 둘지, 어떤 평가를 내릴지, 존의 신경은 곤두서있다.
생일과 워크숍에 대한 두려움은 하나의 원인에서 비롯된다. 바로 '타인의 기준'이다. 존은 그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거나, 또는 충족시키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어느덧 워크숍 당일이 된다. 정신없는 와중에 존의 눈과 귀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데, 한 음악만큼은 또렷하게 직시한다. 자신이 작곡하고 극 중 여배우 카레사가 부르는 'Come to Your Senses'라는 곡이다. '정신 차려'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이 음악을 느끼는 존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고, 뭔가 깨달음을 얻은 듯하다.
그렇게 존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이후 수잔, 마이클 등 주변 인물들을 마주하며 존은 자신의 내면을 더 깊이 성찰하기 시작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틀에 맞추기 위해 발버둥 치던 존은 두려움을 조금씩 잠재워간다. 뮤지컬은 2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이 과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며 존의 성장을 이야기한다.
▲뮤지컬 <틱틱붐> 공연사진
신시컴퍼니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
존이 자신의 내면에만 충실했는가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존은 내면을 성찰함과 동시에 자신을 둘러싼 외부의 기준을 외면하지 않았다. 워크숍을 마친 존을 향해 뮤지컬 업계 관계자들은 나쁘지 않은 평가를 전한다. 하지만 당장 이 작품을 올리는 것은 섣부르며 다음 작품을 준비하자는 식이다.
희망과 절망이 오가는 상황에서 존은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이하게 되고, 마침 전화기에 남겨진 음성 메시지를 확인한다. 그 음성 메시지 중에는 존이 동경하던 작곡가 스티븐 손드하임의 메시지도 있었다(손드하임은 <스위니 토드>·<컴퍼니> 등 걸출한 뮤지컬을 남긴 작곡가로, 라슨이 매우 존경했다). 손드하임은 존의 작품을 칭찬하고, 우상으로부터 인정받은 존은 감격한다.
비록 당장 자신의 작품을 공연할 순 없어도 '내가 잘 가고 있구나' 하고 안심하기엔 충분했을 것이다. 외부의 기준이 자신을 그토록 괴롭혔지만, 그 기준에 맞춰 인정을 받은 건 존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원동력이 됐을 것이다.
결국 존은 서른 번째 생일을 기분 좋게 맞이한다. 내면에 대한 성찰, 그리고 자신이 성찰한 바에 맞춰 외부의 기준을 받아들인 것이 존을 성장하게 만들었다. 결국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 아닐까, 존을 보며 생각해본다.
▲뮤지컬 <틱틱붐> 공연사진신시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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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기준 어떻게 맞출까, 서른 앞둔 작곡가가 찾은 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