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조용필이 23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에서 열린 ‘20집 발매 기념 조용필&위대한탄생 콘서트-서울’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가수 조용필이 23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에서 열린 ‘20집 발매 기념 조용필&위대한탄생 콘서트-서울’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YPC

"사진 속 용필오빠면 어때. 진짜(오빠)랑 찍는 건 너무 떨리잖아."

'영원한 오빠' 조용필의 팬들은 여전히 소녀였다. 중년 여성들은 공연장 앞에 마련된 조용필의 등신대 앞에 손을 올리고 사진을 찍는 것마저 떨려했다. 공연에 동행한 엄마 역시 그 앞에서 '돌아와요 부산항에(1972)'를 흥얼거렸다. 손에는 또 다른 팬클럽이 준 '땡큐, 조용필' 플래카드를 들었다.

등신대 앞으로 긴 줄이 늘어섰다. 처음 본 중년의 여성들은 줄을 서 있는 동안에도 "우리 용필이 오빠 여전히 멋있지예", "내(가) 이 공연을 보려고 비행기 타고 왔습니다" 하며 친밀한 듯 이야기를 나누었다.

1980년 발매된 조용필 1집 속 '창밖의 여자'를 듣고 그때부터 '용필 형'의 팬이 됐다는 윤석수 전 위대한탄생 운영책임자는 조용필을 '나의 빛'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용필형 앞에서 우리는 모두 10대, 20대가 청춘이 된다"면서 "매년 (조용필의) 공연을 찾지만, 공연 전 매년 가슴이 뛴다"며 등신대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팬들을 안내했다.

영원한 오빠

 가수 조용필이 23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에서 열린 ‘20집 발매 기념 조용필&위대한탄생 콘서트-서울’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가수 조용필이 23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에서 열린 ‘20집 발매 기념 조용필&위대한탄생 콘서트-서울’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YPC

23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옛 체조경기장)에서 '조용필&위대한탄생 콘서트-서울' 첫 공연이 시작됐다. 최희선(기타), 이태윤(베이스), 최태완(키보드), 김선중(드럼), 이종욱(키보드)으로 구성된 밴드 '위대한탄생'이 곁에서 예의 그 완벽한 합을 맞췄다.

"용필이 오빠", "사랑해 형"의 환호 속에서 '가왕' 조용필이 등장했다. 선글라스에 화려한 꽃무늬의 검정 셔츠, 진한 자주색 재킷에 흰 운동화를 신은 그가 첫 곡으로 '아시아의 불꽃(1985)'을 불렀다. 지난달, 스무 번째이자 본인의 마지막 정규 앨범 '20'을 발매한 조용필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무대를 준비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도, 저기도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 조용필은 연이어 3곡을 불렀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된 고성에 어깨를 으쓱하는 제스처에 '꺄아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조용필은 총 5곡을 마친 뒤에야 "안녕하시죠, 저도 안녕하다. 보통 (서울 공연은) 12월에 하는데 이번에는 11월부터 했다. 나이가 들어가는지 추운 게 싫더라"며 운을 뗐다. 중년의 관객들은 "오빠, 아니에요", "형 멋있어요"라며 조용필의 '나이 듦'을 거부했다.

올해로 일흔넷,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사람들이 아직도 저를 오빠라고 합니다. 이 나이에 용필이 형이라고 불리고요. (이런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여러분과 같이 노래하기 위해 오늘은 빠른 노래들이 좀 있다. 여러분이 같이 불러주면 큰 힘이 됩니다. 운동하는 셈 치고, 같이 즐겨요."

이어 '단발머리(1979)'가 흘러나왔다. 관객들은 엄지를 치켜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비에 젖은 풀잎처럼 단발머리 곱게 빗은 그 소녀'가 된 것처럼 합창을 시작했다. 이어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1990)'가 나오자 자리에 앉아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난 어디 서 있었는지, 하늘 높이 날아서 별을 안고 싶어, 소중한 건 모두 잊고 산 건 아니었나'라는 가사를 각자의 인생을 담아 따라 불렀다.

엄마는 공연 전부터 처음 본 옆자리 중년 여성 관객과 서로 조용필을 향한 애정을 드러내더니 어느새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엄마뿐이 아니었다. 뒷자리, 앞자리, 옆자리의 사람들은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플래카드를 나누어 주고 어깨동무를 하며 서로의 '옛 친구'인 듯 공연을 즐겼다.

무대의 카메라는 종종 이런 관객의 모습을 초대형 화면에 띄웠다. 무대 위 단상에서 내내 노래를 이어간 조용필은 종종 오른쪽과 왼쪽을 바라보며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공연 연출에도 팬을 향한 애정이 담겨 있어 보였다. 보통 공연의 중반부를 지나며 폭죽, 꽃가루 등을 날리는 연출을 하지만, 그는 첫 곡이 끝나자마자 이를 사용했다. 매 곡을 마칠 때마다 관객을 향해 여러 종류의 축포를 쏘아 올렸다.

또 기타 사운드에 맞춰 조명을 연출했고, 대형 스피커 4대는 3층까지 조용필의 목소리가 잘 전달되게 도왔다. 조용필의 가운데 자음 ㅇ을 본 뜬 원형 구조물이 가운데 있었고 대형 스크린에는 각 곡에 맞춘 영상이 담겨 나왔다. '킬리만자로의 표범(1985)'에서는 커다란 파도 후 흑백 화면에 조용필이 담기고, '모나리자'에선 원형 구조물이 블랙홀 같은 눈동자로 변하는 식이었다.

가왕의 무대

 ‘20집 발매 기념 조용필&위대한탄생 콘서트-서울’ 공연에서 조용필.
‘20집 발매 기념 조용필&위대한탄생 콘서트-서울’ 공연에서 조용필. YPC

열 번째 곡을 부르기에 앞서 조용필은 "내 노래 중에 남자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몇 개 있다. 그런데 또 여자 입장에서 들으면 여자를 위한 노래 같다. 사랑이란 게 각자의 입장에서 서로 똑같은 것 아니겠냐"며 "아는 사람들은 같이 불러 달라. 노래방이라 생각하라"고 권했다. '남겨진 자의 고독(1994)'와 '기다리는 아픔(1998)'을 부르고서는 "1979년에 드라마에 쓰일 주제곡을 만들어달라는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만든 곡"이라며 '창밖의 여자(1980)'가 나온 배경을 설명했다.

'촛불(1980)'에 이어 '돌아와요 부산항에(1972)'가 울려 퍼지자 관객들이 다시 일어섰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방송을 한 번도 타지 않고 순수하게 음악다방과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히트한 노래로 유명하다. 이후 방송미디어를 통하지 않아도 히트곡이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무대 앞에서, 또 제자리에서 파랗고 붉고 흰 야광봉을 흔들며 '떼창'과 '댄스'를 선보이는 관객들을 향해 그는 "오늘 노래 많이 하셨냐"면서 "내 나이 때 누가 (이만큼) 노래할 수 있겠냐"라고 했다. 실제 그는 130여 분의 공연에서 다른 게스트 없이 꼿꼿하게 자리를 지켰다.

공연 후반부 20집 타이틀곡, '그래도 돼(2024)'를 시작으로 '킬리만자로의 표범(1985)', '모나리자(1988)', '여행을 떠나요(1985)' 등 9곡의 '히트곡 메들리'를 부르는 동안 조용필은 단 한 차례도 쉬지 않았다.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물도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때로는 마이크를 들고 때로는 빨간색 기타를 치며 '가왕'의 면모를 드러냈다.

앙코르곡을 부르기 직전 공연 시작 후 조용필은 처음으로 5분여 무대 밑으로 내려갔다. 자리를 떠나지 않고 '조용필'을 외치는 관객들의 곁에 다시 선 그는 '추억속의 재회(1990)', '꿈(1991)'을 불렀다. 29번째, 이날의 마지막 곡은 2013년에 발매된 '바운스(Bounce)'였다. 'You make me Bounce Bounce'에서 관객들은 가슴에 손을 올렸다 떼며, 바운스를 표현했다. 거대한 공연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의 목소리가 바운스의 두근거림처럼 울려 퍼졌다.

마지막 곡을 마친 조용필은 환하게 웃으며 관객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연신 "감사합니다"를 말하며 관객들을 눈에 담으려는 듯 공연장의 이쪽저쪽을 바라보다 무대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공연이 끝났지만 관객들은 쉽게 자리를 떠나지 않고 무대를 배경으로 연신 사진을 찍었다. 엄마도 처음 본 옆자리 친구와 "오늘 함께 즐겨 행복했다"며 사진을 남겼다. 130여 분 소녀팬 또는 소년팬이 됐던 이들은 "역시 우리 용필이 오빠는 체력도 대단하다. 보통 사람이 아니다"라며 발걸음을 돌렸다.

가왕의 공연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오는 30일과 12월 1일 두 차례 서울 공연을 마친 뒤 12월 21일(대구), 28일(부산) 공연을 이어 나간다.
조용필 가왕 위대한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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