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질문이 세상을 구한다.'

올해로 10회째를 맞은 아동권리영화제 슬로건이다. 다르덴 형제의 <자전거 탄 소년>을 다시금 한국에 소개한 걸 시작으로 벌써 10년을 이어왔다. 아동권리영화제는 한국사회에서 외면해 온 아동권리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왔다. 아동의 놀 권리와 분쟁 속 아동보호, 장애아동의 권리, 디지털 환경에서 무시되기 십상인 아동의 잊혀질 권리, 기후위기 속 아동의 역할 등 무심코 넘어가기 쉬운 아동의 권리를 질문을 통해 관객에게 일깨워 왔다.

한국사회는 느리지만 선명히 아동권리가 고양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민법 제915조, '친권자는 그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는 조항이 삭제된 건 빼놓을 수 없는 변화다. 훈육을 넘어 아동폭력을 가한 사례에서조차 이 조항이 감경사유로 작용한 현실을 뒤바꾼 중대한 진전이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아동권리의 실제적이며 중대한 변화를 끌어내는 것이 아동권리영화제의 변치 않는 지향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헨젤: 두 개의 교복치마 스틸컷
헨젤: 두 개의 교복치마스틸컷CRFF

올 한 해 아동권리 담긴 작품, 234편

한 동안 아동을 주인공으로 한 해외 장편영화를 초청 상영한 아동권리영화제다. 2020년부터는 중대한 변화가 있었는데, 처음으로 한국 단편을 대상으로 경쟁섹션을 진행한 것이다. 첫 해 48편의 단편이 출품됐고, 매년 꾸준히 출품작이 늘어 10회째를 맞는 올해엔 234편이 들어왔다. 경쟁부문이 마련된 이래 가장 많은 수치다.

한 해 1500여 건이 제작되는 것으로 알려진 단편영화 가운데 아동서사가 주요하게 등장하는 작품은 약 10% 가량으로 추정된다. 한국에서 제작된 아동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 대부분이 아동권리영화제에 출품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동심사위원이 직접 심사과정에 참여하는 등 그 진행에서부터 차별화한 영화제는 엄격한 심사를 거쳐 모두 6편의 작품을 본선 무대에 올렸다. 다루고 있는 주제만 해도 기후위기부터 전쟁, 아동방임, 경제적 불평등, 또래집단 내 아동의 성장이야기까지 다양하다.

<헨젤: 두 개의 교복치마>는 올해 유수 영화제에서 특별히 주목받은 한국 주요 단편영화 가운데 한 편이다. 2021년 <성적표의 김민영>으로 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발견' 섹션 장편경쟁 대상을 받은 임지선 감독의 신작이다. 청년 여성의 성장을 다루었던 이 작품 이후 3년 만에 발표한 단편은 역시 여성, 조금은 더 어려진 청소년의 성장을 그린다. 역시 자전적 경험이 상당 부분 반영된 이야기로, 극 중 인물들이 느끼는 섬세한 감정의 묘사가 감독의 남다른 감수성을 확인케 한다(관련기사: 나 홀로 뒤처진 것 같은 청춘에게, 이 영화가 건네는 위로 https://omn.kr/2b2xd ).

헨젤: 두 개의 교복치마 스틸컷
헨젤: 두 개의 교복치마스틸컷CRFF

극 내향 여중생의 말 못 할 고민

여자중학교에 다니는 한슬(홍정민 분)은 음악수업이 영 부담스럽다. 음악교사가 무얼 잘못하는 아이들에게 벌칙으로 노래를 시키는 탓이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남들 앞에 나서길 꺼리는 한슬에게 일어나 노래를 하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예고된 불행은 이내 닥쳐온다. 한슬이 준비물인 리코더를 집에다 두고 온 것이다. 어렵게 옆 반 친구를 찾아 부탁을 해보지만 깔끔 떠는 여중생은 침이 섞이는 리코더를 빌려줄 수가 없단다. 꼼짝없이 노래를 불러야 하는 상황, 한슬에겐 지옥 같은 수업이 펼쳐질 예정이다.

<헨젤: 두 개의 교복치마>는 남들과 다른 가정에서 자라난 자신감 없는 10대 소녀의 이야기다. 무심한 외할머니와 둘이서 함께 사는 한슬이다. 엄마는 멀리 다른 나라에 돈을 벌러 나가있고, 아빠의 존재는 영화 내내 언급이 없다. 외할머니는 한슬에게 이렇다 할 관심을 보이지 않는 듯이 보이고, 한슬 또한 다른 누구에게 애정을 갈구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 또래 답지 않은 외로운 일상이다.

주변에 이렇다 할 관계가 없는 건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내성적인 성격도 한몫하거니와 그 흔한 단짝 친구조차 한 명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왕따를 당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그저 관심에서 밀려나 괴상한 아이 취급을 받는다는 편이 적절할 테다. 심지어 한슬에겐 남에게 알리기 낯부끄러운 병까지 있는데, 다름 아닌 요실금이다. 긴장하면 속옷에 찔끔 오줌을 흘리는 게 여간 민망한 일이 아니다.

헨젤: 두 개의 교복치마 스틸컷
헨젤: 두 개의 교복치마스틸컷CRFF

청소년 요실금이 가져온 영화적 효과

예선 심사를 맡은 공선정 감독은 <헨젤: 두 개의 교복치마>를 본선에 올린 이유로 다음과 같은 심사평을 붙였다.

'요실금이 있는 여성 청소년이라니.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나 다양한 모습을 가진 청소년들이 있다. 스토리, 캐릭터, 완성도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정교하게 빚어낸 화과자 같은 영화다.'

극 중 한슬과 얼마 차이가 나지 않는 아동심사위원들도 영화에 호감을 표했다. 아동심사위원 최지안은 "다양한 억압과 불안함을 직접 대면하며 극복해 나가는 청소년의 여정을 유쾌하게 전달한다"고 말했고, 아동심사위원 캔티 대니엘라는 "주인공이 스스로와 반 친구들에게 솔직해지기 위해 학창 시절의 일상적인 문제에 맞서는 여정은 너무나 사소하지만 소중하다"고 평가했다. 섬세한 시선으로 사춘기 여성 청소년의 감성을 담아내지 못했다면 얻을 수 없었을 평이다.

영화제를 담당한 주순민 세이브더칠드런 선임 매니저는 이 영화에 대해 "어떤 영화는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만으로 탁월함을 갖춘다"며 "이경미 감독의 <미쓰 홍당무> 이후 국내 영화계에서 이렇게 독특하고 인상 깊은 캐릭터가 등장한 적이 있었던가"하고 되물었다. 그는 이어 "소재에 잡아먹히지 않고, 주인공 한슬의 상황을 하나하나 보여줌으로써 설득력 있게 극을 전개해 나간다"며 "학업, 가정, 또래집단의 스트레스가 겹겹의 층위를 이루며 유독 긴장하고 예민한 한슬이란 캐릭터를 설명해 낸다"고 찬사를 보냈다.

아동권리영화제 포스터
아동권리영화제포스터CRFF

강요하지 않고 질문한다, CRFF의 자세

앞서 유수의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바 있는 <헨젤: 두 개의 교복치마>를 아동권리영화제가 외면하지 않고 다시금 단편영화 경쟁 섹션에 포함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임지선 감독의 남다른 감수성을 청소년의 시야에서만 보이는 풍경을 섬세하게 포착해 무신경한 관객마저도 공감을 표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로 재탄생시킨다. 그로부터 이전엔 무심코 지나갔을 작고 사소한 감상을 보듬고 싶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강요하거나 꼿꼿하게 가르치는 대신, 질문을 던지고 일깨우는 자세. <헨젤: 두 개의 교복치마>가 시종 견지하는 이와 같은 태도야말로 세이브더칠드런과 아동권리영화제가 지향하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제'와 꼭 맞아떨어지는 듯하다.

질문이 정말로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곳곳이 무너져 내려 신음하는 세상 가운데 질문이 가진 힘이 과연 그만큼이나 대단한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 같은 노력으로 변화와 관심의 필요를 일깨우는 작품을 보고 있자면, 어느 커다란 일도 작은 마음가짐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케 된다. 더 좋은 질문을 고심하는 어느 작은 영화제의 내일을 응원하는 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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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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