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에서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감독 중에는 세계관이 다르더라도 같은 주제를 가진 영화들을 시리즈로 연출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로 이어지는 '복수 3부작'을 만들었던 박찬욱 감독이 대표적이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은 서로 이야기가 이어지진 않지만 '복수'라는 같은 주제를 공유하고 있다.

<라디오 스타>와 <즐거운 인생>, <님은 먼 곳에>로 이어지는 이준익 감독의 '음악 3부작'과 <말죽거리 잔혹사>와 <비열한 거리>, < 강남1970 >으로 이어지는 유하 감독의 '거리 3부작(또는 폭력 3부작)'도 대표적인 시리즈 영화다. 물론 상업영화의 경우엔 적게는 수억, 많게는 수십~수백 억의 투자를 받아야 하기에 감독이 원하는 시리즈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꾸준한 흥행 성적이 필수다.

드라마에서도 종종 작가와 연출가 또는 제작사에 의해 시리즈물이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한국에서 가장 먼저 같은 주제의 시리즈 드라마에 도전한 인물은 바로 윤석호 감독이다. 그는 사계절을 배경으로 4편의 멜로 드라마를 만들었다. 그가 만든 네 편의 '계절 시리즈' 중 가장 큰 반향을 일으켰던 작품은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도 신드롬에 가까운 사랑을 받은 배용준-최지우 주연의 <겨울연가>였다.

<첫사랑> 이후 6년 만에 재회한 배용준-최지우

 <겨울연가> 방송 후 배용준이 착용했던 목도리,안경,코트 등 '강준상 패션'이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
<겨울연가> 방송 후 배용준이 착용했던 목도리,안경,코트 등 '강준상 패션'이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KBS 화면캡처

1990년대 <내일은 사랑>, <느낌>, <사랑의 인사>, <컬러>, <프로포즈>, <순수> 등을 연출한 윤 감독은 세련되고 아름다운 영상을 잘 만드는 연출자로 유명했다. 그런 그가 2000년대에 처음 선보인 작품이 '계절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가을동화>였다. <가을동화>는 송혜교와 송승헌, 원빈 등 신예에 가까운 배우들이 주연을 맡았음에도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가을동화>의 성공으로 탄력을 받은 윤 감독은 곧바로 계절 시리즈 제작에 박차를 가했고 2002년 1월 두 번째 계절시리즈 <겨울연가>를 선보였다. 1세대 한류스타 류시원은 '욘사마' 배역을 먼저 제안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류시원은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상대역인 최지우와 전 작품에서 여러 차례 호흡을 맞췄었기에 시청자의 몰입감을 위해 배역을 거절했다"고 했다.

이외에도 여러 배우들이 출연을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겨울연가>에게 전화위복이 됐다. 지난 1996년 한국드라마 역대 최고 시청률(65.8%)을 기록했던 전설의 드라마 <첫사랑>에 함께 출연했던 배용준과 최지우를 캐스팅했기 때문이다(닐슨 미디어 리서치 기준). 배용준은 당시 <젊은이의 양지>와 <첫사랑>, <맨발의 청춘>,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호텔리어>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톱스타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수종이 메인 주인공이었던 <첫사랑> 이후 확실한 '한 방'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도 사실이었다. 이런 가운데 배용준은 2002년 <겨울연가>를 통해 배우 인생의 정점을 찍었다. <겨울연가>는 2004년 일본 지상파TV를 통해 방영되면서 일본 전역에 '욘사마 열풍'을 몰고 왔다.

실질적인 연기 데뷔작이었던 <첫사랑>을 통해 단숨에 스타가 된 최지우 역시 2000년 <진실>과 2001년 <아름다운 날들>을 히트시키며 당시 원톱 여성 스타였던 김희선의 '대항마'로 떠올랐다. 2001년 5월 <아름다운 날들>을 끝낸 최지우는 곧바로 차기작으로 <겨울연가>를 선택했다. 그리고 수많은 히트작을 남겼던 최지우의 연기 커리어에서 <겨울연가>는 범접할 수 없는 대표작이 됐다.

촬영 장소까지 유명해진 '겨울연가 열풍'

 2002년 국내에서 방송된 <겨울연가>는 2년 후 일본 지상파에서 방송되면서 '한류드라마'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2002년 국내에서 방송된 <겨울연가>는 2년 후 일본 지상파에서 방송되면서 '한류드라마'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겨울연가> 홈페이지

사실 <겨울연가>의 인기는 방영 전부터 어느 정도 예고돼 있었다. <가을동화>를 흥행시킨 윤석호 감독의 검증된 연출과 <첫사랑> 이후 6년 만에 재회한 배용준-최지우의 만남으로 시청자들의 많은 기대를 모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겨울연가>는 MBC의 <상도>, SBS의 <여인천하> 같은 쉽지 않은 경쟁작을 만났음에도 최고 시청률 28.8%를 기록하면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사실 <겨울연가>의 전개는 2000년대 초반 정통 멜로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간다. 만약 2020년대였다면 주인공의 교통사고와 기억상실증, 출생의 비밀, 난치병이 차례로 등장하는 <겨울연가>의 이야기는 '막장'이라고 비판받았을 것이다. 물론 준상(배용준 분)과 유진(최지우 분)이 '의붓남매'가 아니라 준상과 상혁(고 박용하 분)이 '이복형제'였다는 반전이 있지만 이 역시 현재 기준에선 꽤 진부하다고 볼 수 있다.

<겨울연가>는 병으로 시력을 잃은 준상이 상혁과 결혼한 유진과 두 사람의 추억이 있는 장소에서 재회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드라마는 준상과 유진의 아름다운 키스로 끝을 맺지만 사실 현실이었다면 두 사람의 재회는 전혀 아름답지 못했을 것이다. 유진이 남편과 딸을 두고 첫사랑 준상과의 사랑을 이어가기도 쉽지 않고 앞이 보이지 않는 준상을 홀로 두고 떠나도 계속 죄책감이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배용준과 최지우의 최루 멜로 드라마로 사랑받은 <겨울연가>는 2년 후 일본에서 엄청난 사랑을 받으며 재조명됐다. 2003년 일본 위성 채널에서 두 차례에 걸쳐 방영된 <겨울연가>는 시청자들의 요구에 2004년 지상파에서 3번째 방송을 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일본 팬들에게 배용준이 '욘사마', 최지우가 '지우히메'로 불린 것도, <겨울연가> 촬영지가 관광 명소가 된 것도 그즈음부터다.

윤석호 감독은 이후 2003년 송승헌-손예진 주연의 <여름향기>, 2006년 서도영-한효주 주연의 <봄의 왈츠>를 연출하면서 '계절 시리즈'를 완성했다. 하지만 그러나 두 편과 달리 <여름향기>는 <옥탑방 고양이>, <다모>와 <봄의 왈츠>는 <주몽>과 경쟁하면서 시청률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윤 감독은 현재 내년 개봉 예정인 <겨울연가> 극장판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주인공의 사랑 가로막은 고구마 캐릭터

 고 박용하가 연기했던 상혁은 10년 넘게 유진을 짝사랑하는 순애보 캐릭터이자 답답한 고구마 캐릭터였다.
고 박용하가 연기했던 상혁은 10년 넘게 유진을 짝사랑하는 순애보 캐릭터이자 답답한 고구마 캐릭터였다.KBS 화면캡처

지난 2010년 32세의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고 박용하는 <겨울연가>에서 고교 시절부터 10년 넘게 유진을 짝사랑한 상혁을 연기했다. 박용하 역시 <겨울연가>의 일본 방영 후 일본 팬들로부터 '욘하짱'으로 불리며 한류 스타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 상혁은 준상과 유진의 사랑을 가까이서 지켜봤으면서도 끝까지 유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고구마 캐릭터'에 가까웠다.

상혁이 유진을 좋아하는 서브남주 캐릭터였다면 박솔미가 맡은 채린은 고교 시절부터 준상을 짝사랑한 서브여주 캐릭터다. 친구이자 정적인 유진에게 질투를 느껴 두 사람을 떼어 놓기 위해 거짓말을 하기도 했지만 천성이 나쁜 '악녀'는 아니다. <겨울연가> 출연 당시 신인에 가까웠던 박솔미는 <겨울연가> 이후 <올인>, <황금사과>, <거상 김만덕> 등에 출연했고 2013년 동료 배우 한재석과 결혼했다.

현재도 여러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아버지와 재벌회장, 원로 신부 등으로 출연하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정동환 배우는 <겨울연가>에서 반전의 열쇠를 쥐고 있는 대학교수 김진우를 연기했다. 젊은 시절 여자관계가 매우 복잡했던 김진우는 준상의 어머니 강미희(송옥숙 분)와 상혁의 어머니(이효춘 분)를 비슷한 시기에 임신시키며 복잡한 출생의 비밀을 만들어낸 <겨울연가>의 진정한 '빌런'이다.
드라마보는아재 겨울연가 윤석호감독 배용준 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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