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히든페이스> 스틸컷
영화 <히든페이스> 스틸컷(주)NEW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저는 슈베르트를 좋아해요. 제일 슬퍼서요. 음악이."

시작과 함께 첼리스트 수연(조여정 분)이 모습을 감춘다. 결혼을 약속한 성진(송승헌 분)은 그가 남긴 영상 속 마지막 인사를 마주한 상태로 슬픔에 빠진다. 자신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의 중요한 첼리스트이기도 한 그가 단순한 약혼 대상을 넘어서는 일종의 뮤즈에 가까워서다. 단장이기도 한 수연의 엄마(박지영 분) 역시 딸의 무책임한 행동을 책망하며 오케스트라의 공석을 다른 인물로 채우고자 한다. 수연의 후배인 미주(박지현 분)다. 지휘자와 단원으로 만나게 된 성진과 미주는 점점 가까워지고, 서로에 대한 뜨거운 감정을 확인하게 된다. 두 사람이 성진의 집에서 사랑을 나누던 날, 사라진 줄 알았던 수연은 집 안의 밀실에 갇힌 무력한 상태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오열한다.

영화 <히든페이스>는 사라진 줄 알았던 여성을 중심으로 얽힌 세 사람의 욕망을 집요하게 그려내는 작품이다. 지난 2011년에 연출된 바 있는 안드레스 바이즈 감독의 동명 작품을 리메이크했다. 원작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밀실'로 일컬어지는 공간을 해석하는 과정과 방식이다. 김대우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밀실이 갖는 관계적 의미와 욕망의 크기를 더 중요하게 다루며 세 인물의 구도를 완성해 내고 있다. 원작에서의 밀실이 단순히 관음을 위한 물리적 의미만을 갖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영화는 이를 위해 각 인물의 내면에 더욱 치밀한 서사를 부여하고 차례로 쌓아나간다.

02.
이 작품은 초반부터 세 인물이 가진 내면의 연약한 지점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성진의 진심을 확인하기 위해 스스로 밀실로 향하는 수연의 모습과 성진과 미주가 만나 처음 술자리를 갖는 장면에서부터 인물 각각에 서사를 부여하려는 감독의 시도는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처음 드러나는 것은 성진과 미주의 내면이다. 분식집 아들로 태어나 자수성가의 형태로 지금의 자리까지 꿰찬 성진이 가진 성공에 대한 욕망과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고아로 홀로 자라온 미주의 애정에 대한 갈구가 여기에 해당된다. 두 사람 모두 외형적으로는 각자가 가진 공허한 지점을 지금 채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스스로 채우지는 못하고 타인에게 의존하는 모습이다. 그 대상은 수연이다.

이를 욕망으로 끌어내기 위해서 영화는 성진과 수연을 결혼을 약속한 연인으로, 미주와 수연을 과거의 사랑으로 묶는다. 관계가 아닌 '묶는다'라는 표현을 쓴 것은 각각의 인물 세트가 가진 균형이 평행하지 않아서다. 앞서 설명한 대로 성진과 미주의 결여된 지점이 수연에 의해 충족되도록 설계된다. 수연의 어머니가 단장으로 있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고, 주종 관계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의 동등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사랑받는 감정 하나로 충분한 연인이 되는 일. 물론 이들의 욕망이 외부로 드러나는 것은 조금 더 이후의 일이다. 수연이 밀실을 향해 스스로 걸어 들어가고 난 다음. 이 영화의 진짜 욕망은 충족되지 못한 심리를 채우는 자리가 아닌, 충족된 것처럼 여겨지던 내면에 의심과 균열이 발생하는 자리에서 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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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진짜 삶을 사는 거지. 이제부터."

수연 역시 내면이 온전히 충족되는 인물은 아니다. 항상 최고이기를 원하고 자신은 좋아하지 않아도 언제나 사랑받아야 한다는 욕망이 존재한다. 영화에서 직접 설명되는 부분은 아니지만, 성진을 처음 만나 연인이 되기로 한 것도 미주와 비밀스러운 감정을 공유하는 것도 모두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성진과 미주의 욕망이 현실의 결여로부터 시작된다면, 수연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다른 두 인물이 가진 내면의 속성과는 분명 다르다.

문제는 수연의 의지와 무관하게 그가 성진과의 새로운 출발, 영화상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진짜 삶'을 살기로 시작한 순간부터 물밑에서 서로 강하게 물려 있던 세 사람의 내면적 관계성이 해체된다는 사실이다. (그가 벽장 안으로 들어가는 일보다 선행한다) 평생을 함께할 것이라고 믿고 있던 미주가, 수연과 함께 지낼 곳이라 생각하며 홀로 리모델링을 도맡았던 공간이 이제 성진과의 보금자리가 될 것으로 선언되는 순간부터다.

이제 각각의 인물이 가진 욕망은 다음으로 정리할 수 있다. 성진의 진심을 확인하는 일. (수연) 수연이 가진 배경(여기에서 수연의 존재는 중요하지 않다)을 얻고자 하는 마음. (성진) 그리고 수연의 사랑을 가질 수 없다면 망가뜨리겠다는 계획. (미주) 서스펜스를 위해 특정 장면의 공개를 지연하는 과정에서 비선형적 순서로 이야기가 구성되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이 영화에서 가장 선행하는 욕망은 미주의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다. 이처럼 세 사람의 욕망이 뒤섞인 무대 위에서 수연이 벽장으로 향하고, 성진과 미주가 서로의 몸을 탐하는 그림은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다시 돌이켜 보면, 미주와 수연을 과거 같은 스승 밑에서 사사를 한 사이이자 사랑 이상의 감정을 나누고 있는 관계로 설정한 부분은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처럼 느껴진다. 이 설정으로 인해 영화 속 두 사람의 믿음이 깨지고 일종의 배신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이 매끄럽게 설명된다. 밀실의 존재와 의미에 있어서도 개연성이 충분히 확보된다. 두 사람의 감정적 연결 고리가 존재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친한 관계로 미주를 대신해 수연이 리모델링 공사만 도와주는 식의 설정이었다면 상당히 헐거운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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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관계가 복잡하게 교환되는 이야기 위에서 느낄 수 있는 흔한 안타까움 중 하나는 처음에 제시되던 주요한 요소들 가운데 일부가 결말에 이르지 못하고 이탈한다는 점이다. 이야기를 빌드업하는 과정에만 몰두하다 보니 시작점과 끝점의 연결에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이 생기는 것인데, 영화 <히든페이스>는 인물의 모든 행위에 욕망의 속성을 부여하며 이 지점의 문제를 잘 매듭짓고 있다. 가령, 밀실 속 수연의 존재를 깨닫고 난 후에도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성진이 그 태도를 다시 바꾸게 되는 것 또한 단장으로 인해 숨죽이던 욕망이 자극되면서부터라는 식의 전개다. 딸이 없는 성진을 굳이 곁에 둘 이유가 없는 단장에게 자신이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라도 그에게는 수연의 존재가 필요해진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결국 세 사람의 욕망은 충족된다. 실력 있는 지휘자의 재능과 표면적으로나마 주어지는 그의 사랑을 곁에 둘 수 있게 된 수연, 그런 그녀가 가진 배경과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자리를 여전히 붙잡을 수 있게 된 성진.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수연의 사랑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된 미주다. 이처럼 모든 인물이 개인이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고 해서 그 장면이 평화롭거나 아름다울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대가로 성진은 이제 허수아비와도 같은 자신의 처지를 명확히 받아들여야 하고, 수연은 성진의 거짓된 감정을 받아내야 하며, 미주는 감금된 상태로 수연의 사랑을 갈구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서인지 이 영화는 욕망이라는 감정에 대해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존재 그 자체로나 간직하는 행위 정도로는 문제가 되지 않을 마음. 하지만 그 위로 올라서고자 할 때, 혹은 그 욕망이 꺾이는 순간에 살아남고자 하는 몸부림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게 만들지도 모르는 위험한 욕심 말이다.
히든페이스 김대우 송승헌 박지현 조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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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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