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놀이터에서 한번도 놀아본 적이 없어요'
'부담스러워요. 가족과 보낸 시간이 없어서 그런 시간을 갖는다는 게'
'만약에 부모님이 덜 바빴더라면, 부모님과 여행을 가고 싶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이 시대 대학생들의 대답이다. 이들은 말한다. 부모님은 늘 바빴고, 자신들은 외로웠다고. 그래서 일까. 가정을 꾸리는 미래가 떠오르지 않는단다. 이들이 대학을 나와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미래, 그들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을까?

 <다큐멘터리 K - 인구대기회 초저출생 ;골든타임 2부 가족을 잃어버린 아이들>
<다큐멘터리 K - 인구대기회 초저출생 ;골든타임 2부 가족을 잃어버린 아이들>EBS

지난 11월 14일부터 방영된 <다큐멘터리 k - 인구 대기획 초저출생 : 골든 타임>은 초저출생 시대의 현실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다. 11월 22일 방영된 2부, '가족을 잃어버린 아이들'에서는 성장 일변도 및 노동 중심적인 사회인 한국 사회가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가를 신랄하게 드러내 보인다.

가족이지만 가족같지 않은

6살 이루리, 이루고자 하는 것은 다 이루라고 아빠가 지어 준 이름이다. 그런 이루리는 다 이루고 살고 있을까.

8시 8분 어린이집 차를 타기 위해 이루리는 아침부터 엄마랑 뛴다. 엄마의 출근 시간에 맞춰 이른 아침부터 서두르는 이루리, 그래서 일까, 오전 10시 쯤 되면 활발한 이루리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잠시 낮잠을 자고 점심을 먹고 이어진 어린이집 생활은 4시 반 이후 태권도 장으로 이어지고, 아빠가 데리러 온 저녁 때까지 이루리는 밖에서 하루를 보낸다. 오후에 제대로 쉬지 못한 이루리는 태권도장 구석에 앉아 힘들다며 울곤 한다.

 다큐멘터리 K - 인구대기회 초저출생 ;골든타임 2부 가족을 잃어버린 아이들
다큐멘터리 K - 인구대기회 초저출생 ;골든타임 2부 가족을 잃어버린 아이들EBS

'외롭지 않아요. 혼자 놀 줄 알아요'라고 벌써 말하는 이루리. 루리가 하루 종일 엄마, 아빠와 오붓이 보내는 시간은 한 시간이 채 못 된다.

시우네 라고 다를까. 그나마 엄마가 유치원 방과 후 선생님이라 늦게 출근해도 돼서아침 시간이 좀 여유가 있지만 퇴근 시간은 엄마나 아빠나 7, 8시가 되어서 이다. 그래서 시우는 4시에 어린이집을 마치고 다시 또 야간 어린이집 행이다. 예체능 학원을 보내지만 그건 시우가 원해서가 아니라 픽업되는 학원이 그곳 뿐이라서다.

다른 아이들을 돌보는 유치원 방과 후 선생님인 시후 엄마, 하지만 정작 내 아이는 돌보지 못하는 현실이다. 시우네 엄마 아빠는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지내는 모습을 그저 사진으로만 봤다. 아침에는 밀린 집안 일을 하느라, 저녁에는 늦은 퇴근으로 시우네는 평일에는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해본 적이 없다. 놀아 주는 시간이라고 해봐야 30분이 채 돼지 않는다.

 다큐멘터리 K - 인구대기회 초저출생 ;골든타임 2부 가족을 잃어버린 아이들
다큐멘터리 K - 인구대기회 초저출생 ;골든타임 2부 가족을 잃어버린 아이들EBS

우리의 아이들은 OECD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긴 시간 동안 보육을 받는다. 어린 나이부터 어린이집 등 보육 시설은 물론 학원을 전전한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97%. 우리 사회 영아들의 기관 보육율이다. 돌봄의 사회화란 용어가 가족이 돌봄을 하지 않는다라는 뜻이 되고 있다. 돌이 되기 전부터 어린이집에 맡겨지는 아이들은 어린이집이 빠질 수도 있는 곳이라는 사실 자체를 모르며 자란다.

우리 사회에서 돌봄의 사회화는 늦게 태동 되었다. <응답하라 1988> 시리즈에서 보여지듯이 우리 사회에서는 1980년대 까지만 해도 돈은 남자들이 나가서 버는 것이었고, 여자들은 집에서 알뜰하게 살림을 하며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보통의 삶이었다. 그러던 것이 IMF를 겪으며 우리 사회는 한 가족에서 두 사람 이상이 나가서 돈을 벌어야 가정을 꾸려갈 수 있는 시절이 되었다. 일과 가정 양립의 문제가 대두되었고, 돌봄의 사회화가 비로소 사회적 화두가 되었다.

돌봄의 사회화가 철저하게 된다면 아이들의 돌봄이 잘 이루어지는 것일까? 세종 시의 해밀초등학교, 이 학교에서는 '늘봄 학교'를 만들어 학생들에 대한 적극적 돌봄을 자처하고 나섰다. 아침부터 시작되는 스포츠 클럽을 비롯하여 많은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정작 돌봄 선생님은 의문을 표시한다. '이게 맞을까요? 제 아무리 시스템이 잘 구축돼도 부모만 할까요?' 아이들은 학교에 오래 있는 걸 버거워한다. 제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해도, 아이들의 우선 순위는 바뀌지 않는다. 아이들이 바라는 건 엄마, 아빠다.

캘리포니아 법대 교수인 조앤 윌리암스는 한국 사회의 이상적 근로자는 40년간 꾸준히 장시간 근무를 할 수 있는, 육아나 돌봄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사회적으로 이상적인 근로자는 아이들에게는 가장 나쁜 부모가 되고, 그래서 사람들은 점차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 수 없는 환경에서 더는 아이들을 낳지 않으려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영업을 하는 혜원이네 집은 아침부터 저녁 9시까지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이 거의 없다. 아이에게 보온 도시락 통에 밥을 싸줬다지만 아이의 밥은 차가웠다. 도시락이 제 기능을 하는지조차 체크할 시간이 없었다. 밥이 차다고 말하려 엄마에게 전화를 했지만 엄마의 답은, "혜원아, 엄마 바빠" 였다. 당연히 엄마는 아이의 시간표를 모르고, 주 5일 다닐 수 있는 학원이라면 영어든, 태권도든 문제 되지 않았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집은 저녁도 먹이고 목욕까지 시켜주시는 시터 이모님이 있는 집이다.

이렇게 가족이지만 가족의 품 밖에서 떠돌며 자라난 아이들, 청소년이 되면 상황이 바뀐다. 이제는 아이들이 학업으로 학원을 다니느라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없게 된다. 학원 보충을 마치고 밤 11시 쯤에야 집에 돌아온다.

새벽까지 공부하고 자면, 가족끼리 외식은 언감생심이다. 아니 모처럼 엄마와 함께 하는 식사 시간, 엄마가 아이에게 하는 이야기는 자꾸 공부 얘기다. 듣다 못한 아이는 "체하겠다"는데. 아이들은 공부를 강권하는 부모가 이해되지 않는다는데 부모는 그래도 우리 사회에서 잘 살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한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 지수는 65%, 전세계 최하위다.

 다큐멘터리 K - 인구대기회 초저출생 ;골든타임 2부 가족을 잃어버린 아이들
다큐멘터리 K - 인구대기회 초저출생 ;골든타임 2부 가족을 잃어버린 아이들EBS

이 모든 것이 따지고 보면 돈 때문이다. 가족을 이루고 살지만, 가족보다 '돈'이 먼저가 되는 사회, 아니 가족을 이루고 살기 위해서는 '돈'이 먼저일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아이들은 이른바 '돌봄의 사회화'라는 시스템 안에서 가족 없이, 방과 후 교실과 학원을 전전하며 알아서 자라게 된다. 그렇게 자라난 아이들이 과연 다시 가족을 이룰 수 있을까? 아이를 낳고 키우는 삶에 자신의 미래와 희망을 걸 수 있을까?

가족의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한국 사회의 가족들은 안타깝게도 그러다 보니 노동과 돌봄의 밸런스를 잃고 말았다. 이건 한 가족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다큐는 강변한다. 우리 사회의 노동 중심적인, 생산 중심적인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는 한 어쩌면 초저출생의 문제는 해결 될 수 없을 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초저출산 사회는 그만큼 한 명 한 명을 잘 키워내야만 하는 사회여야 하고, 그 한 명 한 명을 잘 키워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족이 그 본연의 가치를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고 다큐는 주장한다.



EBS다큐 초저출생 가족을잃어버린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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