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바다 갈매기는> 스틸
<아침바다 갈매기는> 스틸㈜트리플픽쳐스

동해 바닷가 작은 어촌. 베트남 참전용사 '영국'은 오늘도 젊은 어부 '용수'와 함께 고기잡이에 나선다. 생각에 잠겨 있던 용수는 그물을 걷다 바다에 빠지고, 영국은 용수를 구하는 와중에 팔을 다치지만, 소주 한잔 진통제 삼아 다시 바다로 나간다. 그렇게 수십 년 살아왔다. 영국의 집에는 다른 누구도 없다. 딸이 있지만, 부녀 관계는 소원하다.

며칠 후, 컴컴한 새벽에 출항했던 영국과 용수. 그런데 영국만 돌아와 실종신고를 낸다. 작업 중 바다에 빠졌다는 것이다. 용수의 아내 '영란'은 충격에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유산 후유증이 있던 참이다. 영국과 오래 알고 지낸 용수의 어머니 '판례'는 매일 아침 일찍 부두에 나와 종일 우두커니 바다만 바라볼 뿐이다. 해경은 물론 어민들도 며칠간 전력을 다해 수색을 돕지만, 흔적은 찾을 길이 없다.

영국의 행보가 미심쩍다. 그는 어민들이 조업도 중단한 채 수색을 지원하는데도 심술궂은 표정으로 홀로 조업에 나선다. 판례는 물론 호형호제 이웃들도 뒤에서 그를 손가락질한다. 그러나 영국은 용수 어릴 적부터 10여 년 넘게 고기잡이를 가르치고 아들처럼 대해온 사이다. 뭔가 석연찮은 사정이 있다.

실은 용수의 실종은 영국과 사전에 계획한 것이다. 앞길 막막한 동네 형편에 근심하던 용수는 영국에게 자신이 사고로 죽은 것처럼 위장하게 도움을 청했고, 고심 끝에 부탁을 수락했다. 어딘가 은신한 용수와 간간이 교신하며 그는 용수의 사망이 인정되면 가족에게 지급될 보험금 처리만 기다린다.

의도치 않은 문제가 터진다. 한 달 정도면 수색이 종료되고 사망 처리될 줄 알았다. 그것까진 준비를 해뒀다. 그러나 형식적인 수색에 분개한 판례는 한사코 사망 신고를 거부한다. 가족이 수색을 종용하니 경찰도 난감해하며 시늉이라도 계속할 수밖에 없다.

멸망해가는 동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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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바다 갈매기는> 스틸㈜트리플픽쳐스

이야기 외형만 놓고 보면 미스터리 스릴러 추리극이다. 감독은 초반부터 비밀을 감추지 않고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용수는 멀쩡하게 어딘가 숨어 있고, 보험 사기 실행을 담당하는 영국은 돕겠다는 의도로 조력하다 졸지에 적극적인 실행범이 되는 신세다.

그는 영화 내내 전전긍긍하며 남들이 자신을 오해해 매도하건 말건 끙끙 앓아가며 분투한다. 판례는 선장인 영국이 몰인정하고 무책임하다며 비난하고, 주변 어민들도 돈독이 올랐다며 영국의 행색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런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왜 영국은 굳이 이런 위험을 감수하는 걸까.

이런 가운데 이웃의 불행을 자기 일처럼 팔 걷고 나서 돕던, 비록 쇠락해 가지만 공동체 의식이 살아 숨 쉬는 것 같던 마을의 어두운 이면이 화면에 그려지기 시작한다. 마을의 몇 안 되는 청년 중 하나가 조업 중 사고로 죽었다는 건 그의 어머니 외엔 다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지 오래다. 마지못해 가족의 의지대로 껍데기 수색만 대충 하릴없이 이어질 뿐이다.

모두가 그런 상황에 동의한다. 한 달 훌쩍 넘어가니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이웃들은 용수 목숨의 대가로 받게 될 보험금 액수를 계산하기 시작한다. 달리 악의는 없다. 그저 호기심에 함께 그물을 걷고 생선을 손질하다 우연히 튀어나올 법한 일에 불과하다. 수색을 돕느라 하지 못한 조업에 대한 보상금은 언제 얼마나 나올지도 불쑥 화제로 튀어나온다. 다들 형편은 고만고만하고, 자신에게 금전적 이익이 돌아올지 모른다면 누구라도 촉각을 세우는 게 인지상정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용수의 사망 보험금은 상당한 액수다. 속된 말로 유가족이 신세 고칠 정도다. 수령자가 누구인지 호사가들은 입방정을 열심히 떤다. 공교롭게도 아내인 영란이 수혜자다.

여기에서 판례의 사망 신고 거부에 이어 영국으로선 미치고 팔짝 뛸 두 번째 암초가 등장한다. 베트남 이주여성인 영란은 남편이 죽고 아이도 없기에 영주권 신청 자격을 충족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얼른 사망 신고 처리하고 영란이 고향으로 보험금을 수령해 돌아가면 외국에서 새 삶을 출발할 꿈을 꾸던 용수로선 난감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영국은 영란을 데리고 간 출입국 관리소에서 역정을 터뜨리며 매정한 처사에 항의하지만, 다른 대책이 나올 게 없다. 이러다간 영란은 돈 한 푼 못 받고 강제추방될 꼴이다. 판례는 그저 아들이 돌아올 거란 집착에 빠져 있고, 영란은 쫓겨날 위기다.

영국의 타는 속을 알 리 없는 이웃 주민들은 영란이 남편 목숨으로 부자가 됐다며 시기 질투를 시작한다. 한 번 발화된 집단적 악의는 어느새 차별과 혐오로 확장된다. '우리'와 다른 이방인은 이 시골 마을에서 낯설고 속을 알 수 없는 '타자'에 불과한 것이다.

제작진은 승부수를 던진다. 절대 악 존재가 아니라 평범한 우리 주변의 이웃들이 가진 편견이 어떻게 집단적인 배제로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는지 사회학 교재 예시처럼 구현하려는 것이다. 본 작품의 백미는 뭐니해도 그 형상화 과정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지방 소멸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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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바다 갈매기는> 스틸㈜트리플픽쳐스

이 영화의 탁월한 점은 한 길 속을 알 수 없는 등장인물 각자의 중층적인 면모 구현이다. '가족' 같던 이웃의 불행 앞에 슬퍼하며 똘똘 뭉치는 주민들의 단합력은 역설적으로 원래 그들에 속하지 않던 이들에 대한 경계와 의심으로 작용한다. 둘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속성으로 그려진다. 단순하게 악당과 선인으로 구분하지 않는 묘사가 유독 돋보인다.

마을 주민들은 심지어 경찰까지 다 이웃집 숟가락 개수까지 훤하다. 동네 대소사는 함께 치르는 게 당연하고, 훈수와 간섭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숫제 중세적 분위기가 그대로 남은 느낌이다. '작은 사회'의 전형적인 면모다. 그 양날의 칼이 <아침바다 갈매기는>의 중반 긴장을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 배경이 되어준다. 냄새가 익숙하지 않아 살짝 거슬리는데 불과했던 고수 향기는 성실한 이웃으로 함께 살던 영란을 졸지에 돈을 노리고 꿍꿍이 알 수 없는 영악한 이방인으로 전락시키는 암시로 활용된다.

이미 현실은 물론 영화 속에서 조그만 어촌 구석구석 침투해 이젠 뺄 수 없는 존재가 된 이주민들의 처지는 거칠게 표현하자면 염전 노예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부두에서, 고깃배에서 양식장에서 그리고 가정 내에 유입된 이주민의 존재는 지방 소멸의 해법처럼 오르내리지만, 그들을 공평하게 이웃으로 대하지 않는다면 과연 가능할까. 영화는 민감한 질문을 던지길 망설이지 않는다. 비수와 같이 꽂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용수가 사라졌으니 영국은 조업을 위해 조수를 구해야 한다. 그러나 동남아시아 이주노동자 수급은 바로 되는 게 아니다. 예전보다 절차가 까다롭다며 영국이 수협에서 푸념하자 직원들은 맞장구를 열심히 친다. 같은 일용직이라도 내국인보다 막 대해도 된다는 공공연한 속내다. 마지못해 영국은 예전 마을 청년의 리더 격이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보상금을 수령해 서울로 야반도주했던 이가 돌아온 것을 알고 그를 불러들인다.

공동체의 일원이었으나 이젠 배신자 취급을 당하는 그를 품는 영국과 달리 이웃들은 원수처럼 대한다. 그가 주민들과 충돌하며 내뱉는 폭로는 결정타처럼 폐쇄적인 공동체의 위험을 환기하는 촉매가 된다. 그렇게 영화는 종말로 향하는 동해 바닷가 어촌의 현실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그린다.

중견 배우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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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바다 갈매기는> 스틸㈜트리플픽쳐스

박이웅 감독은 전작 <불도저를 탄 소녀>에서 발랄한 로맨스 캐릭터로 소비되던 배우 김혜윤을 그 작은 체구로 기득권의 수탈에 대항하며 폭주하는 반 영웅적 존재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배우가 품은 숨은 면모를 포착하고 개화하는 솜씨를 뽐낸 감독은 차기작에선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친근한 텔레비전 드라마 캐릭터 재해석을 과감하게 시도한다. 시트콤 드라마 감초 역할로 고정돼 있던 영국 역 윤주상, 판례 역 양희경 배우는 이 영화에서 그동안 우리가 깨닫지 못한 잠재력을 활화산처럼 분출하는 위업을 이룩한다.

영국을 보며 자연스럽게 떠오른 캐릭터가 하나 있다. <그랜 토리노>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구현한 베트남 참전용사 노인이다. 배우의 한창 시절 상징과도 같던 이미지, 보수적인 마초 영웅이 그대로 나이를 먹은 것 같은 캐릭터는 마치 미국의 베트남전 책임을 속죄라도 하듯 자기를 희생하며 그 생존자들을 구원하는 존재다.

영국 역시 같은 전장에서 숱하게 이방인들과 피 흘리는 전투를 겪고 살아남았지만, 참전 후유증과 자신의 가부장적 고집 탓에 가족의 비극을 당한 상처를 안고 유령처럼 살아왔다. 윤주상 배우는 노쇠했지만 여전히 젊은이 못지않은 강건함과 속에 품은 회한을 이스트우드에 비견되게 뿜어낸다. 그는 이제 인생의 황혼에서 마지막 만회를 위해 거짓 인정이 아니라 운명을 건 결단에 나설 때다.

판례는 우리가 2014년 진도 앞바다에서 겪은 사회적 참사의 유가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존재다. 제작진 역시 노리고 형상화했을 테다.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사회적 재난 경험을 복기하고 학습해 더 나은 전망을 그리고 있는지 예리하게 관통하는 장치에서 거의 연기 차력쇼 차원으로 어마어마한 폭발력을 발휘하는 판례의 존재는 결정적 분기점으로 주요 국면마다 화면을 장악한다. 영국이 시종일관 묵묵히 본진을 사수한다면, 판례는 결정타를 날리는 최종병기 역할을 떠맡는 분담이다. 양희경 배우가 저런 게 가능했구나 놀랄 이가 수두룩할 테다.

그들이 몰락하는 마을에서 탈출시키려는 이들이 청년과 이주민이란 것도 의미심장하다. 고전 SF 장르에서 유행하던, 지구가 뜻하지 않은 멸망에 처할 때 고뇌에 찬 결단으로 인류의 멸종을 막고자 준비하는 '방주'에 누굴 태울 것인가 논쟁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나이 든 기득권층의 욕망을 물리치고 미래를 기약할 희망을 살리는 게 그런 작품들 속 갈등의 핵심이던 기억이다. 전혀 장르는 다르지만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그 고민과 정확히 맞닿아 있었다.

 <아침바다 갈매기는> 포스터
<아침바다 갈매기는> 포스터㈜트리플픽쳐스

[작품정보]

아침바다 갈매기는
The Land Of Morning Calm
2024|한국|드라마
2024.11.27. 개봉|113분|12세 관람가
감독 박이웅
주연 윤주상, 양희경
제공/제작 ㈜고집스튜디오
배급 ㈜트리플픽쳐스
공동배급 ㈜고집스튜디오

2024 29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KB뉴커런츠관객상/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
아침바다갈매기는 박이웅감독 윤주상 양희경 박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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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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