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서트>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이 시대 젊은 남성 가운데 다수는 어째서 스스로를 상대적 약자로 바라보는가. 예술이 삶이며 시대를 반영하는 무엇이라면 마땅히 그를 주목하고 반영하며 해석해야 하는 일이다. 언론과 마찬가지로 지난 시대 젊은 남성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왔던 영화가 비로소 그를 비추기 시작하니, <인서트>가 꼭 그와 같은 작품이라 하겠다.
영화는 상업영화 현장에서 일하는 스태프 진주석(남경우 분)의 이야기다. 그는 영화 도입에 쓰는 배경, 즉 인서트 장면을 찍는 인서트 감독으로 일한다. 꼭 있어야 하는 역할은 아니라지만 딱히 하는 일 없이 지내는 그를 안쓰러워 한 감독이 불러다 일거리를 준 것이다. 성격 좋기로 유명한 감독의 제안에 진주석은 마다 않고 일한다. 일이라고 해봐야 영화의 배경이 될 지역의 호숫가에 카메라를 두고 하염없이 그를 담는 것뿐이지만.
그저 배경을 비추던 카메라에 한 여자가 들어온 건 제법 운명적이라 해도 좋을 일이다. 사연을 알 수 없는 여자 마추현(문혜인 분)이 카메라 앵글 안, 그러니까 호숫가로 다가온 것이다. 그러더니 배낭을 벗고 갑자기 물 안으로 뛰어든다. 깜짝 놀란 주석이 다가가 그녀를 끌어안고 빼내려 한 건 차라리 자연스럽다. 그녀도 죽을 생각까진 없었던 듯 어찌어찌 뭍 위로 올라온다. 촬영팀과 추현의 첫 만남이 그러했다.
성격 좋은 감독은 이 일도 그저 지나치지 못한다. 스스로 물에 몸을 던진 추현에게 일거리 제안을 한 것이다. 영화판에서 일할 생각은 없느냐며 스탭일을 제안한다. 추현은 마다하지 않고, 그렇게 그들의 기묘한 동행이 시작된다.
성별 고정관념을 뒤틀어내는
영화는 주석과 추현의 관계로 이어진다. 추현이 촬영팀에 합류하며 주석과 교류가 있게 되고, 둘이 점차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하룻밤을 함께 보내게 된 둘이다. 주석은 추현에게 마음을 주고 그녀를 끌어안고 애정을 고백한다. 하루가 그렇게 지나간 뒤 여느 때처럼 다음 날을 맞는다. 함께 밤을 보낸 주석의 작업실에서 먼저 눈을 뜨는 건 주석이다. 그리고 마침내 일이 일어난다.
영화 내내 주석은 못난 사내의 전형이다. 주목할 것은 나쁜 사내가 아니란 것이다. 나쁜 게 아니라 못난 사내, 그리하여 자신과 상대를 망치는 이다. 함께 눈을 뜬 날엔 일어나 휴대폰을 잡고 게임을 켠다. 요 며칠 빠져 있던 게임이다. 세상 흔한 게임하는 남자, 그것도 옅은 수준의 중독성을 보이는 이다. 곁에는 첫날밤을 보낸 여자가 잠이 들어 있다. 게임 소리에 여자가 눈을 뜨고 한바탕 일이 벌어진다.
하필 성격이 만만찮은 여자다. 스스로 목숨을 버리겠다며 촬영 현장으로 찾아와 생쇼를 벌였던 이다. 그녀의 전 남친이 게임으로 문제를 일으켰다 했던가.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남긴 그녀에게서 주석은 호되게 까인다. 뒤늦게 잘못을, 말 그대로 빌어보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로부터 주석의 일상이 와장창 무너진다. 하룻밤을 같이 보낸 뒤 버려진 남자의 고통이 이후를 잠식한다.
<인서트>는 여러모로 기존 성별의 고정관념을 뒤틀어 놓았다. 뒤틀었다고는 하지만 뒤늦게 오늘의 현상을 바라봤다 하는 편이 옳겠다. 여전히 여성들을 핍박하고 범죄의 대상으로 삼는 못된 남자들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한 편엔 여성과 교류할 기회를 아예 갖지 못하고, 만나도 외면 받고 조롱당하며, 제 자존감을 지키려 여성을 혐오하는 못난 이들이 수두룩하다.
'성인지 감수성'으로 대표되는 지난 몇 년 간 법원의 전향적 판례들과 성범죄 무고로 고생한 수많은 사례들, 그로 인해 벌벌 떠는 사내들의 존재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 패배감과 결핍감, 두려움이 못난 남자의 마이너리티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나랑 잘 사람?" 그 허망한 외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