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프렌티스> 스틸컷
브라이어클리프 엔터테인먼트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의 인생은 절묘하게 교차한다. 트럼프가 난관을 겪는 신출내기 사업가에서 출발해 절정으로 올라서는 동안 로이 콘 변호사는 권력의 절정에서 바닥으로 서서히 낙하한다. 성공과 권력에 매몰된 두 어른, 아버지 트럼프와 로이 콘 변호사의 절정기에 두 사람을 합친 것보다도 더 거대한 괴물이 되어갈 젊은 트럼프를 끌어 올려 준 것이다.
미국에서 로이 콘은 악명 높은 인물이다. 미국 민주주의에 해악을 끼치고 정치의 정도에서 탈선하게 된 것이 트럼프 이전에 로이 콘이 있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는 유대인이었으나 유대인을 혐오했고, 동성애자였으나 끝까지 그 사실을 부인했으며 오히려 동성애자인 정적을 극렬히 공격했다. 메카시즘의 광풍이 불던 시절 워싱턴 정가와 문화계에서 수많은 이들을 빨갱이 혹은 사회주의자로 몰아 축출한 사냥꾼이고, 이후에는 뉴욕으로 옮겨와 30여 년 동안 고객을 가리지 않고 변호해 승소를 끌어냈다. 마피아도 그의 고객이었다.
거짓말, 불법 도청, 허위 정보와 가짜 뉴스 생산, 협박, 로비... 로이 콘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일이든 거리낌 없이 저질렀고 이를 트럼프에게 그대로 전수했다. 젊은 트럼프를 '대니 보이, 키즈'라고 부르며 자신의 사생활도 감추지 않고 내보였다. 트럼프는 로이 콘의 모든 것을 순식간에 빨아들인다. 광란의 향락 행위만 빼고 말이다. 형의 알코올 중독이 영향을 미쳐서인지, 트럼프는 술과 담배를 멀리했다. 대신 음식을 탐하고 성적인 일탈로 은밀한 사생활을 즐겼다.
로이 콘은 특히 언론을 잘 다루었다. 명예롭든 아니든 언론에 자주 노출되어 스타가
되면 될수록 대중과 미디어에 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트럼프도 금세 터득했다.
로이 콘에게 트럼프는 어떤 의미였을까. 자신의 핸들을 벗어나 위험인물이 되어갔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는 트럼프를 칭찬하고 언론 앞에서 그를 치켜세워준다. 자신을 돌아보게 해주는 거울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실패라고 낙인찍지 못하는 분신 같은 존재였기 때문일까.
영화 말미에 에이즈에 걸린 로이 콘이 닿았던 자리가 철저히 소독된다. 트럼프 자신에게서 로이 콘을 지워버리듯 말이다. 트럼프에게는 로이 콘마저도 공격과 버림의 대상, 갈취의 대상이었다. 오직 공격, 패배는 부정, 사과는 절대 하지 말 것, 사과 대신 협의를 이끌어내고 무조건 승리를 선포하고 자축할 것. 로이 콘 키즈, 트럼프는 스승에게 그 배움을 되돌려 줬다.
트럼프의 첫 번째 아내 이바나는 영화 속에서 어쩌면 상징적인 장치인지도 모르겠다. 트럼프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과 막연한 호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챘으면서도 쉽게 저버리지 못하고 동조하는 트럼프 주변인 같달까.
"트럼프가 당신에게 준 건 티파니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싸구려 커프스 버튼이에요. 그는 이제 그런 거짓말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되었어요." - 영화 <어프랜티스> 중에서
영화 속 이바나의 말은 로이 콘이 아니라 관객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이제 트럼프가 완전히 다른 인격의 사람이 됐다는 뜻이다. 이 장면에서부터 5분여 트럼프의 지지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자극적인 장면이 이어진다. 운동을 거부하고 지방 제거술을 받는 장면, 대머리 치료를 위해 두피 일부를 절개하고 봉합하는 수술 장면, 자서전 작업을 위해 대필 작가와 대담하는 장면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충격적이다. 아바시 감독이 얼마나 공들여 앞선 두 시간을 쌓아 올렸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치 노출증 환자처럼, '대중에게 계속 보이고 싶은 인물'의 욕망을 본 섬뜩함과 트럼프라는 인물이 나아가려고 하는 지점, 나아가면서 벌일 잔혹사를 미리 읽는 것 같은 처참한 기분이 들었다. 로이 콘은 트럼프에게 '내가 너를 만들었어, 잊지 마'라고 한다. 그런 로이 콘과 트럼프는 누가 만들어 냈을까. 대중의 취향과 요구가 늘 옳지는 않다는 경고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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