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즈 야스지로(1903-1963)'라는 이름은 영화의 역사에서 불멸의 존재이자 일본이란 영화 강국을 상징하는 대명사가 된 지 오래다. 지금도 수많은 영화인이 이미 '고전' 반열에 오른 오즈의 작품들을 언급하고 인용하며 경의를 바친다. 그래서 영화 좀 본다고 하면, 이 거장을 우회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막상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구체적으로 볼 기회는 드물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감행할 수 있다. 그의 영화 대부분은 퍼블릭 도메인(저작권 기한 말소)으로 풀려 언제든 아무 때나 볼 수 있게 된 지 오래다. 그렇지만 몇 가지 수식어로 표현하는 것 외에 오즈의 작품에 대한 실제 감상이나 소감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마치 박물관에 고이 모셔진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고전'이란 규정이 오히려 오즈 야스지로 영화에 해가 될 수도 있겠다. 그저 인용과 상찬만 있을 뿐, 현재의 관객이 다시 영화를 찾아보진 않으니 말이다. 고전 명작은 언제 어디서든 생명력을 유지하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관객을 만날 준비 태세를 상시 갖춘 채 기다리는데 말이다. 그중 오즈의 대표작 <동경 이야기>는 '명불허전'이 어떤 의미인지 새삼 일깨운다. 동시에 전통적인 '가족'이 해체되는 풍경을 관조하는 기시감을 선사해 줄 작업으로 부동의 위치를 지닌다.
어느 노부부의 서울 나들이
▲ '동경 이야기' 영화 스틸 이미지 ⓒ ㈜엣나인필름
히로시마 인근 오노미치에 사는 한가로운 노부부가 있다. 이들 곁에는 교사로 일하는 막내딸만이 부모를 돌보며 함께 산다. 은퇴 생활을 여유롭게 부부가 함께 해로하는 것도 복이라면 복이겠지만, 그들의 일상은 적막해 보인다. 간간이 방문하는 이웃들 외엔 변함없는 반복과 적막, 느릿한 일상이 계속 이어질 뿐이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부부의 거동에는 근래 없었던 생기와 분주함이 감돈다. 오랜만에 오노미치를 떠나 장성한 자녀들이 생활하는 도쿄로 나들이 출발할 참이기 때문이다. 법석을 부리지는 않지만, 노부부의 표정엔 오랜만에 두근거리는 흥분이 가득 배어난다. 막내딸의 환송을 받으며 부부는 도쿄로 향하는 장거리 열차에 오른다. 참 오랜만의 수도 나들이다.
기쁜 마음으로 큰 탈 없이 긴 여행을 마친 노부부는 병원을 개업한 장남의 집으로 향한다. 아들 부부가 그들을 맞이하고, 뒤를 이어 미용실을 운영하는 큰딸 가족도 부모를 뵈러 등장한다. 각자 독립된 삶을 큰 문제 없이 꾸려가는 자녀들이 한없이 대견한 부모의 기쁨이 감돈다.
하지만 자식들은 초면의 반가운 상봉이 끝나자 도쿄에서의 삶이 이런것이라는 유세라도 하듯 바쁜 척을 해댄다. 가족 친지들과 만나는 순간 몇 분만이 기쁠 뿐, 이후로는 애매하기 짝이 없는 요즘 세태는 70여 년 전이라고 딱히 달라 보이지 않는다. 장남은 자신이 운영하는 변두리 의원에 환자가 온다며 바삐 자리를 뜨고, 장녀 역시 한바탕 수다를 쏟아낸 뒤 금방 돌아간다. 격식에 맞는 대접을 받긴 하지만, 어째 자식 집에 왔다기보단, 그저 곧 돌아갈 손님 취급이다.
그렇게 다시 둘만 남게 된 그들에게 반가운 이가 찾아온다. 전쟁에 끌려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셋째 아들의 며느리다. 아들의 죽음 이후 재혼하지 않고 도쿄에서 홀로 회사원으로 일하는 며느리는 노부부와 반갑게 상봉한 후 그들을 자신의 단칸방 아파트에 초대하고 시내 나들이도 동행하며 살뜰하게 보살핀다. 그런 며느리가 고맙고 대견하지만, 아직 젊고 창창한 그가 혼자 지내는 게 마음에 걸리는 이들은 좋은 인연을 만나면 우리는 괘념치 말고 재혼하란 권유를 조심스럽게 건넨다.
부모님을 방치만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하던 일 멈추고 밀착해 돌볼 생각도 없는 아들과 딸들은 비용을 분담해 근교 온천여행을 보낸다. 자식들이 효도한다며 기쁜 표정을 짓지만, 이들이 원했던 건 근사한 온천여관에서의 둘만의 시간이 아닌, 가족들에 둘러싸인 행복한 풍경이었을 테다. 온천을 다녀온 이들은 예정보다 이른 오노미치로의 귀가 준비에 착수한다.
너무 빨리, 너무 쉽게 변해가네
▲ '동경 이야기' 영화 스틸 이미지 ⓒ ㈜엣나인필름
<동경 이야기>가 그리는 '히라야마' 부부의 도쿄 나들이 여정은 그 전으로도, 후로도 수백수천 번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로 반복된 익숙한 이야기다. 가족의 정은 현실의 고단한 삶 앞에서 금방 힘을 잃어버린다. 전통적 가족의 당위적 효행을 대신한 건, 현대 도시의 물 샐 틈 없이 촘촘한 시간이다. 70년 전 노부부가 직면한 상황 역시 그러한 전형이다.
"이봐 할멈, 동경이 참 넓지 않소"
"그러게요. 여기서 잘못하다 헤어지면 평생 찾아 헤매도 못 만나겠어요"
노부부가 대화한다. 이들은 오랜만에 만나게 된 자녀와 대가족에 둘러싸여 자신들 삶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싶다. 하지만 정작 자식들은 그런 소박한 여망을 채워주기엔 도쿄의 삶이 너무 고단하다. 동상이몽 탓인지 반가운 상봉 직후 가족의 표정은 미묘하게 엇갈리며 겉으로는 너무나 평온한 광경과 달리 미묘한 불안감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눈 뜨고 코 베일' 대도시 전경은 노부부를 주눅 들게 만들기 충분하다. 모든 게 낯설고 어렵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지위와 경력을 가진 히라야마씨와 부인이지만, 세계대전 이후 전통적 가치관이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한 당대 일본에서 그들은 뒷방 늙은이에 불과하다. 늘 조심스럽고, 눈치를 살피며 온화한 표정을 짓는 게 그들의 생존법인 셈이다. 노부부는 자식들에게도, 온천여관 직원들에게도, 열차에서 마주치는 낯선 이들에게도 항상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대한다.
하지만 선량한 천성으로만 그렇지는 않다. 본인들 처지 너무 잘 알기에 '처세'하는 것이기도 하다. 평생 고생해 자식들을 키우고 손가락질받는 것과는 무관하게 건실한 삶을 살았음이 역력하지만, 그런 노부부의 풍경은 슬픔과 체념의 정조가 가득하다.
영화는 급변하는 시대 배경을 굳이 부각하지 않지만, 부부의 도쿄 나들이 행간에서 세태 변화 유추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은퇴 생활자인 노부부와 달리 대도시 속 경쟁에서 낙오하면 죽을 것처럼 전쟁 같은 삶을 영위하는 자식들은 부모에게 신경 쓸 틈이 없다. 장남은 의사이지만, 도심 큰 병원이 아니라 변두리 작은 의원을 운영할 뿐이다. 그의 눈에는 동료 의사들의 잘나가는 모습이 항상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장녀는 미용실을 유지하고자 고단한 일과는 물론 감정노동까지 해낸다. 억척 여장부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큰딸의 관심은 나이 든 부모에 돌아갈 틈이 없다. 그러나 무관심 변명하는 딸의 언행에서 지금 영화 속 온화한 인상인 아버지의 과거 전성기(?) 행적이 드러난다. 그 역시 당대에 걸맞게 가부장제와 남성우위 삶을 영위했던 것이다. 나름대로 각자 사연과 입장이 제출되기에, 마치 셰익스피어의 고전 <리어왕>처럼 배은망덕한 자식들 vs. 모든 걸 희생한 부모의 대비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 중층적 접근법이 작품의 결정적 매력인 셈이다.
변화된 세태, '관계'의 가치
▲ '동경 이야기' 영화 스틸 이미지 ⓒ ㈜엣나인필름
자식들에게 히라야마 부부는 정중한 방치 대상일 뿐이다. 서글픔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을 테다. 그런 노부부를 오히려 (우리가 상상하는) 자식 도리를 다하는 이는 남이나 다를 바 없어진 며느리 '노리코' 뿐이다. 혼자 힘으로 생활을 꾸려가면서 남편의 죽음 이후 연결고리가 끊어진 지 한참인 그들을 휴가까지 내며 돌보는 건 며느리의 의무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전통적 가족 관계와는 달라도 확실히 다른 변화상이다.
물론 노리코 역시 전래의 '수절' 같은 관습과는 한참 멀다. 아직 죽은 남편에 대한 마음 정리가 쉽지 않다. 그런 그에게 히라야마 부부는 추억을 떠올리는 필수 요소다. 세상은 순식간에 변하는 중이지만, 노리코의 뇌리에 박힌 전통적 가치 역시 만만하지 않다. 그런 마음의 짐과 시부모에 대한 동정심이 뒤섞여 노리코의 행동을 견인한다.
히라야마 부부에겐 대도시에서 회사원으로 살아가는 둘째 아들도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업무 핑계로 통 얼굴을 비치지 않는다. 그는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너무 늦게 도착한다. 그리고 도리를 다한 뒤 순식간에 떠난다. 다른 자식들도 매한가지다. 하지만 그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하기엔, 우리가 명절이나 경조사 때 보이는 평소 모습이 발목을 잡는다. 다들 돌아갈 차편 알아보느라 바쁘고,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욕먹지 않을까에만 신경이 곤두선다. 히라야마 성을 물려받은 이들이랑 추석 때 우리들 모습은 과연 얼마나 다를까.
그런 표리부동함에 늦둥이 막내딸은 오빠와 언니들을 신랄한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노리코는 그에게 언니 오빠들의 심리와 제약을 찬찬히 전한다. 다들 각자 어른의 무게를 짊어진 것이라고. 막내딸은 알 듯 모를 듯 설명을 경청한다.
노부부의 황혼은 급작스러운 반전과 암시로 고즈넉한 일상 풍경을 상상한 관객들에게 쐐기를 박는다. 오즈 영화의 상징, (촬영감독이 바닥에 누워 찍은) '다다미 쇼트' 진가는 화면 가득 빛난다. 일본 가정 일상을 표현하기 위한 구도다. 다다미에 정좌해 차를 마시며 속내를 꺼내는 가족을 올려다보듯 구현하기 위함이다. 왜 그런 기술을 창안했는지 영화를 보면 실감날 수밖에 없다.
'근대적 삶' 표상인 열차의 출발과 도착이 어떤 역할을 맡는지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세계 최초의 영화도 <열차의 도착>이다) 노부부는 열차를 타고 시대의 변화 속으로 빨려들 듯 도착한다. 후반에 열차가 떠나는 풍경은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를 꽁꽁 압축한다. 변화는 옳든 그르든 다가온다. 우리는 적응하는 게 전부다. 그런 세상의 이치를 쓸쓸히 담되, 소중한 가치를 작은 불씨처럼 싣고 열차는 오노미치를 떠난다.
히라야마 부부 역시 세월에 풍화되어 사라져갈 테다. 하지만 그들의 인상, 노리코의 미소는 두고두고 간직될 테다. <동경 이야기>가 전하는 불변의 진실, 가족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70년 지난 현재도 크게 훼손되지 않았고, 앞으로 70년 후에도 근본은 오롯이 남을 테다. 우리는 그저 시대의 명작을 체험하면 족하다. 명불허전, 특히 명절 직후에 본다면 더 진하게 뇌리에 새겨질 고전의 귀환이다.
<작품정보>
동경 이야기
東京物語
Tokyo Story
1953 일본 드라마
2024.10.09. 개봉 136분 전체관람가
감독 오즈 야스지로
출연 류 치슈, 히가시야마 치에코, 하라 세츠코 외
제작 쇼치쿠
수입/배급 ㈜엣나인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