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341만 명. 한국 박스오피스 역대 흥행순위 7위에 올라 있는 <베테랑>의 관객수다. 이토록 큰 성공을 거둔 장르영화, 속편 제작은 기정사실이었다 해도 좋겠다. 당초 3년이면 제작이 완료될 것이라 전망했으나 코로나 팬데믹을 비롯한 여러 사정이 겹치며 무려 9년 만에 <베테랑2>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말하자면 준비할 시간은 차고도 넘쳤단 뜻이다.
달라진 건 무엇인가. 40대 열혈형사였던 주인공 서도철, 또 그를 연기한 황정민이 훌쩍 나이를 먹어버렸다. 이건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 있겠다. 순제작비 59억 원이던 1편에 비해 2편은 130억 원을 넘겼다. 물가상승을 고려해도 상당히 커진 규모다. 이는 전에 갖지 못했던 무엇을 채워 넣을 수 있다는 뜻이다.
장단이 명확한 2편이 어떤 모양일지를 두고 기대와 우려가 엇갈렸다. 세상은 1편을 뛰어넘는, 혹은 그 못지않은 속편이 제법 되지 않던가. 액션과 특수효과 부문에서 기술적 발전을 그대로 활용해낸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 전작의 감성은 이어가면서도 한층 진전된 이야기를 그려낸 <토이 스토리 2>, 전편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새로운 캐릭터를 바탕으로 세계관을 확장해낸 <슈렉 2>, 누아르 역사상 압도적인 걸작으로 남은 <대부 2> 등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그러나 모든 속편이 성공하지 않는 건 당연지사다. 형보다 나은 아우 없다는 속설을 입증하듯 1편이 쌓아올린 매력과 감성, 자산을 한 번에 허문 작품이 부지기수다. <베테랑2>가 이중 어느 사례를 따를까. 그건 류승완과 외유내강을 넘어 산업 전반이 위기에 빠진 한국영화계 전체에 있어서도 중요한 관심일 밖에 없는 일이다.
형보다 나은 아우일까
기대를 한껏 안고 들어선 평론가 시사 자리였다. 상영에 앞서 마이크를 잡은 류 감독은 촉박한 일정 탓으로 관계자들이 완성본을 보는 내부 스크리닝 시사도 갖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편집 등 후반작업이 바쁘게 돌아간 모양, 9년의 시간이 주어진 작품의 무엇이 그리도 작업을 서두르게 했을까 궁금하였다.
1편을 워낙 좋게 본 터였다. 13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은 비결이 명확하다 여겼다. 당대 한국사회의 폐부를 찌르는 부조리를 다루었고, 그 현존하는 일면이 관객 일반에 큰 공감을 일으켰다 믿었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민주국가이자 법치국가인 한국의 내실이 세상에 공표한 것과는 전혀 달리 돌아간다는 것을 이제는 많은 이가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고도 그 패배감이며 좌절감을 내면화한 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계란에 바위치기'라고 읊조리고 말 뿐이 아닌가.
8편까지 연달아 제작된다는 <범죄도시> 시리즈처럼, 혹은 그 이상으로 꾸준히 흥행하는 생명력 긴 시리즈가 되길 바랐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마동석이란 배우의 캐릭터와 형사액션이란 장르물의 틀에 전적으로 기댄 <범죄도시>에 비하여 <베테랑>은 운신의 폭이 훨씬 클 것이 자명하지 않은가. <범죄도시>와 <베테랑>의 차이, <베테랑>을 평범한 형사액션물과 달리 보도록 하는 건 한국사회에 현존하는 부조리를 정면에서 다루었단 점이다. 재벌과 보이지 않는 계급, 그에 순응하는 사회와 무너져가는 규칙 같은 것 말이다.
이는 두 시리즈 첫 편의 악역만 봐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오늘의 <범죄도시>를 있게 했다고 해도 좋을 악역은 저 유명한 장첸(윤계상 분)이다. 조선족 출신으로 극악무도한 범죄조직의 우두머리인 그를 무지막지한 형사 마석도(마동석 분)가 제압해 소통한다는 게 이야기의 골자다. 조선족이라 불리는 중국동포, 나아가 중국인 전반의 한국 내 범죄율이 높지 않음에도 이들에게 흔히 주어지는 편견을 강화하는 설정이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일부 있었으나 그 뿐이었다. <범죄도시>의 압도적 성공과 화제성 아래서 그와 같은 비판이 얼마 조명받지 못한 것이다. 강렬한 캐릭터며 가감 없이 잔인함을 드러낸 영화의 선택은 도리어 성공의 비결로까지 평가받았다.
시대 울렸던 <베테랑>의 고발... 이번엔?
반면 <베테랑>은 형사액션물의 구조 안에 사회고발적 메시지를 그대로 담아냈다. '어이가 없네'란 대사를 전국적으로 유행시킨 재벌 조태오(유아인 분)가 이 영화의 악역이다. 어느 날 회사로 들어오다 계약해지 뒤 1인시위를 벌이고 있던 화물연대 소속 기사를 본 조태오다. 그는 그 길로 기사를 제 집무실로 부른다. 그리고는 하청업체 소장과 싸움을 하라고 겁박한다. 싸움이 끝나고 난 뒤 조태오는 기사에게 체불임금 420만원을 던져준다.
관객의 관심을 단박에 집중케 한 이 장면은 실제 있었던 대기업 횡포를 연상시키며 당시 화제를 일으켰다.
SK그룹 창업주 최종현 전 회장의 조카이자 물류업체 M&M을 경영하던 최철원 전 대표는 지난 2010년 10월 회사 인수합병 과정에서 고용승계를 해주지 않는다며 SK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탱크로리 기사를 불러서는 야구방망이로 폭행했고, 그에게 맷값이라며 천만원짜리 수표 2장을 건넸다고 한다. 당시 최 대표는 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고, 2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됐다.
발전한 기술에도 아쉬움이 남는 이유
<베테랑>이 겨냥한 지점은 바로 이 같은 부조리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상식처럼, 나아가 법칙처럼 통용되는 이 사회 가운데 형사 서도철이 본연의 역할을 해내는 모습을 잡아냈던 것이다. 형사가 범인을 잡는다는 지극히 당연한 일을 결코 당연하지 않게 해내는 것, 그 역전의 순간을 이 영화가 그려낸다. 조태오의 만행에 분노하고 권력과 재력을 동원한 수사방해에 굴하지 않고 본연의 역할을 수행해낸다. 수오지심(羞惡之心)의 분노부터 사생취의(捨生取義)의 의로움까지 나아가는 <베테랑>의 줄거리는 그 자체로 한국사회에 대한 통렬한 고발이자 더는 불의를 용납해선 안 된다는 격문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지점이 <베테랑2>가 별 볼 일 없는 영화가 된 이유다. 9년의 시간이 흘러 서도철은 나이든 기색이 역력한 베테랑 형사가 되어 있다. 시간은 흘렀으나 그의 삶은 얼마 나아져 있지 않은 듯하다. 가족들의 상황은 전과 얼마 다르지 않다. 밤낮없이 사건을 쫓는 강력범죄수사대 동료들 또한 마찬가지. 편한 부서로 몰래 전출을 신청한 동료들도 제법 있을 만큼 고생고생하는 부서 상황은 나아질 줄 모른다. 애써 범인을 잡아도 죗값을 제대로 묻지 못하고 풀어주기 일쑤인 한국 법 앞에 무력감을 느낄 때도 적잖다. 그러나 서도철은 묵묵히 제 역할만 수행할 뿐이다.
이들 열혈형사 앞에 해치가 나타난다. 해치는 법이 제대로 처단하지 못한 악당을 대신 처리해주는 연쇄살인마. 과거 저들이 저질렀던 범행 그대로 연달아 죽어나가는 악당들의 모습에 국민들이 환호하는 건 당연지사다. 왜 아니겠나. 이 땅의 법과 정의가 권력과 돈, 심지어는 저 스스로가 가진 오류로 인하여 판판이 깨져나간단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는 것이다. 무기력한 경찰과 부조리한 법 대신 악을 심판하는 해치가 영웅으로 떠오른 가운데 서도철의 팀에 그를 붙잡으란 명령이 떨어진다.
영화는 어느 임산부를 밀어 죽이고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을 주장해 가벼운 처벌만 받은 깡패 전석우(정만식 분)가 해치의 다음 타깃이 되며 그를 경호하게 된 서도철의 상황을 비춘다. 인력부족으로 격투 능력이 뛰어난 박선우(정해인 분)를 팀 막내로 받은 강력범죄수사대가 해치를 뒤쫓아 체포하기까지가 영화의 기본적 얼개를 이룬다.
사적복수의 부당함... 유효한 질문인가
말하자면 영화의 근간이 되는 건 사적복수다. 사회적 약속인 법치주의 질서를 훼손하고 국가의 사법권을 침해해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해치의 행위가 열렬한 지지를 받는 상황의 아이러니함을 영화의 동력으로 삼는다. <베테랑2>의 결말이란 쉬이 예상할 수 있듯, 정의의 수호자인 주인공 서도철이 온갖 어려움 끝에 악당인 해치를 제압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그 과정에서 해치의 사적복수가 가진 문제를 부각하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베테랑2>가 꺼내든 답은 무고한 이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문제다. 남편을 죽게 하고 보험금을 타먹었다는 루머에 시달려 온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이 해치의 타깃이 되는 것이다. 사적복수를 놓고 토론을 할라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무고한 이의 피해가능성이 이 영화의 답이라니 식상하고 실망스러울밖에.
전편에서 현존하며 해소되지 않고 있는 거악과 당당히 맞선 서도철은 <베테랑2>에선 지친 기색이 역력한 형사의 모습으로 흔한 문제에 질질 끌려갈 뿐이다. 연쇄살인이 분명 중범죄이긴 하지만 <범죄도시>를 위시한 형사액션물 시리즈가 다뤄온 범죄며 악역에 비하여 과연 특별하다 할 수가 있는가. 전작의 성취로부터 기대하게 되는 한국사회에 대한 통렬한 고발을 속편이 제대로 행했다고 할 수 있는가 말이다.
거악은 사라지고 남은 건 사적복수의 딜레마, 그마저도 낡고 흔한 이야기의 평범한 쓰임일 뿐이다. 전위적이지도 유효하지도 않은 문제 제기 앞에서 더는 이 시리즈를 새롭다 할 수 없는 이유다. 서도철은 마석도('범죄도시' 시리즈 주인공) 만큼 강하지 않고, 강철중('공공의 적' 시리즈 주인공)만큼 치열하지도 않다. 그를 특별하게 했던 요소가 무엇인지를 <베테랑2>의 제작진은 보다 고심했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