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치용의 영화리뷰 트랩] 여성성의 덫에 갇힌 마초 살인마의 끝장 탈주와 반전 대미 영화는 폐쇄된 공간에서 극을 이끌어간다. 특히 공연장에서 전개되는 전반부 이야기는 참신했다. 문제는 공연장에서 영화를 마무리하느냐 마느냐였을 텐데,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한 공간에서 공방을 끌어가지 않고 공간을 이동시키는 전략을 택했다. 도살자인 쿠퍼(조쉬 하트넷)가 딸을 대동하지 않았다면 '다이하드'처럼 공연장의 여러 공간을 활용하는 양상을 고려할 수 있었겠지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영화에서 딸(아리엘 도노휴)의 역할이 컸다는 뜻이겠다. 한 공간을 고수하는 대신 폐쇄형 공간을 연달아 보여준다. 동시에 공연장주택대형리무진죄수호송차의 흐름으로 공간을 줄였다. 폐쇄공간은 관객에게 압박감을 전달하는데 공간이 계속 줄어들어 압박감이 커진다. 도살자는 감옥에서 탈옥하는 죄수처럼 단계별로 공간을 헤쳐나간다. 엔딩을 열린 결말로 처리함으로써 마지막까지 극적 효과를 놓지 않았다. By 안치용 #트랩 #나이트샤말란 #조쉬하트넷 #아리엘도노휴 ⓒ 안치용의 시네마 인문학


(*영화의 전개와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트랩(Trap)>은 전통적 스릴러를 계승하면서도, 장르의 관습을 새롭게 해석한 흥미로운 영화다. 연쇄살인마 '도살자'(조쉬 하트넷)가 주인공인데 '도살'에 상응하는 폭력적이고 피범벅인 장면이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며, 캐릭터, 특히 도살자의 심리적 변화를 섬세하게 추적한다. 이런 영화에 반전은 필수적인데,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반전을 배치해 관객을 도발한다. 관객의 반응은 엇갈릴 수 있다. 예상치 못한 방식에서 쾌감을 느낄 수 있는가 하면 욕구불만을 표명할 수도 있다.

폐쇄 공간

영화는 폐쇄된 공간에서 극을 이끌어간다. 특히 공연장에서 전개되는 전반부 이야기는 참신했다. 문제는 공연장에서 영화를 마무리하느냐였을 텐데,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한 공간에서 공방을 끌어가지 않고 공간을 이동시키는 전략을 택했다. 도살자인 쿠퍼가 딸을 대동하지 않았다면 <다이하드>처럼 공연장의 여러 공간을 활용하는 양상을 고려할 수 있었겠지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영화에서 딸(아리엘 도노휴)의 역할이 컸다는 뜻이겠다.

한 공간을 고수하는 대신 폐쇄형 공간을 연달아 보여준다. 동시에 '공연장→주택→대형리무진→죄수호송차'의 흐름으로 공간을 줄였다. 폐쇄공간은 관객에게 압박감을 전달하는데, 공간이 계속 줄어들어 압박감이 커진다. 도살자는 감옥에서 탈옥하는 죄수처럼 단계별로 공간을 헤쳐나간다. 엔딩을 열린 결말로 처리함으로써 마지막까지 극적 효과를 놓지 않았다.

반전의 반전

<트랩>에서 반전은 전개의 주요 요소이다. 감독은 반전의 타이밍과 연출에서 독특한 접근 방식을 취한다. 극적인 전환을 만들지 않고 의표를 찌르는 방식으로 관객의 기대를 뒤엎는다. 관객이 예상하지 못한 순간을 겨냥해 미묘하게 기대를 어긋나게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장면에서 그냥 지나가고 엉뚱한 순간에 반전을 끌어들인다. 관객을 끊임없이 긴장하게 만들며, 스토리의 예측가능성을 낮추려는 의도다.

 영화 <트랩> 스틸컷

영화 <트랩>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무언가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큰 의미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는 '맥거핀'을 자주 사용한 것이 이 영화의 특징이다. 관객을 다른 곳에 집중하게 해 실제 중요한 단서를 놓치게 함으로써 이후 반전의 효과를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의 흐름을 예상하기 어렵게 만들려는 장치다.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는 또 다른 요소로는 미끼의 활용을 들 수 있다. 초반부에 '맥거핀'이 아닌 몇 가지 단서를 미끼처럼 던져놓고, 관객이 미끼를 물면 예상을 뒤엎는 곳으로 끌어올린다. 관객의 시야를 흔들어서 반전의 효과를 배가한다.

소방관 남성의 적들은?

소방관이자 건장한 남성인 주인공이 가상의 어머니, 아내, FBI 프로파일러, 팝스타 등 여성과 대립하는 설정이다. 가부장적 권위와 여성성 간의 충돌이 발생한다. 주인공의 직업이 소방관이라는 점은 전형적인 남성성을 상징한다. 소방관은 용기와 힘이 필요하고 보호자 구실을 하는 직업으로, 전통적으로 남성적 특질과 연관된다.

최악의 범죄자라는 주인공이 쌓아 올린 '업적'은 여성에 의해 무너진다. 남성적 권위와 여성성이 부딪혀 여성성의 힘으로 연쇄살인은 저지된다. 등장한 여성이 표상한 다양한 역할은 주인공이 처한 여러 유형의 사회적이고 가정(家庭)적인 혹은 감정적 어려움의 은유일 수도 있다. 소방관처럼 강한 남성성을 상징하는 인물이 여러 유형의 여성에 도전을 받아 무너진다는 설정이, 남성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나 모색이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해석한다면 감독의 의중을 너무 깊이 헤아린 것이 될까.

환영으로 등장한 어머니는 주인공 쿠퍼의 캐릭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영향을 넘어선 것으로도 묘사된다. 딸에 대해선 자신이 연쇄살인범일지라도 일방적인 헌신과 맹목적 사랑을 드러낸다. 공부를 잘한 딸을 격려하러 공연장에 간 것이 몰락의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사방의 여자가 나이와 상관없이 그의 인생을 방해한 셈이다. 물론 방해받지 말아야 할 인생은 아니었다.

'애착' 너머

주지하듯 프로이트는 인간의 어린 시절 경험이 성격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봤고, 특히 어머니와 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아이의 자아(ego) 형성과 초자아(superego) 발달에 이바지해 장차 사회적 규범을 내면화하고 도덕적 판단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기초를 제공한다. 미래의 성적 관계를 어떻게 경험할지를 예측하는 데도 어린 날의 경험이 중요한 지표가 된다.

현대 심리학의 애착이론(Attachment Theory)이 크게 보아 프로이트의 그늘에 있다는 견해 또한 타당하다. 대중문화에서 프로이트와 애착 이론은 속류적으로 해석돼 많이 활용된다. <트랩>의 쿠퍼에게도 심리학 잣대를 들이댈 수 있어 보인다.

 영화 <트랩> 스틸컷

영화 <트랩>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이 영화의 주인공 쿠퍼에게 어머니와 관계에 문제가 있은 것으로 그려지지만, 결정적인 대목에서는 문제에 구속되지 않는다. 프로파일러가 범인을 특정하며 "어렸을 때 부모가 눈치챘을 수 있다"고 말한 부분은, 단순한 애착 형성의 문제를 넘어서 인격의 본질적인 측면을 지목한다. 주인공이 어린 시절부터 비정상적인 행동 패턴을 보였고, 이것은 애착 형성의 실패 때문이 아니라 선천적인 성향이나 타고난 인격 구조에 의해 결정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는 뜻이 된다.

프로파일러는 주인공의 사이코패스적 성향의 위험성과 특징을 분석한다. '반사회적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를 앓고 있다는 판단은 주인공에게 생물학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의미다. 어쩌면 쿠퍼가 그런 극악한 범죄자가 된 데에 자신의 책임 비중이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호감형 연쇄살인마

주인공이 사이코패스라는 게 오히려 그를 동정하게 만들 수 있다. <트랩>은 캐릭터의 심리적 복잡성을 표현하는 데 비중을 두었다. 주인공이 처한 폐쇄적 상황 속에서 느끼는 두려움, 분노, 혼란 등의 감정이 세밀하게 표현돼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하는 효과를 거둔다.

보통 연쇄살인마가 나오면 피해자가 공포를 피해 탈출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는데, 이 영화는 반대다. 살인의 장면이 전혀 나오지 않고 저지르는 악행이 연쇄살인범이 등장한 영화치고는 비교적 소소하다. 딸에게 자상한 아빠로 행동하는 것 또한 관객이 쿠퍼에게 반감을 갖지 않게 만든 요소다.

 영화 <트랩> 포스터

영화 <트랩>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살인마임에도 불구하고 잔혹한 살인 장면을 명시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오히려 약간의 호감을 느끼게 그린 설정은 당연히 의도적인 연출이다. 주인공을 그저 악당으로 묘사하지 않고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인물로 제시하면 관객은 전적이지 않지만 그의 내면을 이해하고 공감하여 살인마라는 즉자적 판단을 넘어서게 된다. 관객의 개입으로 평면성을 벗어난 캐릭터는 더 깊이 있는 서사를 표명할 여지를 갖는다.

공감이, 도덕적 경계를 흐리게 하려는 의도에서 도입되지는 않았다. 연쇄살인이라는 범죄에 대해서 다른 판단이 불가능하기에 선악의 문제보다는 궁지에 처한 악인의 상황을 편견 없이 보게 만든다. 살인 장면을 직접 보여주지 않은 것은, 동시에 영화나 이야기의 긴장감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미지의 공포는 스릴러의 효능을 제고한다.

심리묘사와 예측을 빗나가는 반전이 이 영화의 강점이다. 만약 이 영화에서 큰 재미를 못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강점을 약점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정답은 없고 취향이 있다.

안치용 영화평론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도 실립니다.
트랩 조쉬하트넷 나이트샤말란 안치용 연쇄살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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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영화, 미술 등 예술을 평론하고, 다음 세상을 사유한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나이 들어 신학을 공부했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ESG연구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영화평론가협회/국제영화비평가연맹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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