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2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초청작 <괜찮아, 앨리스> 양지혜 감독이 7일 오후 서울 롯데시네마 은평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남소연
주말 이른 오후임에도 144석 좌석이 거의 들어찼다. 제12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 7일 오후 월드프리미어(세계 최초 상영)로 공개된 영화 <괜찮아, 앨리스>를 두고 현직 교사는 물론 20, 30대 관객들 사이에서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지난 5일 개막한 서울어린이영화제는 지난해부터 구로구에서 은평구로 적을 옮기며 프로그램과 행사 전반을 재단장했다. 올해는 '파란: 우리학교' 섹션을 신설해 교육 현장 및 어린이 청소년들이 직면한 삶의 문제를 보다 직접적으로 소개한다는 방침이다.
<괜찮아, 앨리스>는 인천 강화군에 위치한 꿈틀리 인생학교 학생들과 선생님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입시만을 중시하는 대한민국 교육 현실에서 1년의 쉼을 제공하며 자기 자신을 탐구하고, 다른 방향과 가능성을 모색할 기회를 찾는 이들의 이야기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 제12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초청작 <괜찮아, 앨리스> 양지혜 감독이 7일 오후 서울 롯데시네마 은평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남소연
상영 직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박일아 서울어린이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이 영화를 보자마자 (영화제에) 초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어린이영화제에서 상영한 작품에 어른들이 감명을 받기도 한데, 사실 제가 이 작품에 크게 감명 받아 같이 나누고 싶었다"며 초청 이유를 밝혔다.
영화에는 총 네 가지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꿈틀리 인생학교를 선택한 학생들, 이런 학생들의 부모님과 선생님, 그리고 학교 설립자인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 기자의 사연이다.
연출을 맡은 양지혜 감독은 "대한민국 입시 현실에서 이런 학교가 있을 수 있나. 있다고 해도 선택하는 학부모가 있나 싶어 역으로 영상화 하자고 오 대표에게 제안했다"며 "학교의 모든 규칙과 커리큘럼을 학생들이 직접 짜서 자기 주도 교육을 하는 게 이 학교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규칙을 정하고 합의하는 과정에서 갈등도 있었다. 양지혜 감독은 "일반 학교에서 정해놓은 시간표대로 생활하던 친구들이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이 때문에 갈등을 겪게 된다. 그런데 이 갈등 때문에 친구들과 조율하고 어울리는 방법을 터득하더라"며 "1년이 지난 뒤 확 달라진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놀랐다"고 전했다.
박일아 프로그래머는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학생 중 늘봄을 언급했다. 늘봄은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혹사하다가 섭식장애를 앓았다. 그는 "사회가 만들어낸 이상적 몸매를 갖기 위해 한창 성장할 나이인데, (늘봄은) 자기 자신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 점점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갔는데, 이 과정이 감동이었다"고 말했다.
▲ 제12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초청작 <괜찮아, 앨리스> 양지혜 감독이 7일 오후 서울 롯데시네마 은평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남소연
양 감독은 "사실 굉장히 민감한 부분이라 늘봄이나 늘봄이 부모님과 마지막까지 영화에 담아도 되는지 상의했다. 결국 늘봄이가 용기를 내줬다"면서 "덕분에 비슷한 아픔이 있는 친구들을 대표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영화에는 춤과 노래에 능통하고 다정하게 타인들을 대하는 여름이가 시험 스트레스로 공황을 얻은 후 꿈틀리인생학교에서 다시금 본인을 찾는 이야기도 주요하게 담겼다. 박일아 프로그래머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삶이라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즐거운 것인지 모른 채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많다"며 "카메라에 담긴 여름이가 상상 못 할 정도로 해맑고, 밝게 (꿈틀리학교에서) 생활하는 것 같다"고 감상을 덧붙였다.
"여름이를 통해 제 이런 시절을 봤다"던 양지혜 감독은 "끼가 많으면 그 끼로 인정받으면 되는데 학교에선 단순히 취미로 여기고 입시 공부를 시킨다. 저 또한 시험 불안증이 있었는데 아무도 그때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며 "여름이를 보며 마음이 아팠던 그때 기억이 떠올랐다. 자신이 가진 특장점을 입시 때문에 누르고 살다 보니 불안증이 오고 공황이 오기도 한다. 여름이가 지금은 너무도 잘 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관객 주도형 개봉 이끌어갈 것"
▲ 제12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초청작 <괜찮아, 앨리스> 양지혜 감독이 7일 오후 서울 롯데시네마 은평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지인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 남소연
현직 교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관객은 "오늘 여기 오신 분 중 선생님들도 다수 계시는 데 우선 이런 영화를 만들고 초대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영화에 나온 주인공들은 어쩌면 어려운 순간을 지나고 지금은 행복한 나날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여전히 고민하는 선생님들도 많다. 저 또한 교사면서 부모이기도 한 터라 영화를 본 뒤 학교나 집에서의 제 역할을 고민하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다른 20대 관객은 "영화 속 학생들을 보며 또래 친구들을 생각하게 됐다. 입시를 마치고 뒤늦게 (취업 등에서) 실패하며 일어서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며 그 친구들이 꿈틀리인생학교를 만났다면 뒤늦은 실패를 딛고 괜찮다고 서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며 "영화를 보고 돌아간 뒤 제 주변의 20대, 30대 친구들에게 괜찮다고 얘기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박일아 프로그래머 또한 "영화 내용처럼 꿈틀리인생학교 같은 곳이 많은 것도 아니고 정부가 지원해주는 것도 아니기에 (현실 교육에서) 고민이 많으실 거다. (우리 영화는) 지금 다니는 학교와 비교하라는 게 아니다. 다만 열린 선택을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저도 학부모인데 아이에게 괜찮다는 말보다 당부의 말을 하고 있더라"고 개인 경험을 전하기도 했다.
<괜찮아, 앨리스>는 영화제 상영을 마치고 본격적인 개봉 준비에 들어간다. 배급을 맡은 미디어나무 김성환 대표도 상영 현장을 찾아 관객들과의 사진을 찍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관객과의 대화에 잠시 발언 기회를 얻은 김 대표는 "이 영화를 어떤 방식으로 관객들과 만나게 할까 고민하다가 영화 <수라> 때처럼 100개의 극장 프로젝트를 하기로 했다"며 "관객분들이 직접 극장을 열어주는 데에 동참하는 프로젝트인데 <괜찮아, 앨리스>로 함께 관객 주도형 배급 환경을 변화시켜 나가도록 하겠다. 관심 있는 분들은 참여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영화 <괜찮아, 앨리스>는 오는 11월 중 개봉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