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대명절, 한가위 어떻게 보내시나요. 장시간 귀성길의 피로, 부모님의 잔소리,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의 쏟아지는 질문들 앞에서 잠시 볼륨을 켜 보세요. 명절 스트레스를 녹여 줄 '플레이리스트'를 소개합니다.[편집자말] |
아직도 명절에 취업 준비생한테 취업 이야기를 꺼내는 어른이 있는가. 겁도 없다. 요즘 취준생 앞에서는 냉수도 함부로 못 마신다. 그래도 호기롭게 묻는다면 이렇게 대처하자. 일단 원초적인 질문을 던져라, 취업이란 무엇인가. 꼬리 질문이 나오면 소크라테스에게 빙의해 되물어라. 이 방법이 별로라면 상대에게 조기 퇴직을 권유해 일자리 창출에 이바지해달라고 부탁해도 좋다.
물론 둘 다 하면 안 된다. 상상만 해도 등짝이 짜릿하다. 벌써 온갖 질문 세례에 짓눌려 집안 끄트머리에 서 있을 당신이 보인다. 그렇다고 위로하기는 싫다. 실수한 것도, 부족한 것도 없는데 왜 위로하겠는가. 대신에 취준생이라도 고개를 떳떳이 들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하겠다. 효과는 강력하지만, 한 가지를 약속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을 의심하지 말고 완수하는 것이다.
나락도 ROCK이다
▲ 2004년 발매된 너바나의 박스 세트 'When The Lights Out' 표지. (왼쪽부터 데이브 그롤, 커트 코베인, 크리스 노보셀릭) ⓒ 유니버설뮤직
취준생들은 종종 록커가 된다. 할 거 없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뭘 하겠는가. 노래나 불러야지. 솔직히 그들이 일자리가 없어서 전자 기타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정상성이란 궤도를 이탈하다 못해 철저히 박살 낸 사람들이라는 건 확실하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가 부러워할 법한 것들을 비꼬고 모두가 싫어하는 외로움, 소외감, 무능력에 대해 물고 늘어진다.
당신께 추천하는 밴드는 '너바나(Nirvana)'다. 이름부터 작살난다. 불교에서 모든 번뇌의 얽매임에서 벗어나진리를 깨달은 '열반'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비굴함을 노래했다. 평론가들은 이들이 '사회적 소외'를 노래했다고 하는데, 한마디로 사회라는 역할극에서 깍두기도 맡지 못한 이들을 대변했다는 말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 취준생들은 '너바나'와 한 몸이 된다. 벌써 지원서 떨어진 것만 몇 번째인가.
1991년 발매한 앨범 < Nevermind >의 다섯 번째 트랙 < Lithium >은 무기력한 체념을 토해낸다. 일요일 아침도 다른 날의 아침과 다를 바 없는 백수인 화자는 무너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내 자신이 추해 보여도, 마음에 맞는 친구가 상상 친구일지라도, 머리를 밀어버릴 만큼 외롭더라도 말이다. 계속해서 부서지지 않을 거라는 가사는 반드시 행복해질 거란 말보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해당 앨범은 총 13곡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트랙 < Smells Like Teen Spirit >은 잘하는 걸 가장 못하는 화자가 저급한 자신을 기쁘게 해달라며 유희한다. 세 번째 트랙 < Come as you were >은 청자에게 원래 모습으로 다가오라며 우리는 '친구'이고, 필요한 건 '기억'이라고 강조한다. 이어진 트랙에서도 너바나가 건네는 메시지는 같다. 우리는 최악이다. 그럼에도 존재한다.
너바나는 누추함을 기워입는 밴드다. 곳곳에 숨겨진 별로인 모습을 꺼내 엉성한 별을 그린다. 그들이 만든 소우주는 초라해질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자들만 입장할 수 있다. 그러니 다가오는 명절에는 과감히 쪼그라들어보자. 괜히 예의 없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성실하게 취업 준비 중인지 설명하지 말고. 내 안에 감춰진 불안을 꺼내 너바나의 악보 사이로 걸어 놓아도 좋다.
특히 너바나처럼 록 음악은 귀성길에 제격이다. 가족들끼리 모인 차 안에서 잔소리가 나오거나 근황을 물을 때 틀기 좋다. 소리가 웅장해서 어른들의 목소리를 감추게 하고 가사가 우중충해서 왠지 건들면 안 될 거 같은 인상을 준다. 나는 이 방법을 몇 번이나 써먹었다. 그때마다 나의 록(Rock)에 치인 어른들은 차에서 내리면서 말없이 용돈을 주시거나 등을 두들겨 주셨다. 추천한다.
신해철 같은 어른은 신해철밖에 없어서
록 음악을 들었으니 이젠 록커를 만날 시간이다. 예민해진 고막을 잔잔한 라디오로 잠재워보는 건 어떠한가. 필요한 건 신해철의 <고스트 스테이션>이다. 2001년 시작해 2012년에 완전히 막을 내린 방송이지만, 유튜브에 팬들이 편집한 당시의 방송이 올라와 있다.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몇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신해철 같은 어른은 신해철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는 늘 방송의 시작을 이렇게 열었다.
"우리는 어둠의 자식이자 달과 별의 친구이고 라디오를 청취하는 순간부터 당신도 그 일원이다."
사실, 처음 <고스트 스테이션>을 들었을 때는 놀랐다. 아무래도 오래된 프로그램이다 보니 사연자들이 보낸 글들이 옛날 말씨였고 지금 시대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걸 고민하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수능을 여러 번 본다거나, 여자인데 결혼에 관심이 없다는 식이다. 'N수'와 '비혼'이 일상이 된 2024년에는 생소한 고민이다. 더 낯선 건 신해철의 혜안이다.
그는 수험 생활을 고민하는 사연자에게 "기득권에 억지로 들어가기 위한 수험 제도가 걱정스럽다. 왜 아이들을 몰아세우는 제도를 두고 부모님들은 간절한 기도를 올리는가"라고 답하고, 연애 고민에는 "장기 연애로 넘어갈수록 필요한 건 아름다운 겉모습이 아닌 상대가 기댈 수 있는 힘이 되어주는지에 달렸다"고 말한다. 터무니없는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고, 무거운 질문에 가볍게 답해서 좋다. 특히 사연자의 마음에 들지 않을 듯한 답도 살짝 망설이지만, 결국에는 뱉어줘 편하고 고마웠다.
신해철이 남긴 여러 말 중에 계속 맴도는 건 '영원한 가시밭'이다. 흔히 가시밭길을 만나면 언젠가 꽃길이 나타날 거로 생각한다. 하지만 계속 가시밭길, 진흙 길만 이어지는 인생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신해철은 그저 "뚫고 가야 한다"고 했다. 니체가 말한 '영원 회귀'와 맞닿는다. 계속해서 취업에 실패한다면, 떡국이 불어 터질 정도로 나이만 먹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뚫어야 한다. 살아야 한다. 존재를 짊어져야 한다.
<고스트 스테이션>을 짤막하게 편집한 유튜브 영상에는 여전히 신해철을 그리워하는 댓글이 많다. 누군가는
"계속 살아 있어서 내 고민도 들어주지"라고 댓글을 달았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어른이란 단어가 효력을 잃고 비틀거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신해철 같은 어른이다.
당신은 취준생이 아니다
▲ 나를 포함한 '취준생'이 인생의 '연습생' 생활을 즐겼으면 좋겠다 ⓒ 픽사베이
취업 준비하는 지인들을 만나면서 안타까운 건 그들이 자신을 '취준생'으로 정의한다는 거였다. 좋아하는 취미를 말하거나, 최근에 먹은 음식이 맛있었고 영화는 별로였다고 털어놓다가 갑자기 입을 닫는다. 그러고는 "나 취준생이야, 이럴 시간 없어. 정신 차려야 하는데"라고 말하는 식이다. 꿈틀거리는 감각과 정체적 확장을 멈춘 채 모든 것을 취업이란 블랙홀에 집어 던지는 그들이었다.
자신이 살아가는 우주를 좁혀가며. 조그만 휴식마저 사치라고 느끼는 당신들이 명절에 닥쳐올 잔소리 폭풍을 견뎌낼지 고민이다. 인류학에는 '리미널리티'라는 말이 있다. 거창한 설명은 많지만, 축약하자면 '출발 다음, 도착 전' 상태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중이라 예전의 지위는 잃었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지위를 얻지도 못한 일종의 연습생 상태랄까.
나는 당신이 '취준생'이 아닌 우리 인생의 '연습생' 생활을 즐겼으면 좋겠다. 설령 화려한 직업인으로 데뷔하지 못한다 해도 명절만큼은 부침개를 많이 먹었으면 한다. 부디 록 음악을 들어라. 지겨운 잔소리에 일침이 필요할 땐 <고스트 스테이션>을 틀어라. 오랜만에 만난 친척에게 취업 준비 말고 다른 이야기로 안부를 답하라. 당신도 나도 취준생이지만, 취준생만은 아니다. 그것만은 의심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