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개체로 존재하지만 홀로 살아갈 수 없다는 뜻에서 붙여진 표현이다. 홀로 삶을 윤택하게 꾸려가기 어렵다는 물리적 의미가 아니다. 말 그대로 혼자서는 심신의 건강을 보장할 수 없단 뜻이다. 인간은 생존을 위하여 무리 짓는다. 다른 존재와의 소통 없이는 불안과 공포를 극복할 수 없다. 타인의 눈치를 보고, 소문과 사회적 평가에 민감하며, 커다란 흰자를 통해 제가 어디에 시선을 두고 있는지 상대에게 알리기까지 한다. 하나하나가 개체보다는 무리를 짓는데 이로운 특질이다.
인간에게 타인과의 관계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제게 맞는 사회를 갖는 것은 아니다. 불행히도 사회를 갖지 못한 인간 또한 수두룩하다. 사회의 가장 기본적 단위인 가족, 그마저 없는 인간이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있다 해도 없느니만 못한 관계 또한 적잖다. 때로는 다른 구성원이 못돼먹어서, 또 때로는 마음과 달리 상황 때문에 다른 이에게 짐이 되고는 한다.
일본 영화 < 52헤르츠 고래들 >은 관계가 부서진 인간들이 어떻게든 제게 맞는 사회를 구축해 나가는 이야기다. 마치다 소노코의 동명 원작 소설은 노골적으로 '52헤르츠 고래'라 알려진 외로운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5만 달러를 투자한 크라우드 펀딩, 'Help Find the Lonely Whale with Adrian Grenier & Josh Zeman(가장 외로운 고래를 찾는 걸 도와주세요)'으로 유명세를 치른 일명 52헤르츠 고래가 그것이다.
디카프리오 펀딩으로 유명해진 52헤르츠 고래
고래인지 밝혀진 바는 없지만 과거 미국 서안 바다 아래서 지속적으로 그 음성이 확인됐다는 미지의 존재를 추적하는 프로젝트가 지속돼 왔다. 10~30Hz대 주파수로 의사소통하는 고래의 세계에서, 52Hz 내외의 소리를 내는 이 존재는 고립된 기형이거나 현재까지 알려지지 않은 종, 또는 생명체가 아닌 무엇일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된다. 잠수함이 활동하는 지역에서 종종 들려오는 이 소리가 유명 배우의 펀딩으로 화제가 된 이후, 마치다 소노코 이외에도 많은 예술가들이 작품의 소재로 이를 삼아온 건 유명한 일이다.
작위적이고 감상적이란 평가에도 여성 독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성공 가도에 오른 마치다 소노코다. < 52헤르츠 고래들 > 외에도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 시리즈는 물 건너 한국에서까지 큰 인기를 누렸다. < 52헤르츠 고래들 >은 작가 특유의 따스한 온도와 감성이 두드러진 작품으로, 소설이 나온 지 3년 만에 영화화됐다.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를 연출한 나루시마 이즈루가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의 시작은 바닷가 작은 마을 해안가 집으로 이사 온 젊은 여성 키코(스기사키 하나 분)를 비추며 출발한다. 그녀는 이 집에 살았던 게이샤 출신 노래학원 원장의 손녀딸로, 뒷이야기 좋아하는 시골 마을에선 젊은 여성이 이곳에 들어온 이유에 대한 온갖 소문이 나돈다. 아무튼 그녀는 이 마을에서 지내며 사람들과 조금씩 교류하기 시작한다.
간병 떠안은 20대 소녀... 키코의 사연
그런 키코의 눈에 한 소년이 들어온다. 나이가 제법 되었음에도 말을 전혀 못 하는 이 아이를 보고 키코는 한눈에 저와 통하는 무엇을 알아본다. 소년을 돌보려는 키코와 그 소년의 말 못 할 사연 사이로 3년 전부터 오늘에 이르는 사연이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는 키코의 과거를 비춘다. 키코는 대학교를 졸업 뒤 몇 년 동안이나 집 밖을 나오지 못하고 젊은 시절을 지냈다. 다름 아닌 간병 때문이었다. 투병 중인 아버지의 간병을 홀로 책임졌다. 친구들이 취업하고 세상에 나가는 동안 키코는 집 안에 갇혀 아픈 이와 씨름했다. 엄마는 바깥에 나가 돈을 벌어오고 키코는 간병하는 시간이 수년이나 지속됐다. 그동안 키코의 마음은 간병 부담을 진 이 땅의 청년들처럼 알게 모르게 얼룩져갔다.
키코를 더욱 힘들게 한 건 엄마와의 관계다. 친엄마가 아닌 그녀는 키코에게 전혀 살갑지 않았다. 그저 살갑지 않을 뿐 아니라 제 마음이 수틀리면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심지어는 폭력까지도 공공연히 자행했다. 그럼에도 키코는 저항할 수 없었다. 짐이 되고 저를 함부로 대하는 부모일지라도 그들이 아니면 키코에겐 아무도 없으니 말이다.
우연에 기댄 유치한 설정 아쉬워
너무나 힘들어 달리는 차 앞에 뛰어들려 했던 날이 있었다. 바로 그때 키코를 구한 이가 있다. 마치다 소노코의 소설이 자주 그러하듯 우연으로써 풀리는 이야기는 이내 공감과 연대, 소소하지만 따뜻하고 연약한 듯하지만 굳건한 무엇으로 이어진다. 그 사이 부잣집 아들과의 연애와 한국 아침드라마 못잖은 운명의 엇갈림까지 자리하며 이런 류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들의 취향을 저격한다.
< 52헤르츠의 고래들 >은 장단이 명확한 작품이다. 소설만큼이나 영화 또한 여성향의 관계 지향적 드라마로 흘러가는 가운데, 현실이 암담한 여성 앞에 나타난 남자들과 그들이 미친 영향에 주목한다. 돈이 많지만 저를 속이고 바람을 피우며 급기야는 폭력까지 행사하는 나쁜 남자와 밝힐 수 없는 어두운 과거를 가졌으나 마음이 따뜻하고 저를 마음 깊이 사랑하는 착한 남자가 지극히 평범하고 불쌍하기까지 한 여성을 두고 겨룬다.
그 얼개를 보자면 민망할 만큼 유치한 구도가 우연적 설정 아래 전개되지만, 한국과 일본의 독자들을 공략해 낸 작가며 감독의 솜씨가 발휘된다. 가족에게 학대를 당한 여성이 제게 선의를 베푼 이를 통해 살아갈 용기를 얻고, 그로부터 받은 도움을 저보다 어린 이에게 전하는 구성이 그와 같은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감상적이며 따스한 표현들이 부족한 영화를 그저 냉정히 판단하기 민망하게 한다.
인간에겐 사회가 필요하다고
냉정한 세상 가운데 관계와 위로가 필요한 이에게 소설처럼 영화 또한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짜임새 있는 서사나 탄탄한 구성, 입체적이며 설득력 있는 캐릭터, 나아가 시대며 사회에 대한 통찰이 없다 해도 인기 있는 작품이 될 수 있단 걸 이 영화가 입증해 낼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52헤르츠 고래'는 정말 고래일까. 어떠한 이유로 제가 속한 종과 제대로 된 소통을 할 수 없는 외톨이인 걸까. 그러나 그 고래가 단지 한 마리 외톨이가 아니란 가설이 여러 경로를 통해 나오고 있다고 전한다. 어쩌면 두 마리,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들 속에서 영화의 제목 또한 단수가 아닌 복수, '52헤르츠 고래들'이란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한 마리 고래 곁에 다른 한 마리가 있다면, 그건 외톨이가 아니다.
인간처럼 무리생활하는 사회적 동물인 고래다. 아이의 곁에 키코가, 키코의 곁에 저를 구한 사내가 있었듯이, 또 그들 곁에 따스한 바다 마을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있듯이, 52헤르츠 고래에게도 저만의 사회며 세상이 있을 수가 있는 것이다. < 52헤르츠 고래들 >이 그리는 건 바로 그 사회의 중요성이다. 우리에겐 모두 제가 숨 쉴 사회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