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1일 7집 앨범 < GROWTH THEORY >를 발표한 가수 윤하. ⓒ C9엔터테인먼트
17세, 홀로 일본에 건너가 곡 제목처럼 말 그대로 '혜성'처럼 등장한 가수 윤하가 어느덧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그의 앳된 모습을 기억하는 일부 팬들은 벌써 30대냐며 놀라기도 하지만, 지난 9월 1일 발표한 정규 7집 < GROWTH THEORY >을 듣는다면 분명 그 원숙함에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를 일이다.
서울 중랑구의 한 카페에서 2일 오후 가수 윤하를 만났다. 2021년 발매한 6집 < END THORY >를 잇는 '이론 3부작' 중 두 번째로 각종 과학 이론에 심취한 윤하의 관심사에 더해 한 소녀가 낡은 요트를 타고 세계일주를 떠난다는 세계관을 더했다. 장르적으로 지금의 윤하를 있게 한 정통 록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진다. 수록곡 모두 윤하가 직접 작사, 작곡, 프로듀싱까지 참요한 결과물로 어쩌면 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들의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다.
관계에 대한 고민을 담다
"유튜브 과학 채널을 많이 보다 보니 알고리즘의 노예가 됐다(웃음). 생물학, 화학 등 각종 지식을 섭렵하고 있는데 여전히 신기하고 모르는 것들 투성이더라. 겉보기엔 과학적 키워드지만 들어보시면 삶과 관계성을 성찰하는 내용들이다. 시작은 호주 여행에서 만나게 된 맹그로브 나무였다. 육지가 아닌 바다에서 자라는 이 나무를 두고 노래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바다를 여행하는 소녀를 상상했다. 심해 연구가 아직까지 많이 안 됐다고 한다. 앨범 작업 전에 바다 관련 영화를 엄청 찾아보고 여러 영상을 봤다. 특히 제시카 왓슨이라고 16세에 무동력 요트로 최연소 세계 일주를 한 항해사가 있다. 그 친구에게도 영감을 받았다."
판타지 같은 세계관이라지만 노래 하나하나엔 윤하가 살아오면서 느끼고 고민한 흔적들이 짙게 담겨 있다. 타이틀인 '태양 물고기'는 흔히 유리 멘탈(약한 정신력)의 대명사인 개복치라는 해양 어종의 새로운 면모를 담았고, '라이프 리뷰'라는 곡은 아버지와 우연히 존엄사 관련 이야길 하며 깨달은 것들을 담아냈다. '은화'는 친동생이자 작사가인 고윤진에게 직접 부탁해 나온 결과물이다.
"집 이사 얘길 하는데 아버지께서 만약 당신이 너무 아프게 되면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결정을 하겠다 하셨다. 존엄사 이야길 그렇게 하는데 기분이 형용할 수 없더라. 이래저래 찾아보니 고민하는 분들이 많은 걸 알았다. 섣불리 제가 옳고 그름을 얘기할 순 없고, 남겨진 사람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걸 생각하다 만든 노래다.
그리고 개복치는 흔히 미약한 생물로 알려져 있잖나. 우연히 영문명이 Sunfish라는 걸 알게 됐고, 이래저래 찾아보니 그 친구에 대한 오해가 많았더라. 수명이 20년 이상으로 매우 길고, 해수면에서 심해까지 오갈 수 있으며, 발광체 기질이 있어서 마치 바다의 태양처럼 보인다더라. 우리와 다를 게 없었다. 해수면부터 해저까지 수많은 층이 있을 텐데 어디에도 귀속되지 않고, 자신보다 큰 존재를 보며 낙담하는 게 아닌 자기가 낼 수 있는 빛을 내는 친구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자기 역할을 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만 살 수 있는 인생이기에 윤하는 이번 앨범을 통해 모두가 각자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누구에게도 맡길 수 없는 인생이기에 때론 고독하지만 즐겁기도 하다"며 윤하는 "개복치처럼 삶을 잘 유영하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모든 수록곡에 윤하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에 싱어송라이터의 면모를 유감 없이 보였다고 할 수 있다. 윤하는 "입학했으니 졸업하는 심정으로 작업했다. 혼자였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며 함께 한 JEWNO를 비롯, 고윤진 작사가 등에게 고마운 마음을 한껏 강조했다.
"프로듀싱까지 한다는 게 참 무거운 작업이었다. 제가 끊임없이 생각하는 타입이라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JEWNO씨를 비롯, 회사 대표님도 많이 도와주셨다. 동생은 제게 구세주 같은 느낌이었다. 그의 글을 제가 좋아한다. 이번에 대놓고 부탁했는데 잘 나온 것 같다. 단조로운 곡에 각종 악기로 함께 해주신 아티스트들 덕에 노래가 더욱 풍성해졌다."
▲ 9월 1일 7집 앨범 < GROWTH THEORY >를 발표한 가수 윤하. ⓒ C9엔터테인먼트
록, 음악적 뿌리
가수 윤하의 앨범 중 평단과 대중의 호평을 고르게 받은 <슈퍼소닉>이란 앨범이 있다. 당시 소속사와 분쟁으로 한창 힘들었던 직후 나온 이 앨범으로 진정한 록 키드(Rock kid)라는 수식어도 등장했다. 2021년 6집 앨범에 실린 '사건의 지평선'이 최근 역주행하며 인기를 끈 것도 어쩌면 윤하가 고집해 온 록에 대한 애정에 대중이 반응한 게 아닐까.
"음원 사이트에서 제 이름을 치면 록, 발라드, R&B 등이 나온다. 애매하잖나(웃음). 이번 앨범은 록이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하도 우리나라에서 록은 안 된다는 말이 많았잖나. 이승환 선배도 저보고 발라드 해야 한다고 걱정하기도 했다(웃음). 대중성 강한 음악을 하지 않는 가수라는 이미지가 제게 있었나 보더라.
근데 생각지도 못하게 '사건의 지평선'이 사랑받았다. 요즘 들어 밴드 음악이 힘을 받는 것 같다. qwer의 등장도 그렇고. 이런 분위기가 지나기 전에 붙잡기 위해 저도 재빨리 작업했다(웃음). 시대가 주는 기운이랄까. 틱톡 같은 SNS 플랫폼에서 자주 등장한 J POP의 역할도 큰 것 같다. 밴드 음악이라고 해도 신디사이저가 들어간다든가, 춤추기 좋은 음악이 나오면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는 것 같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체조경기장(KSPO DOME)에서 공연하게 됐는데 마치 결혼식 하는 게 이런 기분일까? 이런 흐름이 만들어지는 것도 운이라고 생각한다."
이 맥락에서 윤하는 영국 밴드 오아시스 재결합 소식을 잔뜩 기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초기 앨범이 콜드플레이나 U2의 영향을 받았던 만큼 브릿팝, 모던록은 윤하의 음악적 뿌리 일부기도 하기 때문이다. "작업실에서 혼자 오아시스 노래를 열창하며 들었는데, 확실시되기까지 아직 방심하면 안된다"고 윤하는 웃어 보였다.
20년이란 시간에 슬럼프가 없었을 리 없다. 많이 알려진대로 이전 소속사가 와해되는 과정에서 상처 입기도 했다. 5년 넘게 앨범을 내지 못함에도 음악을 그만두지 못했던 것은 팬들 덕이었다고 한다. "당시 엄청난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장만했는데 문고리 하나, 마룻바닥 한 조각이 모두 팬분들이 사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며 "앨범준비를 하면서 그 시기를 최대한 잘 빠져나온 것 같다"고 윤하는 말했다.
이렇게 잘 '버틴' 덕일까. 지난해 윤하는 대통령실 초청으로 '우주경제 개척자와의 대화' 자리에 참석하기도 하는 등 개인적으론 재밌는 이벤트를 쌓아오고 있었다. "노래하면 되겠다 싶어 준비하고 있었는데 5분 스피치를 하라고 하더라. 나라님이 하라고 하니 일단 응했는데, 안 하기도 애매해서 열심히 준비해서 갔다"며 그는 후일담을 밝혔다.
20주년의 반환점을 맞은 윤하에게 성장과 도약이 됐던 기억들을 물었다.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가 피아노를 쳤던 때, 새로운 회사를 설립해 진두지휘하던 때, 그리고 힘들었을 때 위로가 되었던 가족과의 기억을 열거했다.
"개인이 중요한 시대라지만 점점 우리라는 키워드가 멀어지는 요즘 같다. 사실 성장이라는 건 혼자만이 할 수 없잖나. 아무리 온라인 만남이 가능하다 해도 다른 사람과 직접 부딪히고 깎여가는 경험이 중요하다.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그런 과정에서 어떠한 모양을 갖게 되듯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되는 걸 두려워 말자는 생각이다.
이번 앨범 작업에서 들었던 생각인데, 이 일이 제조업이 아니잖나. 너무 이상한 특징이 있더라. 어떤 감독이냐, 어떤 작곡가냐, 실연자냐에 따라 하나하나가 달라지기에 인수인계 자체가 불가능한 작업이더라. 한 사람이 빠져버리면 아예 곡이 바뀌어 버린다. 각자의 고유성이 다르니 말이다. 그렇게 서로가 함께 하며 견고하게 하나의 도형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팀에게 너무 고마웠다. 일하면서 동료가 한 명씩 늘어가는 게 재밌고 즐거웠다."
▲ 9월 1일 7집 앨범 < GROWTH THEORY >를 발표한 가수 윤하. ⓒ C9엔터테인먼트
인터뷰 말미, 윤하는 "음악적으로 원숙해지면 재즈를 시도해보고 싶다"는 목표와 함께 에스파와 함께 협업하고 싶다는 사심을 가득 드러냈다. 그는 "카리나 사랑한다. 그가 춤을 추자고 하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연습하겠다"며 강한 의지를 보일 정도였다.
"그들의 세계관이 있잖나. 디즈니와 픽사의 만남처럼 그림체가 달라도 서로 합치될 부분이 있다면 재밌는 이벤트가 될 것 같다. 개인적인 목표는 지금처럼 쭉 활동해서 조용필 선배처럼 50주년을 맞이하면 좋겠다. 20주년도 사실 힘든데, 어떻게 50년을 하셨을까. 이번 홍보 활동이 끝나면 찾아뵙고 여쭤보려고 한다. 아마 답은 안 해주시겠지만 여쭤볼 순 있잖나(웃음). 팬들과는 50주년 때 간장 게장을 들고 디너쇼를 하자고, 그때까지 이빨 건강 잘 지켜야 한다고 얘기하기도 했다(웃음). 그때까지 잘 살아있자고 격려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