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탈주>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사실 <탈주>는 시작부터 남다르다. 탈주라는 콘셉트에 충실한 연출과 편집이 눈을 사로잡는다. 모두가 잠자는 새벽에 몰래 깨어나 비밀 통로를 이용해 부대 밖으로 나가는 규남. 그는 지뢰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조금씩 완성하고, 초시계로 시간을 재면서 부대 막사와 DMZ를 전력으로 오간다. 조금의 여백도 허락하지 않는 컷 전환과 사실적인 묘사 덕분에 이 장면은 질주하는 주인공의 에너지로 가득하다.
독립적인 시퀀스로서도 강렬한 이 장면은 영화의 성격과 전개를 암시하는 시작점으로서도 부족함이 없다. 영화가 오프닝만큼이나 간결하기 때문. <탈주>에는 불필요한 잔 가지가 거의 없다. 노래 '양화대교'를 삽입한 플래시백이 대표적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님도 먼저 떠나보낸 규남. 영화는 그의 개인사를 가사와 오버랩하면서 탈북을 선택한 그의 절박함과 결연함을 구질구질한 설명 없이, 직관적으로 각인시킨다.
이에 더해 현실적인 묘사 덕분에 규남의 현재 심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도 어려움이 없다. 겨우 잡은 멧돼지 고기를 전부 장교들에게 빼앗기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제대 후에도 당의 명령대로 살아야 한다는 현실을 자각하거나, 밝은 조명이 가득한 남한 측 휴전선을 바라보는 순간 등도 빼놓을 수 없다.
북한군의 꿈이 남 일이 아닌 이유
스토리텔링도 신선하다. 북한을 다룬 기존 한국 영화와는 달리 북한군에게만 초점을 맞췄다. 그러면서도 남한 관객이 감정이입하고 몰입할 수밖에 없는, 독특한 영역을 개척하는 데 성공했다. 그 중심에는 규남과 현상의 미묘한 관계성이 있다. 러시아로 피아노 유학을 갔다 온 엘리트 장교, 현상. 현상네 집안 전속 운전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흙수저, 규남. 이들은 '실패할 자유'를 대할 때 가장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규남에게는 실패마저도 자유다. 이미 인생이 정해진 북한 체제에서 그는 실패할 기회를 가져본 적이 없기에 실패할 자유마저도 갈망한다. 반면에 현상은 자유가 두렵다. 피아니스트로서 실패하고 군인이 된 그에게 자유란 실패를 껴안고 견뎌야 하는 책임과 부담이다. 그래서 현상은 규남에게 실패할 자유를 포기하고 정해진 대로 살라고 충고한다. 이렇게 보면 현상의 추격은 북한군 장교로서의 책무 이전에 인생 선배로서의 조언처럼 보이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양가적인 감정선 덕분에 규남의 탈주는 마냥 남 일이 아니다. 이미 정해진, 안정적인 길을 따르라는 사회의 압력은 휴전선 이남도 지배하기 때문. 더 나아가 압박에 시달린 청년들이 실패할 자유를 요구하며 몸부림치는 광경은 남한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바로 이 대목에서 <탈주>는 한국 영화의 전형성을 탈피한다. 민족이라는 프레임 없이도, 북한을 그저 은유로써 활용하면서도 색다른 감흥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대담한 스토리텔링에는 한 가지 장애물이 있다. 현상이라는 캐릭터 설정이 문제다. 고위층 자제, 피아니스트, 클래식 애호가라는 묘사가 기시감이 짙다. 이는 <브이아이피> 속 '김광일'(이종석), <사랑의 불시착> 속 '리정혁'(현빈) 같은 북한 고위층 캐릭터의 공통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배우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현상이라는 인물은 다소 도식적으로 느껴진다.
서사에 걸맞은 탁월한 스릴러
▲영화 <탈주> 스틸컷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규남과 현상의 묘한 관계성과 서사는 장르의 매력을 살릴 줄 아는 연출을 만나 필사적인 추적극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된다. 일례로 <탈주>는 상황을 영리하게 설정한다. 일기 예보와는 달리 2일 후에 폭우가 쏟아질 거라는 정보는 비 때문에 지뢰 배치가 바뀌기 전 휴전선을 넘어야 한다는 긴박함을 강조한다. 이는 사단 본부에서 탈출하고, 보위부를 사칭하는 규남의 무리한 행동에도 강력한 당위성을 부여한다.
이에 더해 서스펜스를 조절하는 완급조절도 탁월하다. 이 영화는 94분 내내 도망자와 추적자 구도가 강강강강으로 이어지면서 오히려 평이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사단 본부나 경무부대에서 빠져나오는 순간처럼 중간중간 개그신이 삽입된 덕분에 관객의 피로감은 우려만큼 크지 않다. 이에 더해 규남과 현상의 갈등 구도만 부각돼 지루해질 만한 순간에는 동혁 캐릭터가 분위기를 환기한다.
물론 모든 장면이 의도대로 기능하지는 않는다. 유랑민들의 등장이 대표적이다. 의도를 유추할 수는 있겠지만, 불필요해 보인다. 아마도 규남처럼 북한 체제에 불만을 지닌 이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규남의 탈주극을 더 풍성하게 만들고, 깊이를 더하려는 시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또 추격극 중에 변수를 더해 결이 다른 위기감을 고조하려는 목적도 느껴진다.
후자의 의도는 적중했다. 모든 탈출로를 차단한 후 규남을 포위하는 현상의 계획은 한정된 공간에서 조여들어 가는 서스펜스를 조성한다. 이는 속도감과 에너지가 부각되는 전후 장면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하지만 유랑민들이 단순히 도구적으로 소비되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그들에 대한 복선도 없었고, 그들의 사연도 피상적으로 제시되다 보니 규남과 그들의 서사가 매끄럽게 맞아 들어가지는 않는다.
결국 문제는 뒷심
마지막으로 후반부는 뚝심이 부족하다. 초중반 부의 임팩트가 워낙 강렬해서인지는 몰라도, 익숙한 전개에 기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례로 동혁이 사살되고 규남이 탈출하는 장면에서는 신파적인 분위기가 조성된다. 이는 그전까지 시원하게 내달리는 영화 콘셉트와는 상반된 답답함을 안기며, 이 괴리감은 에필로그까지도 이어진다.
거듭되는 편의적인 전개도 몰입감을 저해한다. 충분히 저격할 수 있는 순간마다, 그리고 남한이 눈앞인 상황에서 영화는 한 템포씩 늦추며 전개를 억지로 꼬려고 노력한다. 다른 사람들은 한 발만 밟아도 죽는 지뢰밭을 유달리 주인공만 손쉽게 피하는 식이다. 이는 규남과 현상의 외적 갈등과 현상의 내적 갈등이 마지막 순간 최고조에 이르는 장면을 유도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탈주>의 클라이맥스는 피로감이 가중된다. 반복되는 클리셰로 인해 거침없는 전반부가 미리 쌓은 점수를 다 까먹은 셈이다. 무엇보다도 초중반에서 보여준 남다른 가능성이 유달리 인상적이다 보니, 익숙함과 타협한 후반부의 선택은 되려 더 큰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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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및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영화와 드라마를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