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14일을 끝으로 11일간 여정의 막을 내렸다. 한국 영화제 3대장을 꼽으라면 부산과 전주 다음으로 부천을 꼽는 이가 적잖다. 그만큼 전통과 역사, 또 매력을 갖춘 영화제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란 뜻이다.
 
한국 최고의 종합 경쟁영화제를 표방한 부산국제영화제와 독립영화를 근간으로 다양성을 챙기며 발전해 온 전주국제영화제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규모로 요지를 확보한 이들 영화제 사이에서 자신만의 특색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 보기 드문 성공 사례다. 특색이란 다름 아닌 '판타스틱', 장르영화였다.
 
1996년 출발한 부산국제영화제보다 꼭 1년 늦었고, 2000년 출범한 전주국제영화제보단 3년이나 빠른 출발이었다. 1997년 경기도 부천시에서 판타지와 코미디, 공포와 액션 등 다방면의 장르색 선명한 영화들을 수급해 상여하는 영화축제로 문을 열었다. 이미 일본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YIFFF)와 유럽판타지영화제연합(EFFFF)이 존재했기에 전례가 없는 건 아니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BIFAN

 
문화도시 부천의 자랑, 제28회 BIFAN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규모를 키우고 아시아 제일의 장르영화제를 표방하며 성장을 거듭했다. 출품할 곳이 마땅찮았던 다양한 색깔의 작품군을 수급하여 한국 관객에게 내보이는 작업은 제한적인 개봉작에 갈증을 느꼈던 영화 팬에게 단비가 되어주었다.
 
서울과 인천 사이에서 위성도시로 별다른 특색이 없었던 부천이 문화도시로 거듭나는 주요한 계기이기도 했다. 부천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외에도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과 부천노동영화제 등 주목할 만한 영화 축제를 여럿 가진 주목할 만한 도시로 거듭난 것이다. 이들 축제가 도시민의 결속을 강화하고 타지인에게 도시를 알리는 데 효과를 발휘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특색은 역시 장르성이다. 정통 드라마의 완성도를 올리는 데 골몰하는 대신 장르적 멋과 맛을 살리는데 공력을 집중한 작품이 호응을 끌어낸다. 강한 장르성은 기발함과 맞닿을 때도 많다. 장르란 상당 부분 앞서 존재하는 작품에 의지하게 마련인데, 이를 그대로 뒤따르면 범작을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장르의 전형성에 매몰되는 대신 이점만 취하고 참신함을 더하는 것, 장르를 도구로써 활용하는 것은 모든 장르영화 감독의 목표가 된다.
 
 '런, 조니, 런' 스틸컷

'런, 조니, 런' 스틸컷 ⓒ BIFAN

 
'바퀴벌레의 시선' 기발한 설정
 
단편 모음집인 엑스라지11의 첫 타자로 나선 작품은 대만영화 <런, 조니, 런>이다. 량 슈 팅 감독의 14분짜리 극영화로, 그 시작부터 관객의 주의를 잡아끈다. 이제껏 본 적 거의 없는 화면이다. 우리가 보는 영상은 어느 동물의 시선이다. 동물이 있는 곳은 평범한 단칸 자취방, 한 여성이 주섬주섬 무언가를 하고 있다.
 
영상 가운데 무언가가 슬쩍 세워진다. 와이퍼처럼 올라온 그것은 더듬이 한 쌍이 분명하다. 우리는 곤충의 시선에서 어느 여자가 홀로 사는 자취방을 들여다보고 있다. 더듬이를 흔들며 곤충은 이리갔다 저리 갔다 기민하게 움직인다. 여자는 곤충을 눈치채지 못하고 제 할 일에 열중한다. 좌우로, 또 벽을 타고서 움직이는 모양을 보니 아마도 곤충은 바퀴벌레다. 가구 밑을 오가며 눈에 띄지 않게 은신하며 그는 여성을 주목한다.
 
가만 보니 여성이 하는 일이 어딘지 요상하다. 바구니에 번개탄을 뜯어 잔뜩 붓는 모습이 석연찮다. 보아하니 분위기도 음울하기 짝이 없다. 창문도 굳게 닫혀 있고 틈새도 죄다 막아놓은 듯 보인다. 출입구도 마찬가지다. 여자는 번개탄을 피워 죽을 심산인가 보다.
 
 '런, 조니, 런' 스틸컷

'런, 조니, 런' 스틸컷 ⓒ BIFAN

 
죽음 결심한 여성의 벌레잡기 소동
 
그러던 어느 순간, 여성이 바퀴벌레가 있단 걸 눈치챈다. 바퀴벌레를 보고 소리를 지르고 펄쩍 뛰고 거의 난동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 분명히 벌레는 그토록 싫어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좀처럼 적응되지 않을 만큼 격한 반응이다. 심지어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었던 직전까지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여자에겐 순식간에 삶에 대한 어떤 의지가 피어난 것처럼 보인다. 무기력한 일상을 가져온 우울과 그로 인한 죽음에의 다가섬 가운데서 이토록 선명한 의지가 있었을까 싶다.
 
여자는 바퀴벌레를 쫓지만 그 과정이 만만찮다. 쫓기던 바퀴벌레는 급기야 날개를 펴고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여자는 제가 봉인한 테이프를 떼고 창문을 열려 시도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어쩌지 못해 여자는 휴대폰을 켜고 한 사람을 골라 전화를 건다. 열리지 않는 문을 열어달라는 부탁이다. 문을 열고 들어와 바퀴벌레를 잡아달라는 청이다.
 
죽음을 코앞에 둔 여자의 간절한 소원이 바퀴벌레를 잡아달라는 것이라니. 어처구니없지만 일견 그럴 수도 있을지 모른단 생각이 든다. 벌레를 지극히 싫어하는 이는 벌레 없는 쾌적한 환경을 꿈꿀 수도 있는 일이니까. 무엇보다 제가 죽은 뒤 밀폐된 공간에서 제가 끔찍하게 여기는 바퀴벌레와 단둘이 남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런, 조니, 런' 메이킹필름 컷

'런, 조니, 런' 메이킹필름 컷 ⓒ BIFAN

 
다른 곳에서 만날 수 없는 상상과 전개
 
전화를 받은 남자는 주인공과 이렇다 할 관계가 없었던 모양, 술을 마시다 귀찮은 듯 응대한다. 여자는 남자에게 전화를 한 이유를 솔직히 털어놓는다. 다른 이라면 제가 죽으려 하는 것을 말리려 들 것이란 얘기다. 왜 아니겠는가. 그러나 남자는 어느 건물 옥상에서 몸을 던진 일로 소문이 자자한 이다. 스스로 목숨을 버리려 했다면 저를 이해하지 않을까 하는 여자의 기대가 아주 맹랑한 것은 아니다.
 
<런, 조니, 런>은 죽음이란 일생일대의 행위 앞에 벌어진 예기치 못한 사건들을 보여준다. 그것도 하찮다 여겼던 곤충의 시선에서 보여주는 것이다. 혐오의 대상인 바퀴벌레가 어쩌면 여성을 우울과 죽음으로부터 건져내는 중차대한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겠다. 은인이 되어 달라고 청을 받은 남자는 다시 말해 여자를 죽게 해달란 부탁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영화는 여러모로 엇갈리는 도덕적 감정과 상황으로써 극적 재미를 자아낸다.
 
한편으로 <런, 조니, 런>의 승부수는 형식 그 자체에 있다. 바퀴벌레의 시선으로 쓰이는 화면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칭을 바꾸지 않는다. 벽을 타고 숨고 날아가면서까지 주인공 주변을 오가고 숨죽이고 숨을 내쉬는 모든 과정이 관객에게 나름의 감상을 전달한다. 관객은 일정 부분 바퀴벌레를 응원하는 심정으로 영화를 마주한다. 바퀴벌레와 동일시하며 즐길 수 있는 영화라니, 그것만으로도 <런, 조니, 런>의 특색이라 할 수 있지 않겠나.
 
이런 영화를 부천이 아니고서야 대체 어디서 만날 수 있다는 말인가.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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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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