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인 데이트가 교제 폭력으로 변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영화 <캣퍼슨>
판씨네
쯔양처럼 교제 폭력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숨기거나 관계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교제 폭력과 일반적인 폭력의 특징이 다르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애착 관계 속에서 일상화된 폭력을 겪으며 폭력에 무뎌지거나 정당화한다. 또한 폭력을 가하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가해자의 행동에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특히 "좋으니까 만나는 거 아니냐", "오죽하면 때리겠냐" 등 교제 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은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적극적인 대항을 하지 못하게 한다.
지난 달 개봉한 영화 <캣퍼슨>엔 이같은 교제 폭력의 현실이 잘 나타나 있다. 주인공 '마고'는 영화관에서 만난 '로버트'와 사랑에 빠진다. 그와 만남을 이어가며 고양이를 키운다는 로버트의 말에 함께 집으로 향하지만, 고양이가 보이지 않자 그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마고의 상상을 통해 교제 관계에서 여성이 겪는 불안함을 보여준다. 갑자기 둘이 창고에 갇히게 되자 로버트는 "사실 내가 잠근 것"이라며 돌변하고, 그를 강간하려 든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운전하던 로버트는 차를 으스스한 곳으로 몰고 가더니 갑자기 마고의 목을 조른다.
사실 이 모든 건 마고가 상상한 것이지만, 애석하게도 로버트는 실제로 '폭력적인' 사람이었다. 생각과는 다른 관계에 갈등하던 마고가 친구의 도움으로 로버트에게 이별을 고하자, 그는 문자로 "술집에서 너를 봤다", "왜 나를 안 만나주냐", "과거에는 어떤 남자를 만났냐"며 추궁하더니 끝내 마고를 향해 "걸레"라고 모욕한다. 퇴근하는 마고에게 불쑥 찾아가기도 한다. 마고는 도움을 요청하고자 경찰서에 가지만, "(로버트가) 법을 어긴 건 아니다. TV 범죄 프로를 그만 보라"며 되레 혼이 난다.
현실도 마찬가지다. 언론 보도 등을 보면 피해자들이 신고해도 "그냥 연인끼리 싸운 것 아니냐", "그 정도는 법적 처벌이 되지 않는다"며 보호받지 못하는 사례가 다반사다. 특히 교제 폭력은 반의사불벌죄로 분류돼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피의자를 처벌하지 못한다.
이를 두고 허민숙 입법조사연구관은 지난 10일 국회 토론회에서 "가해자가 피해자를 회유·협박해 범죄 행위를 무마시키거나 고소를 철회하게 할 수 있다"며 반의사불벌죄 적용을 배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제 폭력의 심각성 알려준 사건"
▲영화 <캣퍼슨> 스틸 이미지. 판씨네마㈜
교제 폭력의 범죄 피해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경찰이 접수한 교제 폭력 신고는 7만 7150건으로 2017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한국여성의전화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최소 138명, 살인미수 피해 여성은 311명이었다.
쯔양의 피해 사실 고백 이후 교제 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진 분위기다. 누리꾼들은 "교제 폭력의 심각성을 알려준 사건"이라며 인터넷 커뮤니티, SNS 등에서 교제 폭력 피해자를 알아차리는 방법이나 피해 신고 매뉴얼 등을 공유하고 있다. 무엇보다 교제 폭력에 대한 별도의 법률 마련이 시급하다는 반응이다.
방송 말미에 쯔양은 "이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는 게 수치스러워서 (A씨에게) 저항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쯔양은 카메라 앞에 섰다. 더 이상 그가 '피해자'로서 2차 가해를 겪지 않고, '용기 있는 여성'으로 사회에 받아들여진다면. 어딘가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을 또 다른 피해 여성들에게 마이크를 넘겨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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