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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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코카콜라사는 겨울에는 소비량이 감소하는 탄산음료의 계절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크리스마스 마케팅을 펼쳤다. 광고를 통하여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명절인 크리스마스 만찬에도 콜라가 빠질 수 없는 음료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겨울에 발표된 코카콜라의 '목마름은 계절을 모른다(Thirst knows no reason)'는 전설적인 광고문구는, 콜라가 미국에서 명실상부한 사계절 음료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이처럼 미국의 음료였던 콜라는 어떻게 전 세계로까지 퍼져나가게 되었을까. '2차세계대전( World War 2, 1939-1945)'이 발발하면서 세계 각지에 파견된 미군들의 보급품으로 콜라가 포함된 것이 중요한 계기로 꼽힌다.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되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당시 미군 장군이 사령부에 병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하여 대량의 콜라 보급 지원을 요청한 기록이 남아있다.
또한 코카콜라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미군에 적극 협력하며 저렴한 가격에 콜라를 납품했다. 뿐만 아니라 콜라 제작 기술고문들을 세계 각지에 파견하여 아예 현지에 생산 공장을 세우고 콜라를 만들어내며 전쟁 마케팅에 동참했다.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34개월간 미군이 마신 콜라병만 무려 30억 병에 이른다.
코카콜라사는 이미 2차대전 이전부터 수출회사를 설립했고, 전쟁 직후 세계 각지에 공장들이 건립되며 빠르게 해외로 확산되었다. 이제 콜라는 '세계화'의 흐름을 타고, 전후 초강대국의 지위에 올라선 미국의 위상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된다. 1950년대 <타임지>에서는 마치 엄마가 아이에게 우유을 먹이듯, 지구가 콜라를 받아먹는 장면을 '월드 앤 프렌드(World & Friend, 세계는 친구)라는 제목으로 연출했는데 '전 세계에서 미국적 가치와 생활방식이 확산되고 있는 상징'으로 콜라라는 제품을 선택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미국의 상징이 된 콜라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반응도 나오기 시작했다. 문화적 자부심이 남달렀던 서유럽 국가들은 현지 음료업계를 중심으로 콜라의 인기에 경계심을 드러냈다.
특히 프랑스는 코카콜라의 현지 공장 설립을 마지막까지 강하게 반대하며 당시 언론에서는 '콜라의 식민화', '미국문화의 강제 주입'으로 규정할 정도로 견제했다. 하지만 1953년 콜라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판결이 나오자 프랑스도 결국 공장설립을 허가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콜라 갈등은 '오랜 전통의 문화(유럽)'와 '천박한 물질문화(미국)'로 대표되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대립구도의 상징이 됐다.
한편 코카콜라가 독점하던 콜라 시장은 펩시(PEPSI)라는 강력한 라이벌의 등장으로 전환점을 맞게 된다. 1898년 8월 약사인 케일럽 브래덤이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래드의 음료'라는 소화불량 치료용 매약으로 개발하며 그 기원이 코카콜라와 유사하다.이후 소화효소 펩신(Pepsin)의 영향을 받아 제품명을 지금의 펩시콜라로 개명했다.
펩시는 1930대 미국의 경제대공황 시기에 코카콜라보다 저렴한 가격에 두 배의 양을 담은 가성비 마케팅 전략으로 승승장구하며 코카콜라의 대항마로 급부상했다.
냉전(Cold wa, 1947-1991) 시대를 맞이하여 펩시콜라의 세계적인 인지도가 높아지는 사건이 벌어진다. 1959년 소련에서 열린 미국전시박람회에서 당시 미국 부통령 리처드 닉슨이 소련 지도자였던 흐루쇼프를 초청하여 펩시콜라를 권한 장면이 언론에 포착됐다.
당시 소련은 미국의 콜라를 자본주의 문화의 상징으로 여기며 철저히 배척하고 있던 시기였다. 흐루쇼프는 닉슨의 거듭된 권유에 마지못해 슬쩍 입에 댔을 뿐이지만, 소련의 최고 지도자가 미국의 대표음료인 콜라를 마시는 장면만으로 엄청난 화제가 되기는 충분했다. 사진은 전 세계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며 뜨거운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펩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극적인 마케팅에 활용했고, 1972년에는 마침내 소련에 콜라 독점판매권까지 획득하며 승승장구하여 엄청나게 도약하게 된다.
코카콜라의 대항마 펩시콜라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tvN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콜라 패권경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코카콜라가 전 세대가 함께 즐기고 화합하는 가족적인 국민 음료로서의 이미지를 강조한다면, 펩시콜라는 젊은 세대에 초점을 맞춘 타깃 마케팅이 더 두드러진다는 게 차이다. 펩시는 당대 최고의 팝스타였던 마이클 잭슨을 광고모델로 삼아 펩시를 즐기는 젊은 세대를 'P세대'로 규정하며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을 구사했다.
이에 자극을 받은 코카콜라는 펩시에 대항하기 위하여 새로운 콜라 제조법을 도입한 '뉴 코크'를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 뉴 코크는 오히려 대부분의 전통적인 코카콜라 팬들에게 큰 실망과 격렬한 반발만을 자아냈다. 당황한 코카콜라는 실수를 인정하고 두 달 만에 뉴 코크 프로젝트를 폐기하면서 기존의 맛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나서야 매출이 다시 회복세로 돌아섰다. 이는 한편으로 그만큼 미국인들에게 코카콜라가 단순한 음료가 아닌 역사와 추억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음을 보여준 장면으로 불린다.
또한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독특한 경쟁구도를 보여주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상대 회사에 대한 '기업간 저격 광고'다. 두 회사는 광고에서 노골적으로 상대 제품을 직접 등장시켜 대놓고 조롱하고 폄하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한 펩시콜라 광고에서 아이가 코카콜라캔을 밟고 올라서서 자판기의 펩시 버튼을 누른다거나, 반대로 코카콜라 광고에서는 슈퍼히어로 영화처럼 영웅 코카콜라가 덤벼드는 악당 펩시콜라들을 주먹질로 응징하고 세계를 구해낸다는 설정 등, 국내 기업에서는 보기 힘든 기발하고 파격적인 광고들이 넘쳐난다.
대중들도 양사의 이러한 디스전을 일종의 놀이 문화로 받아들이며 온라인에서 각종 패러디와 밈이 넘쳐나기도 한다. 사회유명인사들도 예외가 아닌데, 워렌 버핏이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같은 인물들은 '콜라 덕후'로 유명하다.
한편으로 콜라의 세계적인 영향력이 높아지며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해외 현지에 설립된 콜라 공장들의 경우, 지하수 활용 문제와 인도나 멕시코 등에서 큰 갈등을 빚기도 했다. 콜라를 장기간 과다섭취할 경우, 인체 건강에 좋지 않다는 문제 제기도 계속해서 도마에 오르고 있는 부분이다.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회하기 위하여 콜라 회사들은 당분을 줄인 제로콜라같은 새로운 제품의 개발, 현지 국가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사회참여 등을 모색하며 이미지 개선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콜라는 콜라이며 돈을 얼마를 쓰든간에 당신은 더 좋은 콜라를 가질 수는 없다. 모든 콜라는 똑같으며 모든 콜라는 좋은 것이다."
미국 팝아트의 거장이자 콜라를 소재로 한 작품을 유독 많이 만들어냈던 앤디 워홀이 남긴 격언이다. 오랜 역사와 상징성을 동시에 품고 있는 콜라는 세계인들이 즐기는 탄산음료인 동시에, 오늘날의 미국과 현대 자본주의가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아이콘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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